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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6. 2023

<스페인 7일차>코르도바,이슬람과 가톨릭의 기묘한 동거


<스페인 1일차> 남편의 쓸모, 남편의 재발견을 위해

<스페인 2일차>몬세라트, 치유의 성모님부터 바르사까지

<스페인 3일차> 가우디는 외계인일거야 &보케리아 시장

<스페인 4일차>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스페인 5일차>알함브라,수학적으로 시적으로 아름답다

<스페인 6일차> 남친 놀이에 열중하는 남편과 론다


오믈렛도 스크램블도 없는데 이렇게 완벽하게 흡족한 호텔 조식이라니. 론다 파라도르에서 아침 과식했다. 구운 빵에 발라먹는 토마토, 아보카도, 생선 스프레드..하몽과 햄치즈도 괜찮았지만 이것만으로 넘치게 좋았다. 저 토마토 레서피 반드시 구할테다. 빵에 토마토, 올리브유 듬뿍 뿌려 먹으면 행복한 맛이다. 테이블마다 올리브유가 있어 뚜껑 새로 따서 뿌렸다. 과일도 원없이 먹었다. 역시 스페인은 오렌지가 달다. 사과는 몇번 시도했는데 시다.


과식했으니 움직였다. 거리는 가깝지만 고도가 확 낮아지는 아랫동네로..


13세기 아랍 목욕탕. 당나귀가 고생 많았다. 탑 위에서 계속 뱅글뱅글 돈다. 물을 길어올리는 도르레 장치다. 이 물은 수로를 통해 목욕탕으로 들어가는데 일꾼이 계속 장작을 넣어 가마에 불을 뗀다. 목욕탕 유지 장치는 당나귀와 인간의 쌩노가다. 덕분에 별모양 채광 창으로 볕이 들어오는 가운데 따뜻한 목욕을 누군가 즐겼다. 옆방에서는 엎드려 누운채 맛사지를 받거나 구석에서 낮잠을 즐긴다. 13세기 찜질방이다. 여탕이 없어보이는게 흠. 론다에 남은 아랍 목욕탕은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는데 설명 영상까지 보니 완전 멋지다. 4.5유로 입장료 아깝다는 평도 있지만 우리는 대만족.


론다는 가파른 협곡 위 절벽에 세워진 중세 도시. 강물을 위로 끌어올릴 수는 없었을테니 목욕탕은 아래쪽에 있다. 윗쪽 도시에 물을 올리려면 당나귀가 떼지어 과로했을 듯. 우리는 그 윗쪽 더운 물이 콸콸 나오는 숙소에 묵었다. 옛 유적의 수로 시설을 보면 '치수'가 지도자의 어떤 소명이었을까 싶다. 농사 외에도 시민들이 물을 마음껏 쓴다는 건 기술의 마법이다.

목욕탕 안과 밖의 아치형 기둥을 보면서 남편이 썰을 풀었다. 둥근 아치형 건축물은 사각형 기둥에 비해 훨씬 튼튼한 이유는 수평 압력과 수직 압력이 어쩌고.. 세계사 시간? 지리 시간에 배우지 않았냐고 반문하는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일단 똑똑해보이니 득점 찬스다.


무튼 론다를 떠나 코르도바로. 그라나다에서 코르도바 먼저 갔어야 동선이 맞는데 론다 파라도르 숙박 일정을 일찌감치 확정하는 바람에 꼬였다. 어딜 가도 대충 2시간 거리지만 혹시 여행 계획한다면 참고.

당초 푸조 소형차를 빌렸는데, 폭스바겐 골프로 받았다. 잘됐다. 한때 내 드림카다. 길은 뻥 뚫렸고, 하늘은 파랗고, 그림 같은 길이다. 속도를 눂여도 안정감 있어서 떨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좀 밟았다. 이건 다 골프 탓이다..


코르도바 숙소는 인근 공영주차장에 무료주차 가능하다고 했는데 빈 자리가 없었다. 숙소 직원은 영어가 안되고.. 빙빙 돌다가 만차이던 유료주차장에 간신히 한 자리 구했다. 한참 구경 중 이번엔 방을 잘못 내줘서 바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직원이 엉터리였다. 성질 같아선, 당신들이 무료주차 얘기했는데 못했으니 주차비 지원 하라든지, 동의 없이 짐에 손댄 것에 항의할 수도 있지만 다 넘어갔다. 사소하다 사소해.

