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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Mar 29. 2023

권위주의 정부는 '불법화' 칼을 쓴다. 부끄러움이 없다

예멘 알리 압둘라 살레흐, 22년. 튀니지 벤 알리, 24년. 이집트 무바라크, 30년. 리비아 무아마르 알카다피, 42년. 쟁쟁한 저 독재자들 같으니라고. 저들을 무너뜨린 건 ‘아랍의 봄’이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미완의 혁명’이라 하겠지만, 어쩌면 역사의 작은 점이다. 어디든 온전한 승리 같은 건 없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 뿐 사건이 이어진다. 그 흐름이 그곳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일까? 설혹 퇴행하더라도 자유의 기억이 씨앗이 될까? 그들의 역사에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되는 지점은 또 어디인가?


#아랍의봄_그후_10년의_흐름 이집트 여행 다녀와서 이집트 편을 봤고, 지진 이후 튀르키예와 시리아 편을 간단히 정리했다. 작심해 완독한 건 팟캐스트 #조용한생활 3월호 책으로 골랐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언론인 마리아 레사의 #권력은_현실을_어떻게_조작하는가 도 함께 소개했다. 아시아 넘버원, 세계에서도 손꼽는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으로서 이 책들을 굳이 또 고른 이유는 묻지 말기를.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권력자들은 법치주의 칼을 쓴다


입맛에 맞지 않는 건 ‘불법’으로 몰았다. 1981년 집권한 이집트 무바라크는 신성모독법으로 대통령이나 정부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불법화했다. 아랍의 봄 이후 시시 대통령 역시 이집트의 시민 활동가, 언론인, 연구자 수십 명을 범죄자로 몰아 구금, 고문했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야당 성향 언론사, 기업, 학교, 연구소를 불법 혐의로 폐쇄했고, 한때 동지였던 야당 지도자 귈렌을 국가전복 혐의로 기소했다.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을 비난했던 소년들은 붙잡혀 고문당했다. 13세 소년의 시신 영상이 저항의 불씨가 됐다. 바레인은 정치소사이어티법, 반테러법 등으로 반정부세력 탄압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했다. 바레인 인권운동가는 트윗으로 정부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고, 풀려난 뒤 정부 비판이 가짜뉴스라는 이유로 다시 감옥에 갔다. 바레인 야권 지도자는 연설이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걸프국과 카타르 외교가 삐걱거리던 시절 카타르 중재회담에 참여한게 스파이 활동이란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망정이지 필리핀의 마리아 레사는 명예훼손, 탈세, 증권 사기 등 8가지 혐의를 받고 있고, 외국인 투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언론사 허가가 취소됐다. 이란에서는 어쩌다보니 히잡이 권위주의 공포정치의 상징이다. 시위로 거리에서 죽거나, 사형당하거나. 경찰의 성폭력 의혹, 독가스 살포 의혹도 있다.


그 권력자들은 부끄러움이 없다

그들은 스케일도 대담하고, 무도하게 밀어붙인다. 

튀르키예의 에르도안은  현직 군인 1만7000명을 숙청했고, 공직자 14만 명을 해임했다. 언론인과 지식인 5만 명을 투옥했다. 필리핀 두테르테는 6000명의 충성파로 정부를 채웠고, 정적과 언론인을 탄압하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친사담 독재주의자, 테러리스트, 반민주주의자로 낙인 찍었다. 2019년 말 약 70일 간 반정부 시위에 나선 ‘폭도’ 사망자가 528명으로 집계됐는데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반정부 활동가, 언론인에 대한 암살 시도만 81건. 이중 34명이 실제 사망했다. 이 시기 체포된 시위대가 수천 명이다. 바레인은 지난 10년 간 종교지도자, 정치인, 기자, 인권운동가 반정부 인사 수백명이 테러 연루 혐의로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작년 말 이란 히잡 시위로 잡혀간 2만2000명은 올해 풀려났다. 필리핀 두테르테 방식의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날마다 수십 명씩 거리에서 죽어나갔다. 1998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가 물러날 때까지 1400명이 사망했다. 군 조직과 준군사 조직이 민주화 운동에 잠입해 평판을 훼손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수하르토 방식은 몇 몇 국가들이 따라했다. 수하르토 사임 후에도 폭력은 이어졌다. 당시 타겟은 화교였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생존 경쟁을 유발하자 제도화된 인종차별이 확산됐다. 이슬람인과 기독교인이 섞여있는 인도네시아 암본에서는 종교 폭력으로 1년 여 만에 4000명이 사망했다. 2002년에는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단다. 언제나 희생은 "쟤들 탓"이고, "쟤들이 나쁜거"다. 우리는 숭고한 소명을 다할 뿐이다. 포퓰리스트들은 다 똑같은 헛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권력에 대한 도전이 제기되면 지도자는 언론을 통제해 자신을 위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마리아 레사의 말이다. 


