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

by 김정배

멜버른에는 참 다양한 버스커들이 있다. 한국에서는 버스커라고 하면, 흔히 거리에서 노래 부르는 싱어 정도로 인식하지만, 멜버른에서는 거리 위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을 버스커라고 부른다. 그래서 멜버른의 스완스톤 스트릿에는 마술사부터, 코미디언, 차력사, 피아니스트, 중국 전통 악기 연주가, 공예가, 댄서, 삐에로, 화가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어필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다.
나는 멜버른의 상모 버스커다.
처음부터 버스킹을 목적에 두고 건너온 호주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학연수를 위해서 건너온 것도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호주로 건너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세계를 만나기 위해 호주로 왔다고 나를 소개하였지만, 어쩌면 사실은 취업을 피해서, 그리고 현실에 맞닥뜨린 나의 고민들을 피해서 호주로 도망 온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외국인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야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는 수백 송이의 들장미 중 한 송이에 불과했을 것이고, 그들에게는 멜버른에 있는 수 만 명의 아시아인 중 한 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낯선 이방인인 나를 친구로 삼아야 하는 의무감이나 당위성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남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특별해져야 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은 못 되더라도, 그들이 먼저 나를 궁금해하고, 내게 먼저 다가오게 만드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슈퍼맨의 빨간 빤스 대신, 배트맨의 검은 망토 대신, 채상 상모를 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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