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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17. 2023

<스페인 8일차> 말라가, 지중해와 태양을 피카소 마냥

스페인, 동쪽 카탈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시작. 남쪽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 => 론다 => 코르도바 => 말라가...


<스페인 1일차> 남편의 쓸모, 남편의 재발견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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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3일차> 가우디는 외계인일거야 &보케리아 시장

<스페인 4일차>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스페인 5일차>알함브라,수학적으로 시적으로 아름답다

<스페인 6일차> 남친 놀이에 열중하는 남편과 론다

<스페인 7일차>코르도바,이슬람과 가톨릭의 기묘한 동거


코르도바는 숙소가 그저 그랬다. 위치만 완벽했다. 작년에 함께 여행한 친구에게 배웠는데, 여행의 질은 숙소가 좌우한다. 주요 관광지까지 걸어서 30분 이내 범위에서 깔끔하고 쾌적한 숙소? 이건 돈으로 해결하는게 가장 쉽지만 알뜰한 나는 가성비도 중요한 기준이다. 지도 펼치고 때로 지하철 노선도까지 보면서 숙소 고르느라 눈이 침침할 지경이었으나, 어찌 다 성공하겠나. 코르도바는 걸어서 7분 거리에 메스키타가 있었다. 공동주방의 토스트와 전날 론다에서 챙긴 사과로 아침 챙겨먹고 바로 떠났다.

뭔가 아쉬워보이는 그를 위해 현지조달 컵라면 하나 나눠먹자고 제안. 론다엔 중국 컵라면 밖에 없어서 모험 삼아 사봤는데, 이거 카레 컵라면이다. 어쨌거나 여행 중 뜨끈 국물은 처음


그라나다와 말라가 숙소는 성공했다.  말라가 숙소는 피카소 미술관까지 170m. 15분 걸어가면 지중해다. 코르도바와 마찬가지로 골목이 좁아서 차는 좀 멀리 세워야 한다. 우리는 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두고, 배낭에 단촐한 짐을 챙겨 움직였다.


말라가. 이름도 낯선 이곳에 오게 될지 몰랐다. 이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등 자동차로 가기 좋은 예쁜 도시들이 당초 후보였다. 말라가는 숙소 잡기 편한 지중해 휴양지? 근데 피카소가 태어난 곳이란다. 우리로 치면 남부 해안도시 여수나 통영 출신? 궁금했다. 그리고 P가 댓글을 남겼다.
"한 여름 스페인 남부 말라가 가서 작열하는 태양을 맛보셔야 피카소가 이해될 것"이라고. 뭔가 뜨거운 태양과 어울리는 말라가에 혹했다. 스페인 여행이니까. 마드리드를 포기하면서 피카소의 '게르니카' 실물 알현 기회까지 놓쳤으니 말라가라도.


이 동네도 걸어서 10분 거리에 거의 모든게 다 있다. 대성당과 요새 알카사바 성벽 아래 원형극장..뭐든 하늘이 쨍하니 그림 같다.


피카소 생가부터 들렸다. 그는 정말 사기캐였다는 걸 이제 알았다. 불공평하다. 왼쪽은 그가 기억하는 첫 그림. 헤라클레스 조각을 보고 따라그렸다. 그는 말한다. I was perhaps six.. 저게 6살 그림이니, 오른쪽이 14살 때 상 탄 그림이란게 이상하지 않다. 자기 아이 땐 라파엘로 처럼 잘 그렸는데, 정작 아이처럼 그리는데 온 인생을 쏟았다는 피카소 말이 인상적이다.


여성의 몸을 그리는데 평생 '헌신'한 화가는 모델과 함께 한 모습도 여럿 남겼다. 나이가 들수록 달라진 선. 그는 정말 벗은 여자의 몸에 꽂혀 평생 작업한듯.


1881년에 태어난 그가 그 시절 꽤 유복했다는 건 왼쪽 사진 보면서 실감했다. 소년 피카소가 뒤를 돌아보고 있다. 나무 우거진 정원에서 하얀 테이블보 식탁에서 대가족이 식사하는 모습이 쫌 있어 보이긴 한다. 생가 자체가, 뭐랄까 평수가 넓다.


그의 소들.


피카소 생가가 있는 Merced 광장 한 켠의 평점 4.7 식당 Picasso Bar Tapas. 남편은 내가 구글 평점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인데.. 그 옆집들이 3점대 초반 처참한 평점인 와중에 고고하게 저런 평점에 리뷰가 9700개 쯤 되면 다른거다. 내 취향 토마토 냉스프 가스파초, 아이올리 소스 곁들인 스페인식 오믈렛, 아몬드 소스의 미트볼을 주문했다. 이 동네 아몬드 소스는 카레맛이구나. 어제에 이어 확인. 지중해 동네에서 날씨 좋을 때 광장 먹방은 나쁠 수가 없다.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테이블마다 두고 팍팍 뿌려먹는게 기본인 동네다. 남편은 가스파초를 좀 낯설어했다.


