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료 가릴 것 없이 서비스 고객이 늘어갔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대표 이메일에 온갖 스팸과 광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젠 문의를 한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국내와 해외로 나누어 담당자를 할당하고 이어지는 이메일 내용은 다 같이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필요해졌다.
덩달아, 고객 문의를 챗봇 등을 활용해 자동화 하자는 의견이 있어, 다양한 서비스를 비교해 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 허브스팟(Hubspot)을 우선 무료로 도입했다.
그렇게 팀원들 모두 허브스팟에 적응해 가던 때, 서비스와 관련한 인증을 위한 보안 규정을 허브스팟이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들려왔다. 임상팀에서 국제적인 기준의 임상 유전자검사 실험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회사 안팎으로 이동하는 데이터에 대한 보안 규정이 충족되어야 했는데, 허브스팟이 이를 충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급하게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라, 팀원들 모두 이렇게 이제야 익숙해져가고 있는 서비스를 사용 중단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사용할지 고민했다. 이 과정 중에 팀원 간의 다른 의견으로 약간의 갈등도 불거지게 되었다. 잠깐의 기간 동안 팀 안에서는 냉기가 맴돌았다. 그러나 누가 옳다 그르다 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선택은 해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허브스팟을 정리하고 보안 정책에 부합하는 세일즈포스(Salesforce)라는 CRM 툴을 사용하게 되었다. 세일즈포스는 모든 규정을 충족하면서도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게, 앞으로의 확장가능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용하면 할수록 UX/UI 측면에서 불편한 부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후 우리는 점진적인 적응 과정과 다 함께 툴을 사용하고 적응하고자 하는 2년여간의 고난의 기간을 거친 뒤 세일즈포스를 꽤나 잘 사용하게 되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세일즈포스로의 이전하기에 나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마케팅팀에겐 바이블처럼 활용하는 '마케팅 설계자'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고객이 구매하기까지의 여정이 있고, 각 여정은 여러 단계로 나뉘는데, 첫 단계가 바로 리드(Lead)이다. 쉽게 말해 잠재 고객인데, 이메일 정보나 휴대폰 번호 등 연락이 가능한 단일 정보만 가지고 있어도 보통 리드라고 정의한다.
웹사이트나, 서비스는 보통 어떠한 보상을 제공하면서 잠재고객으로부터 이메일 등의 정보를 제공받는데, B2B 비즈니스처럼 운영되는 회사는 회사의 주요 자료나 가격 정보, 뉴스레터 등의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메일이나 전화번호, 이름 등을 수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회사도 동일한 전략을 사용했다. 유전자 정보 제공, 증상 정보 제공, 뉴스레터 구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많은 리드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메일 정보만 가지고 있어 사실상의 마케팅 활동은 어려웠다.
마케팅에서는 퍼널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많은 수의 잠재고객부터, 관심고객, 유료고객, 충성고객까지 고객의 흐름이 점점 수가 줄어드는 깔때기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마케팅팀도 이 세일즈 퍼널을 기준으로 고객을 정리해 왔다. 하지만 그 개념만을 사용했지, 실무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 정확하게 정해진 게 없었다.
마케팅 매뉴얼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각 고객을 어떻게 정의하고 기록할지 그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치 사다리는 각 퍼널을 단계로 정의하고, 어떤 흐름으로 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할지, 어떤 미끼를 줄지 정의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상향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마치 사다리를 오르는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세일즈콜을 최종 목표로 정하고 총 4단계의 가치사다리를 만들었다.
가치사다리에서 확대해, 우리만의 마케팅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일즈 플레이북으로 이름 붙여진 이 프로토콜에는 리드(Lead) 단계부터 세일즈 콜(Sales Call)까지, 신규 고객의 온보딩(Onboarding), 기존 고객에게의 업세일링(Upsales), 비활성 고객에 대한 활성화 방안 등을 모두 포함했다. 사실상 고객 여정에 맞춰 모든 과정을 매뉴얼화했다.
