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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5. 2023

<스페인 6일차> 남친 놀이에 열중하는 남편과 론다

<스페인 1일차> 남편의 쓸모, 남편의 재발견을 위해

<스페인 2일차>몬세라트, 치유의 성모님부터 바르사까지

<스페인 3일차> 가우디는 외계인일거야 &보케리아 시장

<스페인 4일차>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스페인 5일차>알함브라,수학적으로 시적으로 아름답다


3유로 귀걸이 하나 사달라고 했다. 300유로 인들 못 사주겠냐고 하더라. 그는 내가 3유로 물건을 더 좋아한다는걸 안다. 말은 참 잘한다. 와중에 보는 눈은 있어서 내가 고른건 4유로 짜리였다.


그라나다 #알카이세리아_재래시장은 가벼운 산책코스였다. 그래도 시장 구경만큼 재미난게 없다.

작년 그리스에서 보던 디자인이 올초 이집트에도 있다 싶더니 그라나다에도 있다. 다 통한다. 이슬람 스타일이 예쁘긴 하다. 그릇 욕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등이 예뻐 감탄하지만 싸들고 갈 수 없다. 기내 캐리어 10kg 유지할 작정이다. 와인 마개는 하나 챙겼다. 남편 혼자 마시니 한 병을 다 못 비운다. 그라나다 숙소의 웰컴 와인 남은걸 마개로 막았다.

무슬림들은 여성들을 꽁꽁 싸매면서 시장의 원피스는 다 시원하다. 그리스에서도, 여기서도 눈독만 들인다. 대신 10유로 빨강 바지 득템. 이젠 귀엽고 원색적이고 싶은 마음에 딱이다. 안달루시아 동네 답게 플라멩코 의상도 눈에 띄는데 내 취향은 아니다. 동네 총도 참 예쁜데, 어디서 걸리면 혼날거 같다.


여유작작 동네 구경하다보니 공원이 역시 좋다. 작은 골목 다니다보면 중간중간 미니 광장에서 녹색이 펼쳐진다. 빵 파는 키오스크는 분주하고,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야외 테이블이 편해보인다. 누구든 앉아서 쉬도록 해놓은 녹지는 작아도 많은게 좋구나. 길을 씻는 청소부는 밤에도 아침에도 바쁘다. 점점이 얼룩진게 깨끗하게 씻겨나간다. 아마 비둘기똥? 거리를 치우는 공공일자리는 좀 더 늘어도 좋겠다 싶다. 고마운 분들이다.


그라나다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춥고 낮엔 따뜻하다. 광장에 앉아 잠시 광합성. 주변 카페 테이블 들어가려다 응달이라, 양지바른 곳을 찾았다. 햇볕이 좋다. #마냐여행 #스페인_6일차 #스페인_epi11



인류가 소를 경배했던가. 다짜고짜 14000년 전 동굴벽화 얘기부터 꺼내다니 론다 투우경기장의 패기에 슲며시 감탄했다. 알찬 박물관 설명을 보니 소가 등장하는 신화와 전설이 한두 개가 아니구나. 힘의 상징인 소를 죽이는 게 그렇게 피끓는 일인가.


1785년에 건설된 론다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됐다. 쨍하니 파란 하늘은 볕이 따갑지만 관중석은 그늘이다. 온갖 VIP들의 유흥거리였으니 허투루 만들지 않았겠지. 원형 마당은 광활하다. 흥분한 소를 내몰고, 죽이는 '게임'이란게 마뜩찮지만 인간 검투사를 구경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인류의 이 갬성은 뭐란 말인가.

투우경기, 투우사, 소는 고야를 비롯해 스페인 화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투우사들은 당대의 아이돌. 투우 '다이너스티'들 소개를 보는데 저 아버지와 아들, 쫌 많이 잘생겼다. 의상도 화려하고, 요즘 아이돌에게 춤과 노래만 본다는게 어쩐지 다행이다 싶다.

귀족 꼬마에게 소의 탈을 쓴 이가 투우놀이 해주는 그림을 보면, 어쨌거나 소를 놀리는게 부와 권력, 힘을 과시하는 놀이였던가. 암만봐도 잔인하다. 안달루시아의 이 전통은 카탈루냐 등 다른 동네에선 싫어했단다. 그럴 수 있겠다.

여성 투우사는 잘 몰랐다. 굳이 소를 죽이는 경기에 도전한 건 씩씩한 로망 보다 상품성 덕이 아니었을까? 소 굿즈들도 화려한데 어쩐지 슬프다. 와중에 론다가 소꼬리찜으로 유명한게 관련이 있나? 궁금했으나 머리에서 지웠다. 안 궁금해 안 궁금해. #마냐여행 #스페인_6일차 #스페인_epi12



"형님은 남친놀이에 빠져계시던데ㅋ"

후배 S의 제보. 남친놀이? 남편도 아닌 남친 코스프레는 뭐지? 둘의 차이가 뭐야?