살살 10분 걸어 말라가 해변. 거리의 야자수 때문에 플로리다 느낌도 나던데, 여긴 진짜 바다 도시. 지중해 바다 물색은 짙은 옥빛으로 빛났다. 고운 파랑이다. 남편이 내 생각해서, 나는 남편이 하자니까 양보해서 썬베드를 빌렸는데 바람이 너무 차가워 윗옷 뒤집어 쓰고 떨었다. 왜 다른 이들은 저렇게 헐벗고 괜찮은거지? 알고보니 모래가 무척 따뜻하다. 찜질방 같다. 썬베드 대신 모래에 누웠어야 했다. 뒤늦게 몸을 데우는데 아, 따땃하니 좋구만. 남편은 토플리스 차림 여성을, 그것도 우르르 모인 분들을 처음 봤다고. 며칠전 바르셀로나 인근 시체스 해변에서도 나만 본거였다. 넘나 자연스러워서, 우리가 가슴을 가리고 사는 이유가 뭔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냥 내놓고 살아도 별 문제 없어 보인다. 히잡 동네에서 눈 빼고 다 가린다든지, 최소 비키니 정도는 가린다든지, 그건 누가 정했지? 미니스커트도 한 때는 단속했는데? 우린 가슴 내놓으면 풍기문란 걸리려나? 언제쯤 더 자유로워질까?
지중해 바닷가에서 책 좀 보겠다고 지적허영 코스프레 작심했으나 볕이 좋아 그냥 졸았다. 말라가 해변에서 낮잠 잤으면 됐다. 지중해와 태양을 피카소 마냥 즐겼다.


일요일 오후 5시 이후 말라가 피카소 미술관이 무료다. 30분 전에 가서 줄섰다. 난 뒷줄 꼬마들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창살을 잡고 자기 가슴 높이 단 위로 올라서더니, 계속 붙잡고 더 올라가려 한다. 저러다 떨어질까 뭔가 걱정되는데 별 일 없이 놀다가..결국 아빠에게 붙잡혀 하산. 애가 울며불며 기어이 또 올라가겠다고 난리치고 아빠는 고달프고ㅎㅎ 저 꼬마들 데리고 미술관이라니 몇 가족 모였던데 보기 좋았다. 아이들 높은음자리 소리를 듣는게 즐겁다. 내 아이가 아니라서 그런가? 말썽 피우는게 더 예쁘다. 우리도 꼬마들 데리고 힘들게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득하네..


피카소의 여자들. 처음부터 선과 면이 우리가 아는 그 스타일인 건 아니었구나.


피카소의 그녀 Dora Maar. 피카소 딴에는 무척 예쁘게 그려준걸까?


피카소의 또다른 그녀 프랑소아즈 질로. 로버트 파카가 저 사진 찍었을 때 둘이 스물일곱, 예순일곱. 하여간에 질로를 모델로 한 그림은 오른쪽이다. 난 정말 보는 눈이 없는 인간이라, 큐비즘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남친이 아무리 거장이라도 이렇게 나를 그려주면.. 음...


현실에서도, 작품에서도 온통 여인들.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셨음.


모자를 쓴 여인이 어디 한둘인가 싶지만.. 왼쪽 판화의 원판을 옆으로 눕히면 목욕탕 풍경 맞네? 제목이 왜 다르지 싶었는데 다를만 했네.


평화주의자로서 비둘기에 대한 애정도 깊은 피카소, 부엉이도 좋아했나? 동물 그린게 워낙 많지만 이 부엉이들은 새벽을 기다리는가?


자전거 안장과 핸들... 황소.


이 시리즈의 제목은 Dream and Lie of Franco. 피카소를 비롯해 당대 스페인 사람들은 파시스트 프랑코를 어찌 견뎠을까? 피카소야 해외로 피해버렸지만.


이 미술관엔 없지만. 이 작품도 괜히 남겨본다. 피카소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피카소 크레파스 만들던 제조업자는 상품명을 바꿔야했던 시절이 있다. 2021년 조선일보에는 피카소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은 6·25전쟁 허위 선전물"이라는 글이 실렸다.


미술관 나올 때 보면.. 이런 소소한 재미. 흑백으로 사진 남길 수 있다.


역시 걸어서 3분. 구글 리뷰 1.3만개의 El Pimpi. 말라가 맛집이라는데 7시 반 넘어가니 줄서더라. '말라가 샐러드'가 어떤건지 궁금했는데 아이올리 소스를 듬뿍 쓴 감자사라다. 맛있다. 앤초비 튀김은 벼르고 벼르다 주문했다. 한번은 먹고 싶은데 남편 취향은 아닌지라.. 이곳에서 반 접시 7유로에 주문. 나온걸 보고 반 접시가 아니라 한 접시 다 나온게 아닌가 갸웃할 정도로 푸짐하고, 갓 튀긴 생선은 또 진리. 내키지 않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남편도 정작 맛보더니 나쁘지 않다고. 멸치튀김이냐 추어튀김이냐 후자에 가깝지만 레몬 반개를 아낌없이 꽉 짜서 상큼한 풍미가 진하다. 겨자 소스를 곁들인 돼지고기도 괜찮았다. 이젠 경험이 생겨서 '무슨 소스를 곁들인' 이란 걸 주로 주문한다. 아니면 보통 소금후추레몬 베이스인데, 남편은 소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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