또한 리드와 별개로 MQL과 SQL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MQL은 Marketing Qualified Lead라는 뜻으로, 정보가 충분해 마케팅을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정보라는 뜻이었다. SQL는 Sales Qualified Lead로 우리 제품 구매를 결정한 고객이라는 뜻으로 주문을 위한 웹에 가입한 고객을 뜻했다.
리드로만 정의했던 잠재 고객을 Lead - MQL - SQL로 좀 더 세분화해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링크드인, 웹서치, Appllo 등 다양한 리드 발굴 툴을 사용하면서 점점 리드가 많아지고 있었다. 마케팅팀의 인원수는 네 명 그대로인데, 한 사람이 관리할 리드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우린 더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획득한 리드를 분류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조금씩 특성이 달랐기 때문에, 분류를 위한 기준이 필요했다. 리드를 S~D까지 티어(Tier)로 나누기로 하고, 각 티어마다 구분할 기준을 정했다. 그리고 이제는 막일(?)의 시작이었다.
리드 데이터의 기록을 가장 잘 알고 있던 팀원 제프와 나는 엑셀, 구글 시트, 개인 컴퓨터에 나누어져 있던 만 개가 넘는 리드를 하나의 CRM에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입에만 몇 천만 원이 소요되었던 세일즈포스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연간 사용료로 1,000만 원 씩을 따박 따박 가져가고 있었다. 반면에, 도입을 마쳤던 직후 1년 정도는 세일즈포스에서 메인이 되는 기능인 '고객 관리 기능'의 활용도가 미미했다. 도입 시기에는 리드가 많지 않아, 기획도 아쉬운 점이 있었고, 무엇보다 새로운 팀원이 합류할 때마다 해당 서비스의 활용 방법과 그 이유가 전달이 안 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던 세일즈포스를 매뉴얼화해 모든 직원이 리드 관리를 세일즈포스를 통해서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제프에게서 나왔다. 팀원마다 정보를 관리하던 방식이 있어 사용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착되면 훨씬 효율적일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리드 기준, 세일즈포스에 기록하는 방법, 세일즈포스 내에서 리드를 관리하는 방법 등을 정리해 매뉴얼을 만들었다. 나도 그중 리드의 분류 기준을 세우고 업데이트하는 부분에 깊게 관여했다. 세일즈포스는 세일즈팀, 마케팅팀, CX(CS) 팀 모두에게 걸쳐있는 서비스였기에 모두 함께 공유할 만한 체계를 우리는 계속 만들어 나갔다.
흩어져있던 리드들의 정리가 어느 정도 완료되자, 우리는 정리된 리드를 어떻게 고객으로 전환시킬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6개월, 1년 이상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은 리드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하나 트래킹 하고 관리하기에 풍족한 인력이 아니었기에, 우리는 개별적으로 신경 쓰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소통을 만들어갈 관리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티어 별로, 비연락 주기 별로 맞춤화된 메일 내용을 구성했다. 그리고 어떤 리드를 대상으로 보낼지도 고민했다. 이 흐름을 하나의 도표로 그려 정리하고 언제 메일을 발송할지 표시했다. 가장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전달해 우리와의 리텐션을 높이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나중에 이 일련의 활동이 Nurturing, 즉 잠재 고객을 '기르거나 성장시키는' 육성 과정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대상에 맞는 메시지로 지속적으로 우리 서비스에 관심을 갖거나 우리 소식을 들을 수 있게 하고, 이 연락을 미끼로 새롭게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활동이었다. 다른 어떠한 마케팅 활동보다 꽤 가능성 있어 보였다.
"분명 웨비나도 등록하고, 오프라인 행사에서 우리를 만나 연락처를 준 사람이니까 서비스도 쉽게 사용하지 않을까?"
아주 크나큰 착각의 시작이었고, 이때부터 나의 암흑 같은 리드 육성 기간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