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내 머리스타일은 화려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뒤, 머리카락을 한 뭉치씩 베베 꼬아 왁스로 세웠다. 마치 고슴도치 가시가 선 것처럼, 삐죽삐죽한 모양으로 고정시켰다. 옷은 하늘색이나 흰색 계열의 츄리닝 스타일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나만의 개성을 찾았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겉모습을 썩 좋아하지 않으셨다. 자취방에서 살다 가끔 부모님 집으로 갈 때면 “머리 좀 차분하게 내려라”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어야 했다. 아들이 남들에게 단정하게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 하신 말이었을 것이다. 딱히 윽박지르거나 짜증 내는 말투는 아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으레 한마디 던지는 정도의 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머리 좀 차분하게 내리라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삐쭉하게 세우는 것도, 단정하게 자르는 것도 내가 알아서 하고 싶었다. 어린아이들이 “내가 할 거야!”라며 고집스럽게 혼자 낑낑댈 때가 있지 않는가? 그때의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결국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인데, 왜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까?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말도 받아들이기 싫다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원해서 하는 일이면 밤이라도 새우는데, 회사 명령으로 하는 야근은 5분만 지나도 하품이 나온다. 나는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책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휠체어가 정말 싫었어요.” 그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가끔 의식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그래서 의식을 잃어도 넘어질 일이 없도록 요양원 직원들이 그를 휠체어에 앉혔던 것이다. 아무리 나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 해도, 휠체어에 강제로 앉히는 것과 내 선택으로 앉는 것은 다르다. 그는 이후에 새 요양원으로 옮기는데, 거기서 휠체어 대신 보행 보조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한다. 그 할아버지는 아마 넘어져서 무릎이 깨진다 해도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일이니 납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에서 운동해야 한다, 가려먹어야 한다, 산만함을 없애야 한다 같은 말을 늘어놓았지만 이는 결코 남에게 강요할 수 없다. "하세요!"라고 백날 소리쳐봤자 아무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경험과 방법론을 나눈 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바랄 뿐이다.
최근 어머니에게 유튜브 쇼츠 좀 그만 보시라고, 12시 전에는 주무시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는데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납득하지 않으면 타인의 조언은 그저 흘러가는 말에 불과하다. 바로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궁금해하고 조사하고 납득하는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소풍 갈 때의 기억이 있는가?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는 날의 기억도 좋다. 아마 새벽부터 눈이 번쩍 뜨였을 것이고, 평소보다 빠릿빠릿하고 정확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똑같은 환경에서도 스스로 납득할 수만 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