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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결론: 그래서 왜 사는가?

by 맨오브피스

출근 전 이른 아침. 춥고 졸리지만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 공원으로 향한다. 공원 입구의 나무다리를 시작점 삼아 달리기 시작한다. 깜깜한 아침부터 달리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으쓱대고 있으면... 뒤에서 달리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느새 나를 추월해 간다. 나는 저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어정쩡하게 몰입하고, 적당한 결과물에 만족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듦에도 불구하고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지 않아 찝찝하면서도 대충 행복하기 때문에 딱히 뭘 안 하는 병'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나의 공허감은, 오히려 좋은 전환점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유튜브 보고, 술 먹고, 가끔 여행 가는 인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한 마음가짐 위에서 먹고 자고 싼다. 나만의 방식이 생겼고, 그 방식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았다. 오늘 유튜브를 보는 나와 내일 유튜브를 보는 내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안 할 거면 안 한 뒤 미련을 갖지 않게 되었다. 충동보다는 의도를 갖고 행동하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는 나름 열심히 살며 즐거움을 누렸지만, 어느새 과정에서의 기대감이 사라져 있었다. 헤헤 실실 사는 모습이 죽을 정도로 뻔해서 지루했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게임, 새로운 콘텐츠, 새로운 옷, 새로운 굿즈가 주는 기대감은 김샐 정도로 빠르게 휘발된다. 그러나 새로운 노력, 새로운 철학, 새로운 사람이 주는 기대감은 마음속에 뿌리를 내린다.


공허감의 반대말은 즐거움이 아니라 기대감이 아닐까.


나의 하루는 더 이상 허무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허무함을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면 왜 그리 느꼈는지, 그래서 뭘 어쩔 건지 글로 적은 뒤 행동을 바꾼다. 마음의 문제가 생기면 행동과 환경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삶이 나를 괴롭힌다 해도, 후련함까지의 여정이라 여기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는 아저씨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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