첫 에그타르트의 추억
엄마가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이 있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아니고 엄마의 자식들이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지금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도 않는 나의 어린 날의 이야기.
"아, 그때 정말 좋았지. 어떻게 그렇게 데리고 다녔는지 몰라. 무모했는데 정말 재밌었어."
언제였더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때인 것은 확실하다. 자동차도 없고, 구글지도도 없던 시절의 오프라인 여행을 떠났던 것이. 엄마는 우리들을 제법 문화적 소양이 있는 어린이들로 키우려고 제법 노력을 하셨다. 지역방송의 광고로 우리 지역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하면 꼭 우리들을 이끌고 그곳에 방문을 했었다. 덕분에 나는 파충류체험이니 인체전시관이니 했던 온갖 전시관은 섭렵했던 것 같다. 그 '전시체험'이 지역으로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어디선가 '서울 어디에서 제법 큰 규모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이끌고 서울로의 대장정을 떠났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타 지역으로 대이동을 하던 날, 나는 첫 에그타르트를 먹게 되었다.
엄마가 자주 보던 잡지에서였는지, 내가 하고 있던 학습지 사이에 끼인 광고지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대전에서 무슨 벽화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곤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얘들아! 대전에서 전시회를 한다는데, 정말 잘됐다! 대전에는 고모할머니도 사시니까 대전에 놀러 가고 하루 자고 오자"
이미 엄마의 계획은 완성형이었다. 청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간 뒤에 팸플릿에 안내되어 있는 버스를 타고 전시장에 방문한 다음에 고모할머니댁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이때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고모할머니댁에서 자는 것은 확정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고모할머니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대전에 있는 놀이동산에서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낸 뒤에 청주로 돌아오는 계획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고모~ 잘 지내시죠? 저희 00일에 대전에 한번 가려고요. 가서 하룻밤 자고 오려고 하는데 괜찮죠?"
고모할머니의 수락으로 우리 가족은 그렇게 여름맞이 대전여행을 꽤 즉흥적으로 떠나게 되었다.
청주와 대전은 꽤 가까운 거리이다. 차로 40분 내외로 걸리는 그 대전을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내리고 반복한 뒤에야 도착했다. 엄마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처럼 핸드폰 어플 하나 들어가서 버스 남은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석대로 버스정류장에 부착된 노선 안내표를 보고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혹시 이 버스 언제쯤 오시는지 아세요?'라고 물어물어 정보를 확인해야 했다.
(청주에서 조치원으로 이동하고, 조치원에서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여행 코스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엄마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나는 대전이 시내버스로 이동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참을 버스를 타서 대전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대전에 온 목적을 이루는 일이었다. 바로 '대전 외곽에 있는 전시회관람하기'. 전시회장에 도착한 뒤에 엄마는 엄청 뿌듯해했다. 지도 한 장, 팸플릿 하나 가지고 대전에 있는 전시장에 어린 자식새끼 3명과 함께 도착했던 것이 엄마에게도 엄청난 도전이었나 보다.
전시회장을 돌아보는 내내 엄마는 우리에게 계속 물었다.
"어때? 오길 잘했지? 어때? 재밌지?"
나는 엄마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응! 너무 좋아!"
전시회장을 다 본 뒤에는 다음 미션인 '고모할머니댁 방문하기'가 남아있었다. 전시회장을 나와서 우리는 또 얌전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점점 더 배가 고파져왔다. 청주를 떠나기 전 먹었던 한 끼가 고된 여정에 전부 소화되어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엄마, 나 배고파? 밥은 언제 먹어?"
"밥은 고모할머니댁에 가면 먹을 거야. 고모할머니가 맛있는 저녁 준비해 주신댔어."
우리는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린 배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 진짜 배고픈데. 뭐 먹으면 안 돼?"
고모할아버지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갈 때까지 우리는 엄마의 '안돼'만 들으며 대전을 누비고 다녔다. 버스를 탔다 내리고, 동생과 손잡고 엄마를 따라 길을 걸어가고. 고픈 배를 참으며 대전의 길을 한참이나 돌아다녔다.
그렇게 계속해서 돌아다디 던 어느 순간, 엄마가 말했다.
"할아버지 오실 때까지 시간 조금 남으니까, 뭐라도 먹을까?"
엄마는 우리를 이끌고 어떤 가게에 들어갔다. 빨간색이고 입구에 웬 할아버지가 있는 처음 보는 낯선 가게에. 청주에서 내가 가봤던 가게라곤 '롯데리아'가 전부였는데, 난생처음 보는 새로운 가게에 조금 기가 죽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여기는 낯선 곳이라서 함부로 돌아다니가 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는 주문을 하러 떠났다.
엄마의 주의가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길을 걸어서 몹시 피곤했던 우리는 거의 누워있다싶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주문을 하러 간 엄마는 쟁반 하나를 들고 금방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 부스럭부스럭하시며 각자 앞에 처음 보는 음식을 각자 자리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이건 에그타르트라는 거야. 여기 가운데에 있는 게 계란으로 만든 크림이야. 엄청 맛있어 먹어봐."
엄청 배가 고팠던 나는 엄마가 '엄청 맛있어'라고 하는 소리를 듣기 전에도 한 입 베어 물었다. 와삭하고 바삭하는 타르트지가 부서지면서 입에 달콤하고 따뜻한 크림이 잔뜩 퍼졌다. 처음 먹어보는 달달한 디저트의 맛에 혀가 놀라 춤을 췄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맛있는 게 세상에 존재하다니...!
"엄마! 이렇게 맛있는 거 태어나서 처음 먹어봐!"
타르트지는 바삭하고 가운데를 채운 크림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평생 디저트라곤 생일에 먹은 케이크밖에 없던 어린 날의 나는 새로운 맛에 눈을 떠버렸다. 아니, 에그타르트에 반해버렸다. 이렇게 맛있는걸 내 평생 잊을 리가 없었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제법 컸던 에그타르트를 게 눈 감추듯 금세 먹어치웠다. 다 먹고 남은 은박지위의 파이지를 콕콕 찍으며 먹고 있으려니 엄마가 봉투에서 또 하나의 음식을 꺼내주었다.
"이건 여기서 파는 비스퀵이라는 빵이야. 딸기잼이랑 같이 먹는 거야."
엄마는 주먹만 한 빵을 꺼내 반을 가르고 같이 줬던 딸기잼을 쭈욱 짜 바르고 우리에게 반씩 나눠주었다. 하지만 에그타르의 달콤함과 바삭함에 반한 나에게 비스퀵은 그냥 심심하고 고소한 빵 그뿐이었다. 남은 비스퀵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고모할아버지와 만날 시간이었다.
우리를 데리러 온 고모할아버지를 만난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대전에 한평생 사셨던 고모할아버지는 금세 우리를 고모할아버지댁으로 데려가 주셨고, 우리는 간단하게 짐을 풀곤 고모할머니가 우릴 위해 준비했다고 하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빈방에서 엄마와 우리 남매들끼리 모여 잠을 자는데 나는 엄마에게 작게 이야기했다.
"엄마, 아까 먹었던 그거. 정말 맛있었어. 또 먹고 싶어.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