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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Aug 10. 2023

J에게

나의 품에서 자란자란 고이는 햇살 같은, 

필연이다. 20대에 흥얼거리던 노래 제목이 내 아이의 모습을 하고 돌아온 건. 너와의 인연이 이어지기 위한 초석이었던가. 제이라는 이름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던가. 네가 제이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걸까. 사랑하면 끊임없이 이유를, 원인을 찾는다.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그냥'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마음을, 이 감정의 실체를 샅샅이 알아내고자 하는 형이상학적 탐구의 이유는 결국, 사랑이다. 해사한 미소를 띠는 너를 보면, 지는 것 밖에 내가 할 도리가 없고, 배시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자만했던 나를 비웃듯, 제이의 존재는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고, 동기가 되고, 꿈이 된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만으로 눅진한 구름이 가슴 한복판에 살포시 놓이고, 스러져가는 마음의 빗장을 곧추 세울 수 있게 되고, 찰나의 순간을 손아귀에 담아두려고 동동거리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포 하나하나 빛을 내어 깨어나는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찾아 헤맸던 적이 있다. 나 밖에 모르고, 나에게서 위안을 찾는 것만이 유일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치기 어린 시절에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당최 머리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감각적으로도 느끼지 못하니 이유를 찾으려 애를 썼을 테다. 잠깐 불타오르고 사그라드는 불꽃같은 감정이 아닌, 적당선을 찾아 애써 안주하며 타협적으로 바라보는 사랑이 아닌, 의무와 책임이 동반돼야 하는 사랑이 아닌, 막연하고 와닿지 않는 인류애가 아닌, 종교적 숭고한 사랑이 아닌 사랑은 과연 존재할까? 어떻게 해야 그 사랑을 나도 맞이할 수 있지?라는 터무니없는 심지어 바보 같기까지 한 의문을 품었던 시절이 있다. 


되뇌어보면 내가 갈구한 이상향 같은 사랑에 대한 갈급함으로 이론서들만 뒤적였던 것 같다. 사랑 한번 못해보고 죽으면 어쩌지?라는 위기감 비슷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고, 제이를 만나기 전까지도 몰랐겠지. 비로소 그 사랑이 제이를 통해 실현될 거라는 것을. 아이가 내가 갈망했던 사랑의 대상일 거라는 생각은 단 한순간도 해본 적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당연시되는 것들을 따르는 건 뭐랄까 멋지지 않으니까. 후지고,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이를 이토록 사랑하고 경탄할 수밖에 없는 건


'그냥', 그렇게 됐다. 
그렇게 되기로 이미 설계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쁜 짓만 하고도 남을 6살이라 여유 부린다고, 한창 좋을 때라며 애잔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사랑을 나는 아직 비껴두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꽁꽁 싸매고 싶은 마음은 아니지만 고이 두고 조심스레, 한눈팔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아껴주려고 한다. 어느 때가 되면 관망할 필요도 있겠지만. 


색색이 변할, 변해야 할, 변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더라도 나에겐 '그 사랑'임에 변함이 없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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