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미역 줄거리가 어부의 마당 빨랫줄에 널려 바람 따라 흔들거리는 휴일 오후. 작은 포구가 큰 시장통이 되었다.
바다를 끼고도는 골목길을 장어 굽는 냄새가 가득 채우자 갯마을의 적막함은 그늘진 서낭당 당나무 사이로 꼬리를 감춘다.
밀물과 함께 찾아온 인파로 갯마을이 활기를 되찾았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소리는 파도 소리보다 높았고 타인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는 걸음을 옮길 수가 없을 지경이다.
검푸른 벨벳 위에서 여치처럼 뛰어다니며 재잘거리는 투명한 빛들의 조각. 그 틈 사이로 장어처럼 미끄러지며 춤을 추는 마음과 소리들이 끓는점을 넘어선 수증기 같다.
할아버지 수사님을 따라 산책길을 나선 꼬마 수사의 입술도 방향을 잃고 중얼대고 있다.
"엄마랑 미역을 따는 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물고기를 잡으려는 아저씨, 자갈을 주우며 추억을 줍는 형과 누나, 빛을 찾는 사진사, 간직하고 싶은 것을 담아두려는 듯 먼바다를 바라보는 카페에 앉아있는 이모, 사람과 어울려 춤추는 바다, 그리고 이 모두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한 아이의 엄마가 어린 딸에게 바다에 앉아 쉬고 있는 갈매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갈매기"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이는 갈매기보다 엄마의 밝은 얼굴이 좋은지 엄마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엄마와 다른 소리를 냈다.
"깔.에.기."
엄마는 웃으며 "으음, 이렇게... 갈매기."라고 다시 고쳐준다. 하지만 갈매기보다 웃는 엄마의 얼굴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의 입에서는 여전히 다른 소리가 났다.
"으...음... 깔. 에. 기!"
엄마와 아이의 행복한 웃음이 할아버지 수사의 걸음을 뒤따라 걷고 있는 꼬마 수사의 귓등을 내내 적시고 있다.
옷장 속에서 소중한 무엇을 꺼내는 듯, 물속에 코를 박고 자맥질 중인 물오리를 본 꼬마 수사가 할아버지 수사의 앞으로 달려가 물었다.
"수사님.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나요?"
"허허. 아주 어려운 질문이구나. 사람마다 다 다른 답을 하겠지. 쉽게 그 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쩌면 영원히 그 질문에 답을 못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답이 없는 질문인가요? 아니면 누가 말해줄 수 없는 답인가요?"
"어떤 질문들은 자기 스스로 풀어내야 하고 자기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데,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도 그 질문을 하기 전에 그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지를 알아야 얻을 수 있는 답이란다.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어렵지. 그래서 답은 있지만, 누가 말해줄 수 있는 답이 아니란다."
꼬마 수사가 조금 실망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꼬마 수사의 마음을 읽은 듯 할아버지 수사가 말을 이었다.
"아주 쉽게 말해보자. 마리오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지?"
"하느님요."
꼬마 수사가 아주 쉬운 질문이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분은 어디에 계시지?"
"온 세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미사 전례 중에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있어요."
"그래...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마리오의 생각과 같지는 않단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
할아버지 수사가 바닷가 빈 의자에 앉자 꼬마 수사는 할아버지 수사의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옛날 하고도 아주 아주 먼 옛날. 그때에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어느 날 하느님이 보시기에 사람들이 많은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는 세상에 사람을 창조한 것을 깊이 후회하셨단다.
그래서 하루는 성자와 성령과 함께 결정을 내리셨는데, 두려움이라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셨지."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호기심으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꼬마 수사의 얼굴에 두려움이 바다 빛에 반사되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다시 후회하시고 마음을 되돌리시지 않으셨나요? 왠지 그러셨을 것 같아요."
"허허허. 마리오도 하느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는구나. 그래. 오히려 후회하시고 마음을 돌리신 분은 하느님이셨단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수의 착한 사람들을 보시고는 마음을 돌리셨단다. 그런데 이미 사람의 마음을 차지해버린 두려움이 사람들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단다."
"왜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좋았거든. 사람들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이 너무 좋았거든. 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과 가깝게 지내며, 두려움의 하수인이 되기를 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두려움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이용하기도 했단다."
"본래 하느님의 뜻하고 다르게 세상이 변해버렸네요." 걱정하는 꼬마 수사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래서 후회하시며 고심하시던 하느님이 다시 결정을 내리셨는데, 이번에는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희망을 사람들과 함께 살게 하셨단다. 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염려하신 하느님은 이번에는 ‘희망’을 숨기기로 하셨는데. 눈에도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도 없는 곳에 희망을 살게 하셨지. 그렇지만 스스로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에.
"쉽게 찾을 수 없지만, 찾으려고 하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 어딨어요? 고민을 많이 하셨겠어요."
"가장 소중한 것들이 숨 쉬는 곳에."
"어구... 점점 더 어려워지네요. 그곳이 어딘가요? 희망은 어디에서 사나요?
"그곳은 사람들의 마음 속이란다."
저녁 기도 시간에 늦지 않도록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는 수사님의 등 뒤로 희망이 반짝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