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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Apr 11. 2022

사람이 사람에게 배운다

PIDA Cambodia _ 내가 그리는 발전

나는 왜 이 일을 아직도 붙들고 있을까?


4년이 지났다. 애초에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발전에 대한 다른 생각에 대해 글을 쓰기로 합의하고 간 여행이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개발협력에서 뿐 만 아니라 삶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가치들을 배우고 돌아왔다. 그렇게 받은 에너지로 내가 팀에서 쓰고 싶다고 손을 든 주제는 ‘존귀함’이었다. 우리가 생각한 발전의 맥락 중 빠져선 안될 요소 가 존재 자체의 소중함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쓸 수 있을 것인가. 캄보디아 출장 중 나의 깨달음의 핵심은 그것이었기에 선뜻 그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팀에서 선언했지만, 나는 그걸 풀어낼 재간이 없었다. 출장보고서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다고 써지는 것도 아니고, 자의식에 찬 내 감상과 주장만 줄줄 풀어낼 수도 없고, 많은 밤낮이 그냥 줄줄 흘렀다. 그렇게 PIDA 캄보디아 시민교류 이야기는 서랍 속에 있었다.


반띠에이쁘리업 졸업생과  오인돈 신부, 2010



정말 고맙다는 말


한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캄보디아 사람을 만났다. 우리 프로젝트에서 어떻게 캄보디아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설명하며 자연스레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났다.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펑펑 울어서도, 불상해서도 아니었다. 이제껏 다녀온 많은 개발도상국의 끔찍하거나 취약한 현장을 보면서 안쓰러운 감정을 느낄 때나, 같은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을 보고도 어쩔 수 없이 돌아설 때도 눈물은 자주 났었다. 그때의 눈물과는 다른 의미였다. 일을 열심히 소개하고 난 뒤, 이야기 끝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제가 아무리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도, 제가 가진 돈으로는 이 소중한 사람들을 돕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고, 사람들이 우리를 도우려고 기부할 때 자기가 마시고 싶은 커피 안 마시고, 좋아하는 간식 안 먹고 아낀 돈을 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몰라요.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반티에이쁘리업 회계 담당자, 나비(Navi)


캄보디아에서 한국 사람들과 일하지만 일상에서는 얘기를 전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 말을 한국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는 반나절 찾아온 우리에게 진심을 털어놓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안 그래도 이렇게 의미 있게 사업을 하고 있어 그것만으로 감사하고 멋지다 하고 있었는데, 돈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지 않은(지원금을 보내는 단체에서 온 것도 아닌데) 우리에게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시간을 내주어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 끝에 보였던 고맙다는 마음에 나는 또 얼마나 고마웠 던 지를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움직움직인다. 사람의 귀함. 여전히 나는 이 주제를 내가 체감하는 대로 쉽게 풀어낼 길이 없다. 다시 내가 했던 질문들을 돌이켜 본다.


우리가 처음 캄보디아에 간 것이 무엇을 배우러 가자는 마음은 아니었다. 함께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들, 협력하고 나누어야 할 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PIDA Cambodia 시민교류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에 대한 사람을 귀하게 대한다는 것이 뜬구름 잡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사업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4년 전의 글을 이제 다시 꺼내 보니, 그때는 내가 퍽 괜찮은 사람이라 이런 자리에 초대된 거고, 계속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 팀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다. 글을 다시 퇴고하는 과정에서 그때 만난 사람들과 단체 들뿐만 아니라, 내 글 속에 이야기한 줄 없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발전대안 PIDA, 지원해준 (재)바보의 나눔에 대한 고마움이 커졌다. 그리고 시민교류 프로젝트에 함께 한 김경연, 박소현, 이예향, 이재원, 장대업 그리고 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구나 싶어, 혼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PIDA Cambodia에서 야심 차게 기획했던 것이 있다. 이 소중한 순간을 우리만 보지 말고, 품이 많이 들어도 영상으로 남기자고. 이 영상을 남기기 위해, 사전 촬영 허가부터 코디네이팅 까지 PIDA의 김경연과 이재원이 고생했다. 촬영과 지난한 편집은 다큐멘터리 감독 박소현이 힘써줬다. 현장의 생생함을 아래 다큐멘터리 링크로 직접 살펴보시면 좋겠다. 그 외에 자료조사와 정리, 기록은 PIDA 이예향이 힘써줬고, 장대업은 발전의 맥락에서 노동과 메콩강 댐 주변 개발 이슈를 연구자의 입장에서 백업했다. 나는 사회적기업과 다른 방식의 임팩트평가 가능성을 살폈다. 이 모든 방문기관과 루트는 PIDA 사무국이 '우리가 그리는 발전'의 맥락으로 살피고, 조율한 덕이다. 적고 보니, 4년이 지나고도 이걸 붙잡고 있는 이유는 PIDA와 팀원들, 우리가 내미는 대화에 신뢰로 목소리를 내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었구나 싶다. 사람은 이렇게 사람을 밀고, 끌고 한다. "고맙습니다."

"PIDA" Cambodia 다큐멘터리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 (박소현 감독) 링크
러닝타임 45분 20초
캄보디아 교류 및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재)바보의 나눔



과정이 발전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리는 발전은 그럼 뭐냐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다르지만 서로가 처한 상황을 공감하고, 필요한 것을 나누어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는 '과정'이 발전인 것 같다. 그 과정이 현재형 동사가 될 때 우리는 '발전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국제개발협력이 지향하는 '발전' 되면 좋겠다.  발전을 도울 , 발전을 원할 때 필요한 것이  똑똑한 머리나 빠른 , 많은 돈만은 아니다. 삶의 안전함에  비롯되는 좋은 마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여유, 세상을 보는 관점의 다양함을 이해하는 , 사람의 귀함을 머리뿐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면 함께 머리를 맡대는 행동을 자연스레   있으면 좋겠다.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사는 나라가   있도록 경제개발도 돕지만, 사람을 사람 자체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자신감을 느끼는데 필요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혹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더라도 부족한 것을 내가 보태고 다른 사람이 보태서 함께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그 자신감은 불안함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다. 글을 시작하며 쓴 아마티아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이 긴 글을 돌아 다시 나왔다. 그 발전은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지도 모르겠다. 돕는 과정에서도 우리도 배우겠다. 늘 그렇듯.


벙꺽호수 여성활동가 그룹과 PIDA Cambodia 팀원들, Photo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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