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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호 Feb 22. 2024

잘 갔다 왔다.

Day 11


약간의 위기가 왔다. 11일 차 밖에 안된 요가 일지인데 뭐 이리 위기가 잦냐만!

이걸 내가 100일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이렇게 써봤자 누가 봐주겠냐 하는 현실 사이에서 현타가 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왕 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와 같지. 그냥 너무 생각 말고 이 글을 쓰는 이유와 본질만 보자.


비트요가를 다녀왔다. 원랜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 쉬려고 했는데, 아랫배가 꿍실 꿍실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에 곧 대 자연이 시작될 느낌이라 어떻게 스케줄을 분배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아. 아무래도 하루 쉬고 싶은데 오늘 쉬고 다음 주 내리 생리면 도대체 얼마나 빠져야 하는 건가, 그리고 이 글은 얼마나 또 길게 가져가야 하는 건가 하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되도록이면 미리 타이트하게 가두자.’

하고 마음먹고는 뒤늦게 마지막 타임 요가를 가기로 결정했다.


저번 비트요가 때 살짝 동공이 풀리고 아찔한 경험을 했지만 두 번째 타임이니 괜찮겠지 싶어 차가워진 밤공기를 뚫고 성큼성큼 요가원으로 향했다.


오호라. 마지막 타임 요가는 나 포함 네 명 밖에 없다.

이 의미인 즉, 한 명 한 명 동작이 적나라히 잘 보인단 의미. 요령 따윈 피우기 힘들지도 모른단 의미! 속으로 ‘아뿔싸-‘ 싶었지만 에이, 이왕 온 거 그냥 하는 거다! 며 스스로를 환기시켰다. 비트가 시작이 되었고 원장님의 구령에 맞춰 플로우가 시작되었다.


한 10분 했을까, 갑자기 몸에 힘이 잘 안 붙는 게 느껴진다.

‘어라. 오늘 진짜 날이 아닌 건가. 벌써 너무 지치는데.’


보통 40분 정도 달려야 풀리는 동공이 벌써부터 풀리고 난리다. 전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자꾸 초점 풀린 렌즈처럼 흐리게 보인다. 아무리 초점을 맞추고 모습을 선명히 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아. 몰라. 그냥 동공 풀린 채로 해.’


눈에 힘을 풀고 좀비처럼 동작을 이어나갔다. 비록 동태눈이었지만 몸은 그래도 나름 차근차근 잘 따라왔다. 그래도 저번보다 좀 몸에 익었는지 덜 허둥댔다. 하지만 허둥대지 않는다고 쉽게만 끝날 비트요가가 아니다. 비트요가의 절정은 마지막 10분여의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마지막 10분여를 남겨두고 윗 배가 터질 듯이 움직여대는 복근운동은 정말이지 사정없게 느껴졌다. 그걸 알고 시작을 해서인가 다른 수업과는 달리 비트요가는 시간이 후반으로 치닫는 게 약간은 두려운 수업이 되어 버렸다.


마지막 10여분, 드디어 복근 운동이 시작되었다. 복근운동의 시작은 누워서 고갤 살짝 들고 다리를 허공에 30도 정도로 쭉 뻗었다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릴 번갈아가며 가슴팍에 붙여 움직이는 거다.  원장님도 이 앞의 동작들보다 더 파이팅을 외치시는 게 보인다.

‘네. 네. 해보겠습니다. 할게요! ㅠㅠ’


어라? 근데 저번보다 덜 힘들다.

‘오호- 그래도 일주일 지났다고 배에 근육이 좀 붙었나? 다리도 덜 힘들고 배도 덜 아프다. 히히.’

내심 뿌듯해하며 이제 끝이겠지 싶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란다.  누운 자세에서 다리를 또 들어 올린 상태에서 팔꿈치를 왼쪽 오른쪽 갖다 대며 복근 운동을 하는 거다.


잠시 방심했던 나는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아. 너무 아프다. 아. 아. 아.’

결국엔 두 번째 반복 때 나는 저번처럼 천장만 바라보고 팔다리를 내린 채 누워버렸다.

’하…한 세트만 쉴까?‘ 하는데 원장님이 외치신다.


“힘들면 다리만 움직이세요!!!”


‘헉. 헉. 네. 할게요. 합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다리만 벌벌 거리며 움직여보았다. 땀이 땀이 말도 못 하게 흘렀다. 마무리 운동까지 마치고 사바아사나 시간이 되었다. 사바아사나시엔 원장님께서 불을 다 꺼주시는데 오전과는 달리 깜깜한 어둠이 내부를 감쌌다. 그 나름대로 운치 있고, 고요해서 좋았다.

‘하아… 이렇게 또 하나 했구먼. 힘들지만 그래도 다 했어.’

내심 뿌듯해하며 상쾌한 마음으로 어둑해진 동네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대자연이 시작되었다.

역시 나는 내 몸을 너무 잘 안다.


어제 참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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