시민혁명(튀니지, 이집트), 종파분쟁(바레인, 시리아), 종족분쟁(리비아) 등 조금씩 다르지만 권력자들이 이를 이용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언론은 한때 통제 대상이었고, 필리핀 사례에서 보듯, 언론을 싸잡아 비난하며 불신사회를 만드는 전략도 통한다. 온라인에서는 몇 몇 국가가 직접 혐오와 분노를 부채질하며 인간 봇과 로봇을 이용했다. 

Patriotic trolling: how governments endorse hate campaigns against critics - 가디언. 2017.7

A Global Guide to State-Sponsored Trolling - 블룸버그. 2018. 7


정치가 망하면 경제도 어렵다


독재자도 처음엔 다 지지받는 혁명가다. 에르도안이 그랬다. 그땐 경제도 잘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경제도 무너졌다. 시리아는 내전의 늪에서 빠져나오긴 했지만 인구의 90%가 빈곤에 시달린다. 이집트의 새 정부는 40%에 육박하던 청년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집트 국부의 40%를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군부에도 끝내 다시 밀렸다. 튀니지는 민주주의 쪽은 성적표가 괜찮지만 실업과 인플레이션, 2016년 IMF 구제금융 대가로 보조금 축소, 공공부문 일자리 감축 등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이라크는 국제투명성기구 반부패국가 순위에서 180개국 중 160위다. 빈곤율은 세계 평균 9.2%를 웃도는 27%에 달한다. 세계 4위의 석유 부국이지만 전기와 식수 등 공공서비스도 엉망이다. 엘리트의 무능과 부패가 원인이다. 이란도 이념보다 빵이 문제다. 청년 실업률이 30%에 달한다. 권력자들이 정권 유지에 관심이 높으면 민생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


국제 정세도 다 맥락이 있다


왜들 난리냐 하겠지만 우연이 아니다.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소 냉전 시기로 들어갔다. 미국과 소련 모두 자기 편이라면 독재든 뭐든 눈감아줬다. 박정희 정부도 그런 우산 아래 있었다. 1980년 냉전이 끝나면서 각 권위주의 정권이 위기에 몰린건 당연하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시민들이 저항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를 몰아낸 1986년 피플파워 투쟁은 한국의 1987년, 미얀마의 1988년 민주화운동, 1989년 천안문 사태는 다 연결된다. 성공했든 못했든. 

2001.9.11 도 변곡점이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면서 세상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가치를 앞세워 민주주의 정부를 지원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섰으나 폭력과 테러는 더 걷잡을 수 없었고 혼돈에 빠졌다. 서아시아 곳곳에서는 그동안 권위주의 정부에 밀렸던 이슬람 정치 세력이 복귀했다. 미국이 더 질색하는 결과였다. 거기에 내전과 혼란은 난민을 고통에 몰아넣었고, 그들을 받네 마네 유럽을 분열시켰다. 브렉시트는 물론 유럽 극우파가 들썩이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나 싶은 파시스트의 구호가 난무한다. 

미국은 중동 개입을 축소하고 중국 견제를 위한 Pivot to Asia 를 선언했으나 아랍의 봄으로 오락가락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일단 멈췄다. 세속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 자국중심주의, 문명론적 지역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각자 잇속을 차리는데 집중한다. 자칫하면 호구되기 쉬운 시절이다.


정부만 믿기엔 불안한가? 지난 100년, 50년, 30년의 각국 역사만 봐도 교훈이 널려 있다.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을 바보 취급하며, 니편 내편 갈라치기하며 분열로 표를 모으는 정치인들은 해롭다. 그래도 꼭 그 길로 가더라. 

그래도 다행히, 우리 사회엔 총이 없다. 피해의 스케일이 다르다. 정치를 살리지 않으면 점점 나빠질 거란 건 분명하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정보와 교육이다. 챗GPT 시대에 퍽이나 안심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에브리씽에브리웨어올앳원스에서 답을 줬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Be kind, 다정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이 다르다고 혐오만 하다가는 다 망하게 생겼다. 와중에 수박 어쩌고 하는 이들도, OO녀 OO남 하는 것도 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거다. 이걸 어떻게 나누고 떠들고 힘을 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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