참으면 복이? 아니 웃으면 복이 온다더니 오후 코르도바는 끝내줬다. 두둥


주차할 곳이 없어 헤매다 아주 늦은 점심. 메스키타 앞 관광식당이었다. revuelto 라는 단어를 번역기 돌려보니 오믈렛. 근데 콩과 햄 오믈렛? 이게 비주얼이 좀 황당한데 기대 이상 맛있다.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맛. 고기는 그럭저럭인데, 이 동네 감자는 이렇게 밖에 못하나? 아쉬웠던 이 생각은 이후 말라가에서 뒤집어졌다.

#마냐여행 #스페인_7일차 #스페인_epi15


1000년 전 어지간한 유럽 도시 인구가 몇 만명에 불과했던 시절, 코르도바는 100만에 육박했단다. 한때 로마보다 크고 잘나갔던 도시다. 하마트면 이번 여행에서 빼먹을 뻔 했는데 이 도시, 장난 아니다. 정확하게는 사원 메스키타 mezquita de cordoba 가 그렇다. 현재 Mosque-Cathedral of Córdoba 로 불리는데, 모스크와 성당이 한 지붕 아래 있었다. 역사가 만들어낸 기묘한 동거다.

8세기에서 9세기, 스페인 남부 안달루스를 지배하던 이슬람 왕조는 수도 코르도바에 사원을 지었다. 2만5000명이 한꺼번에 예배드리는 규모로 확장 리모델링도 이어갔다. 덕분에 일단 규모가 압도적이다. 알함브라에서 홀렸던 우아함이 또 찬란하게 펼쳐진다.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황제에게 요청해서 받은 1.6톤의 색색가지 유리 재료를 썼다는데 색도, 문양도 눈을 뗄 수 없다. 이중 아치 형태의 기둥들도 구조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메카를 향한 벽, 미흐랍은 경이롭다. 섬세한 세공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흔적은 나같은 무신론자에게 더 인상적이다. 신을 향해 인간은 어디까지 달려보는가.


700여년 이슬람 지배를 받은 스페인 남부는 온통 이슬람 유적이다. 터키에 가보지 못한 내겐 낯설고 신비롭다. 터키 외엔? 이집트는 고대 유적 중심이라 그 맛이 덜했고, 나머지 나라엔 가볼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보니 메소포타미아 문명 문외한이다. 마침 이집트 여행 전후로 아랍에 관심이 높아진 건 개인적 경험이지만 이 문명, 더 보고 싶다.


이슬람을 몰아낸 뒤 당대의 코르도바 성직자들은 권세를 과시했다. 사원을 다 부수지는 않았지만 그 내부에 뽀대나는 대성당을 넣었다. 사원 복판에 거대한 고딕 성당이라니 기묘하다. 성당 중에서도 화려함에 방점을 찍은 모양이다. 코르도바가 잘 사는 도시라 그랬을 수도 있고, 하여간에.

700년 지배 끝에 이슬람 사원이 가톨릭 성당이 되는 시절에 코르도바 사람들은 어떻게 적응했을까? 이슬람이 잘나가던 시절에도 당대 학자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을 큰 도시. 그들은 어느 편에 서서 떠들고 있었을까? 어떤 가치를 역설하고 있었을까? 부역자와 배신자가 된 이들은 없었을까? 가톨릭 지도자인 카를5세는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이 성당에 잠식된 걸 보고 통탄했다던데, 그 시절 풍경이 궁금하다. 그들은 21세기 후손들이 이슬람 유적으로 관광업에 종사할지 몰랐겠지.


코르도바는 이슬람 통치 시대의 수도. 뭐 꼭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남편은 사진 몇 장에 할랄 음식을 골랐다. 메뉴 결정권을 가진 나는 고심 끝에 양고기 kabseh 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전통 음식을 주문했다. 순전히 호기심. 아몬드를 곁들였다는데, 이거 카레향 나는 밥에 아몬드가 좀 들어있다. 가운데 양고기는 두툼한데 향신료 맛이 적다. 남편은 좀 밍밍했던 모양. 아이올리 소스와 먹으면 괜찮다. 닭고기 꼬치구이는 성공. 익숙한 맛이긴 하다.


메스키타 앞이 바로 2000년 전에 지어졌다는 로마교다. 야경 맛집으로 소문나서, 저녁 먹고 느지막하게 갔다. 해가 늦게 떨어지는 이 동네는 하루가 긴 느낌인데, 사실 밤이 더 예뻐서 이러나저러나 상관 없다.

#마냐여행 #스페인_7일차 #스페인_epi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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