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답인가?

by 맨오브피스

독일로 떠나기 전의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때는 2013년 초여름, 장소는 코엑스 던킨 도너츠.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는 첫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 첫 직장은 독일 게임회사였는데, 한국 지사에서 3년간 일했었고 이제 새 직장을 찾고 있었다. 가고 싶은 게임회사가 있었지만, 면접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도너츠를 먹으며 나의 취업 근황을 듣던 친구가 누군가를 소개해주었다.


소개해준 사람은 독일 사람이었다. 모바일 광고회사의 창업자로, 최근엔 한국 지사 설립에 분주하다고 했다. 소개는 이메일로 이루어졌다. 독일인 창업자와 나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그가 일하는 강남 사무실로 정했고, 미리 이력서를 미리 보내두었다.


소규모 인원이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창업자 외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미팅룸으로 들어가 면접을 봤다. 면접 내용 중에 수학 퀴즈가 하나 있었는데, 순발력을 발휘해 어찌어찌 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 이메일로 과제도 제출하고, 2차 면접을 거쳐서 입사하게 되었다. 나는 고객사 관리와 약간의 영업일을 맡기로 했다. 이직에만 거의 3개월 이상을 소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안도감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 입사 소식을 알리니 어머니는 또 독일 회사에 붙었다며 축하해 주었다.


모바일 광고 회사가 돈을 버는 방법은 간단하다. 사람들의 스마트폰 화면에 광고를 뿌리는 게 전부다(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해지니 이 정도만 알면 된다). 이직한 회사는 모바일 광고 중에서도 게임 광고에 집중하는 곳이었다. 컴퓨터나 콘솔 게임만 하던 나에게 모바일 게임의 세계는 새로웠다. 빠르게 성장하는 야생의 생태계였다. 야생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을 익혀가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한국 지사였고, 본사는 베를린에 있었다. 베를린의 동료들과 일하는 재미도 컸다. 첫 직장에서도 독일 본사와 일을 하긴 했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첫 직장의 본사는 대부분이 독일 사람들이라 그런지, 독일 특유의 경직되고 느릿느릿한 문화가 늘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번째 직장의 문화는 정반대였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이루어져있고 조직에 활기가 있었다. 미팅 분위기는 혼란스럽지만 활력이 넘쳤고, 업무는 치밀함보다 스피드가 중시되었다. 실수를 할지언정 업무 진행이 시원시원했다. 이직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2014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장 갈 기회가 있었다.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라는 행사에 우리 회사가 참석하니 와달라는 것이었다. 아시아인 한 명을 끼워넣어 다국적 느낌을 내려는 속셈이 느껴졌지만, 어쨌든 나에겐 새로운 경험이니 기꺼이 가겠다고 했다. 처음으로 가는 미국이었다. 언덕과 빅토리아 양식의 집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날씨는 포근하지만 대중교통은 아주 불편한 곳. 나는 우버를 타고 컨퍼런스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에 들어가니 우리 회사의 부스가 보였다. 부스에 있는 동료들과 반가움의 포옹을 한 뒤, 본격적으로 행사를 즐겼다. 여느 컨퍼런스와 같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고객사들과 이야기하고, 강연도 듣고, 다른 부스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컨퍼런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뭐하는 곳입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우리 회사 부스로 와서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서로 대화를 이어나가며 같이 일할 수 있는 접점이 있는지 찾았다. 없으면 없는대로 명함 교환을 했고, 있을 것 같으면 나중에 이메일로 연락했다. 대화의 흐름이 아주 쿨했다. 쓸데없는 겉핥기식 대화가 없고, 상대방 나이에 맞춰 말투를 조절할 필요도 없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본론에 집중하는 문화에 마음이 꽂혔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같이 출근했지만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매료된 상태였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마음을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해외로 가야만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했다. 여러 번 설득하다보니(사실 합리화에 가깝다) 꽤 그럴듯한 문장이 나왔다.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실제로 해외에서 일을 해봐야 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해외로 가긴 싫었다. 나는 깡 하나만 믿고 돌진하는 타입은 못 된다. 내가 아무리 원할지언정, 나를 위한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안 되면 되게 하라!'보다는 '왜 안 되는지, 가능한 방법은 뭐가 있는지 확인해보자'에 가깝다. 나는 해외로 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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