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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마닐 Nov 18. 2020

방에서 집으로, 자취에서 독립으로

Part 1. 집과 함께 자란다 _ 세 번째 집


 비혼을 결심한 이후 이사를 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 장만한 가구는 앞으로 최소한 십 년은 더 두고 쓰자는 마음이었다. 침대와 냉장고, 식탁, 거실장, 하다못해 샤워 커튼과 욕실매트까지 마음에 꼭 드는 걸로 주문했다. 비싸기보다는 튼튼하고 만듦새가 좋으며 깔끔한 디자인의 가구로 골랐다. 반포장 이사에 가구 비용까지 인당 100만 원씩 총 200만 원 정도를 지출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소비였다.


 이사 전에 미리 부동산에 연락해 계약하는 날 방을 실측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평면도와 함께 각 벽의 전개도, 콘센트의 위치와 높이를 그렸다. 이 날 잰 사이즈에 맞춰 가구를 주문했다. 모든 가구는 이 집에 맞춘 듯이 스며들었다. 룸메에게 전공과 실무의 유용함을 뽐내자 두 팔을 높이 들어 환호해주었다.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신혼인 친구들이 왜 돈 쓰는 게 재밌다고 하는지 이해했다. 난생처음으로 나의 집에 투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혼수에 기천만원씩 써야 하는지, 왜 꼭 이성과 평생 살아야 하는지는 '사회적 성 역할'의 벽을 넘고 나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당근 마켓을 통해 기존에 쓰던 이케아 싱글 벙커 베드를 싸게 처분하고 슈퍼싱글 사이즈로 업그레이드했다. 침대의 폭이 고작 30cm 정도 늘어났을 뿐인데 두 배는 커진 듯 느껴졌다. 침대가 새로 온 날 좌로 우로 구르며 기쁨을 표현했다. 지저분하게 튀어나왔던 온수매트와 전기매트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진드기와 먼지를 방지해주는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니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흰색 프레임의 벙커 베드인 것은 전과 같았다. 공간 활용도가 높고, 시선이 차단되니 프라이버시가 확보된다. 아래에 누워 2층에서 자고 있는 룸메의 맨발이 프레임 밖으로 툭 튀어나온 걸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끔은 자려고 누워 수다를 떨기도 한다.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대답이 없어진다. 옛날에는 불빛이나 소리에 예민해 잠이 들지 않는 날도 있었는데, 이 집에서는 마음이 편한지 베개에 머리를 대면 30분 안에 잠든다. 룸메도 눕자마자 깊은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다. 고단한 직장인들의 평화로운 밤이다.






 자취방의 기본 옵션 냉장고는 냉동실이 턱없이 작다는 문제점이 있다. 양문형 냉장고는 10년쯤 후에 만나기로 하고, 투 도어 중에 용량이 제법 큰 친구로 골랐다. 전에 쓰던 냉장고보다 용량이 2배 이상 커졌다. 분명 냉장고를 가득 채웠던 식재료였는데 새 냉장고에 채우니 한 칸 안에 모두 정리되는 게 놀라웠다. 나머지 세 칸은 텅텅 비었다. 냉동실도 어찌나 큰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살 때도, 냉동만두를 살 때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친께 새 냉장고를 샀다고 자랑했더니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갈 생각을 해야지 뭐하러 냉장고를 사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남편보다 냉장고가 유용한 것은 틀림이 없다. 소중한 음식을 잘 보관해주고, 가끔 소리도 내고, 빛도 내고, 열심히 일하고, 멀끔하니 잘생겼다. 게다가 키도 크다.


 신나는 쇼핑의 시간과 지옥 같은 밤샘 정리 후 남은 것은 번듯하고 평화로운 집이었다. 짐을 다 정리하고 처음으로 식탁에 앉아 와인잔에 좋아하는 탄산음료를 따라 마시며 자취 생활의 종료를 선언했다. 이제부터는 독립생활이라고 말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취는 일시적이고 독립은 영구적이라는 것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옛말은 거짓이다. 남편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꾸려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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