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mall talk Apr 03. 2020

2. 식물과 원예에 대한 가브리엘의 소명의식

그리고 한의학에 대한 나의 소명의식

식물에게도 나름의 사랑과 근심이 있다.
하지만 식물은 하늘을 증인으로 삼을 필요도 느끼지 않고
흐느낌과 울부짖음으로 대기를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식물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대학 때까지 작은 농촌 시골마을에서 쭉 자라온 나는 흙과 논밭, 풀과 나무, 하늘과 바람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주 어릴 적엔 뱀도 몇 번 마주친 기억이 난다.) 서북향의 내 방은 추웠지만 종일 조용했다. 잎이 점점 자랐다가 떨어져 가지만 남았다가 하는 정원의 감나무 가지 그림자가 밤마다 사시사철 창에 비쳤다.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좁은 시골길에는 계절마다 다양한 잡초들이 돋아났다. 봄에 틔는 식물들은 꽃이 아니어도 언제나 반가웠다.


고등학생 시절 바람에 냉기가 좀 줄어든 초봄, 공부에 지쳐 바람을 좀 쐬겠다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나섰던 적이 있다. 집과 학교만 왔다갔다 했던지라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한참 가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넓은 보리밭을 마주쳤다. 보리밭은 단정했고 넓었고 멀리로 작은 집들과 하늘만 보였다. (그렇다. 나는 호남평야에 살았다.) 그렇게 조용하고 탁 트인 편안한 공간을 이후로는 만나본 적이 없다. 바람에 보리가 쓸리는 소리만 들리던 그 풍광은 아직도 종종 생각난다.

 

무주, 여름.


한의대 예과생들이 수업을 듣는 구관은 언제나 서늘한 곳이었다. 여름에도 아침엔 쌀쌀할 정도여서, 추위에 취약한 나는 쉬는 시간마다 건물 밖에 나와 햇볕을 쬐었다. 오전 9시 첫 수업보다 훨씬 일찍 학교에 가게 되면 추운 교실에 앉아있기가 싫어 산책을 나갔는데, 한의대에서 농대(현재는 생명공학대학)의 정원, 즉 학교의 끝에서 끝까지 다녀오느라 얼굴이 금방 까매졌다. 정원까지 가는 길에도 나무가 많은 학교였다. 게다가 이른 아침에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서 넓은 길, 높은 초록나무들(플라타너스들, 목련이며 벚나무, 오동나무, 소나무 등등), 따뜻한 햇볕, 적막한 공기를 내 것처럼 누릴 수 있었다.

 

청주, 겨울.


나는 조용함을 선호한다. 싸움을 싫어하고(그렇다고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큰 소리에 잘 놀라고, 어릴 적 비염에 당해 약해진 한쪽 고막이 삐걱거려 소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물보다는 식물을 더 좋아하는 내 취향은 이런 신체적 특징과 성향에서 간접적으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생 때 진지하게 임했던 적성검사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분야마저 농학(農學, 지금은 생명공학)이었는데, 일찌감치 한의대로 목표를 정하고 있었던 나는 애써 비슷한 분야라 우기며 어물쩍 잊어버렸다.


한의대에 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즈음이었다. 처음엔 그냥 막연하게 든 생각이었다. (뇌과학 관련 자료들이며 교양서적들을 읽어온 지금은 그 생각이 그냥 갑자기 떠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한다.) 당시엔 건강 문제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소화기가 특히 좋지 않아서 밥을 잘 먹지 못했고, 간혹 토하기도 했으며, 자주 심한 두통이 있었다.


하루는 새벽부터 시간마다 토하기 시작했다. 내과에 아침진료를 시작하자마자 방문했는데, 당시 그 선생님은 급성위염 진단을 내리면서 제산제와 위산중화제를 처방했다. 당시의 내 상황으로서는 안타깝게도 약은 효과가 없었고, 삼킨 약마저 곧 토해버렸다. 그렇게 하루 종일 열댓 번을 토할 것도 없는데도 토하다가, 거의 진료가 끝날 무렵의 한의원에 유령같은 몰골이 되어 기어들어갔다.


토할 때 쓰려고 손에 비닐봉지를 쥔 채 누워 발의 모 혈자리에 침을 맞았다. 그래도 아직 어릴 때라 침이 무서운데도 긴장할 힘조차 없었다. 그렇게 침이 꽂혀 가만히 누워있는데... 메슥거림이 천천히 멎었다. 읭? 정말 지옥같은 하루였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아침부터 한의원에 왔을 텐데! 이 사소한 침 자극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 종일구토(終日嘔吐) 사건은 이후 나에게 확고한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로 나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몰이해와 부당한 현실에 자주 속이 상하면서도, 한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리고 우리 한의사들은
삶이 영위되는 공간과, 사시(四時)와,
크고 작은 징후들과, 생명과 자연 본디의 순환규칙을
귀하게 여기고 매우 예민하게 감지하는 존재들이다.


무주, 가을. 추석.


집안 두 어른의 악다구니를 벗어나 산책을 나온 가브리엘이 식물과 원예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지게 된 해에 가브리엘이 열네 살이었다고 했으니, 한국 나이로 열다섯에서 열여섯, 중학교 2~3학년 나이쯤 되겠다. 당시 가브리엘이 집안 어른들 싸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거나 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시끄러움이 싫고, 시끄러운 애정문제가 싫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거름의 무렵 가브리엘은 (그 당시에는 정확히 알지 못했을) 생명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다루는 원예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는 가브리엘에 분명히 일부 반영되었을 작가의 성품이 본래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이 부분에서부터 분명하게 느낀다. 그리고 실제로 에릭 오르세나는 르포작 <물의 미래>에서 그 예민한, 소위 까칠한 성품을 여정의 중간중간 참지 못하고 드러낸다.)


가브리엘은 그렇게 조용하고 품격 있는 삶을 원하여 원예가가 되었지만, 결국 파란만장한 사랑의 바다에 빠져 휩쓸린다. 결혼의 든든한 동맹군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바로 그 직업은 오히려 몸과 마음으로 노력이 지대하게 소요되는 '엘리자베트와의' 혼외의 사랑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다.

이전 02화 1. 이세욱 번역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