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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짠 Oct 23. 2021

아버지의 얼굴에도 선호가 있었네.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아버지들


1. 선호 아버지


선호 아버지 : 아버지 저 로스쿨 갈래요.
선호 아버지의 아버지 : ... 로스쿨 괜찮겠니
선호 아버지 : 로스쿨 가서 판사나 검사하고 싶어요.
선호 아버지의 아버지 : 이북에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나 서울로 이주한 후에 한국전쟁이 나자 서울에서 오산으로 피난을 내려왔어. 예전에는 이북출신들은 차별이 심했는데...
선호 아버지 : 아버지 요즘이 어떤 때인데요.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선호 아버지는 사실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진심으로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왜 공익변호사가 되고 싶었는지 묻는다면, 그 이유는 대상을 알 수 없는 일종의 속죄 때문이었다.


공중보건의 시절 엄마가 많이 아팠고, 나는 엄마를 힘들게 한 병마 앞에서 무기력했다.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공익변호사가 되는 길은 꽤나 멋진 고난의 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많은 걸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사실 나는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위선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2. 선호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려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할아버지는 전쟁 때 서울에서 피난을 내려와 오산에 자리를 잡으셨다.

원래 할아버지는 신의주, 할머니는 의주에서 생활하셨는데, 이런저런 연유로 서울로 내려오셨다고 한다.

나는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늦은 밤 할머니의 품에 안겨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이야기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가 조용한 목소리로 당시의 고난을 생생하게 이야기 해주셨던 사실은 기억이 난다.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의 삶이 대부분 그러하듯,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할아버지는 지금의 동사무소의 역할을 하는 관공서에서 근무를 하셨다고 한다.

한자에 매우 박식하셔서 마을에서 일적으로도, 일 외적으로도 할아버지의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약주를 좋아하셔서 도움의 대한 보답은 대부분이 약주 한 잔이었다.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짐작건대 당뇨 합병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때문에 아버지가 성장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육체노동은 할머니의 몫이었고, 피난생활에 5남매를 키우셨기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난을 면치는 못했다.


명석하셨던 큰 아버지는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잘 받게 하기 위해 보다 나은 여건의 집으로 가서 자라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셋째였지만, 누나와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나와는 달리 강인한 육체를 타고 나셨기에 어린시절부터 힘도 세고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잘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강인한 육체만큼 명석하기도 하여 성적도 최상위권이었다고 한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학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두고, 아버지의 은사님은 본인의 교직 생활을 통틀어 가장 아까운 아이였다며 못내 아쉬워 하셨다고 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책을 항상 사서 읽었던 이유는 어쩌면 아버지가 경험한 가난 덕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유년시절


내가 로스쿨에 간다고 했을 때, 로스쿨에 가서 판사나 검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의외의 말을 하셨다.

나는 우리의 뿌리가 이북에 있는 것이 결국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지 않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적잖이 놀랐다.

‘아이고 아부지 요즘이 어떤 때인데요.’라고 말하며 슬쩍 넘어갔지만, 훗날 아버지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살던 오산은 이북 출신이 모여사는 동네와 오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아버지가 친구들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는데 친구?의 삼촌이 길 가던 아버지를 부르더니 막무가내로 아버지를 두들겨 팼다.

폭력의 이유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육체적으로 강인한 소년이었지만, ‘소년’이었기에 대항할 수 없었다.


가끔씩 형편이 나은 집으로 가서 생활하던 큰 아버지가 집에 오는 밤이면,

아버지와 큰 아버지는 새벽녘까지 벽 앞에 서서 누구의 주먹이 더 센지 벽을 치며 주먹 대결을 했다고 한다.

방에 있던 작은 고모는 흙벽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며 잠을 못이루었다고 했다.



달팽이, 선호,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의 보고는 건조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옛 이집트인에 대해 전하는 이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의 경탄과 숙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수천 년간 공기와의 접촉이 없이 피라미드 속 밀폐된 방들 속에 있었으면서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발아력을 간직해온 곡식 알갱이들과 닮았다.

<서사.기억.비평의 자리> / 발터 벤야민 지음 ㅣ 최성만 옮김 / 도서출판 길


거인 같은 아버지에게도 선호와 같은 오로지 돌봄이 필요했던 시간이 있었을텐데, 나는 도무지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선호가 태어난 후 아버지의 유년시절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아득히 먼 과거의 이야기를 아주 가끔씩 들려주곤 했다.

이야기를 듣고 돌아오는 길이면 주먹에 피가 날 정도로 흙벽을 쳤을 어린 아버지의 모습에 가슴이 저며왔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그 날의 이야기를 하며 그 날의 감정을 표현하신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나이 차이가 꽤 있었음에도 큰 아버지보다 본인의 주먹이 더 센 날도 있었다며 건조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들과 뛰어놀며 집으로 돌아오던 하교 길에 자신과 비교할 수도 없는 덩치를 가진 어른으로부터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한 그 날의 기억은, 아버지의 몸과 마음 어딘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 기억이 내가 아버지에게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한다고 말씀드렸을 때처럼 이따금씩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며 생긴 단단한 굳은살로 갑옷을 만들어 왔던 아버지에게도,

달팽이처럼, 선호처럼 호기심으로 가득한 부드러운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탐색하던 유년시절이 있었음이 분명하기에.



아버지의 얼굴에도 선호가 있었네


꼽추 난장이는 끊임없이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한 번도 그 시선에 답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더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응답받지 못한 그의 시선들은 돌처럼 쌓이고 굳어져서 기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꼽추 난장이의 솟아오른 혹입니다. 이 혹은 우리의 망각이 만든 혹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혹을 마지막까지 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망각은 결국 깨어나서 기억의 습격으로 전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지금 우리는 마치 엄중한 도덕의 법정 앞에 선 사람처럼, 벤야민의 시선, 한없이 부끄러워하는 벤야민의 시선 앞에 서 있는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벤야민의 부끄러워하는 시선 앞에서 거울에 비추인 듯 만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 / 김진영 / 포스트카드


코로나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그토록 기다리던 선호를 선호가 태어난지 한달여가 지난 후에야 품에 안아보실 수 있었다.

아직 목도 못 가누던 선호와, 그런 선호를 혹여라도 다칠까 걱정하시며 조금은 경직된 자세로 안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

아버지는 선호를, 선호는 나를, 나는 아버지와 선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선호의 코, 선호의 손이 아버지와 똑 닮았다고, 선호의 얼굴에 아버지가 있다고 말씀드릴 때, 아버지는 싱긋 웃으셨다.

그런데 그 날의 그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도 선호가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선호에게 꼭 한 번쯤은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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