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희극
‘앞으로는 아무 때나 이렇게 한가로이 한강에 앉아 있을 수 있다니!’
우진은 방금 산 차가운 캔맥주를 딴다. 그리고 단숨에 그것을 들이켠다. 입술에서 흘러내린 맥주와 캔에 응결된 물방울들이 목을 타고 흰 셔츠 속으로 들어간다. 시원한 바람과는 어울리지 않게, 강한 햇살이 내리쬔다. 눈을 질끈 감으니 눈꺼풀 위로 주황색의 황홀감이 스며든다. 그는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눈을 살짝 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연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연실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한 어린아이가 그 타래를 움켜쥐고 있었다. 더 어린 아이들은 연을 올려다본 채 그를 황홀한 표정으로 둘러쌌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구나. 나는 한 번도 저렇게 높이 띄워본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우진은 순간 어릴 적 연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를 생각했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아무리 달려가며 얼레를 풀어도 연은 그 무거운 몸체를 좀처럼 띄워주지 않았다. 마치 추가 달린 것처럼, 연은 조금 부유하다가 기어이 힘없이 땅에 처박히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한 손으로 커다란 연을 줏어들고는 누군가가 높이 띄워 올린 연을 맥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높이 올릴 수 있었던 친구들은 많아야 한두 명이었지.’
기류를 타고 연은 하늘거린다. 연은 해를 향해 나풀거렸지만 아이는 연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느덧 해가 하늘과 한강을 황금빛으로 칠하고 있다.
어느새, 식어버린 캔 속 맥주도 바닥을 드러냈다. 아이들도 이제 부모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한낮의 작은 파티들은 저마다 끝을 맺는다. 도처에 크고 작은 아쉬움들이 산재해 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면 사라져 버릴 아쉬움들. 짧은 비행을 마친 저 연은, 다시 어두운 서랍 속에서 긴 꿈을 꾸듯 잠들겠지. 과거의 비행을 꿈꾸며, 혹은 앞으로의 비행을 꿈꾸며.
여러 단막극들을 눈에 담은 우진은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한낮의 음주에 취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연은 하늘을 날기 위해 태어났고 맥주캔은 맥주를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는…’
우진은 남은 인생을 기꺼이 비극으로 써 가리라, 기쁘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