여친 사진 예쁘게 찍어주는데 집중하고 있단다. 아니, 마눌 사진 찍는 것과 다른가? 나는 당신이 출사에 심취해 계속 이리 서봐라, 저리 가봐라, 몸을 돌려라, 이거 맞춰주고 있었는데?

그러나 인생사진 남겨주는데 군말 않는다. 남친놀이에 빠졌으면 그러시든가. 모델이 좋은가보지. 마눌에 대한 애정이라고 강변한다. 아무렴.

나도 어디가면 인복 끝내주는 인간인데, 남편도 그렇단다. 인복이 많단다. 후배들이, 선배들이 어쩌고 저쩌고. 이보세요. 당신 인복의 시작과 끝은 나라고요. 또 동공지진이네.

땡큐 남친
다양한 설정샷
바람부는 론다


남는건 사진이란데 의기투합했지만, 론다는 사진으로 남기는게 힘들다. 그라나다에서 차로 2시간 달려왔다. 절벽 위에 도시를 세우다니, 천혜의 요새였을까? 절경이다. 18세기 초에 한번 무너졌던 다리를 다시 세워서 '누에보 다리', new, 새 다리란 이름을 얻은 이 다리는 이제 론다의 역사고 심장이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숨이 막힌다. 어지간하면 평지만 고집하는 나도 기꺼이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다른 뷰에서 보고 싶었다. 황홀한 풍경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의 흔적이 어우러진 걸 좋아한다는 남편. 그래서 론다를 여정에 넣은 게 나다.


마지막 사진은 오늘 우리 숙소 파라도르. 수도원을 리모델링해 국가가 관리하는 호텔이다. 이번 스페인 일정에선 가장 좋고 비싼 곳인데 다른 도시 파라도르 보다는 가성비 좋고, 숙박비 사악하게 비싼 런던에선 창문 없는 방 얻을 수준이다. 파라도르에서 묵다니 출세했구나, 나를 놀리는 남편. 내가 출세한 걸 이걸로 확인할 생각은 없었으나, 틀린 말은 아니다. 온갖 궁전과 좋은 곳만 다니는 여행을 하다보니 옛 왕족 부럽지 않다.  #마냐여행 #스페인_6일차 #스페인_epi13



아티초크는 고대 로마인들도 별미로 먹었다는데, 구운 새우를 얹었다. 트러플 소금과 오일을 듬뿍 쓴 거 같은데 구글 평점 4.9 리뷰가 온틍 이 메뉴였다. 나는 곁들여 나온 빵에 반했다. 차가운 토마토 소스와 올리브유에 흠뻑 적신 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스파라거스 구이도 풍미가 끝내준다. 채소가 부족한 여행 식단, 론다 저녁에 신경 좀 썼다. 생선요리까지 완벽했다. 그는 와인, 나는 아구아 공 까스(아쿠아 with 가스), 탄산수다. 4.8 식당 찾아갔다가 오늘 휴무란데 놀라서 다시 찾은게 4.9 식당 Gastro-Bar MK​ 라니. 내가 이렇다.

점심은 그라나다에서 고속도로, 아니 국도 타고 가다가 검색한 길가 맛집​. 메뉴판이 없다. 수첩에 메모해서 설명해주는 집이다. 스타터 메뉴로 빠에야? 좀 이상했지만 주문했다. 스타터로 나온 차가운 토마토 스프, 홀딱 반해서 퍼먹었다. 근데 옆에 빠에야를 보니 이게 스타터라고? 메인으로 소스 얹은 돼지고기와 구운 닭고기. 돼지는 카레 같아서 편했고, 닭은 레몬즙과 소금으로만. 다행히 양이 많지 않아 네 접시를 둘이 해치웠다. 가격도 20유로 밖에 안했네.


츄러스를 바로 튀겨주는 집에서 아침. 뜨끈뜨끈 기름진 츄러스를 초콜렛에 먹다보니, 어제 츄러스는 약식이었구만. 따뜻하게 구워주는 보카디요 샌드위치는 실패가 없다. 완전 취향저격 메뉴. 스페인은 먹방 천국이다. 이탈리아보다 훨씬 다채롭다. 한식 매니아인 남편이 한식을 찾지 않는다. 내가 그 사태를 막기 위해 얼마나 메뉴 선정에 고심하는지 그는 모를거다. 맛집 검색에 쌓은 공력을 이렇게 발휘하고 있다.

오렌지와 딸기, 사과도 사먹기 시작했다. 1유로, 2유로 밖에 안한다. 먹거리 저렴한 나라가 최고다. 먹방계의 달인 ㅅㅇㅅ옵이 스페인에서 감을 먹으라고, 부디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감이 없다. 봄이잖냐. 어느 가을에 감 맛보러 스페인 다시 와야 하나. 어쩌면 와인을 다시 마실 수 있을 때 와야한다. 저 가격 와인 실화냐고.. 아니, 다시 마실 그 날이 와도 나는 양보다 질일텐데.. 왜 저런데 눈 돌아가고..

#마냐먹방 #마냐여행 #스페인_6일차 #스페인_epi14 #식당링크는_브런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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