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러너 Sep 03. 2024

첫사랑을 잊지 못한 '나는 솔로'

"~~ 랑 사귀고 싶다." 20년이 넘는 동안 아직도 그 말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첫사랑의 이름을 울부짖는 것. 이것이 수컷으로 태어난 자의 숙명인가. 여자들은 오히려 마지막 사랑을 잘 기억한다고 하던데. 빨리 잊고 싶다. 이제 와서 그 사람의 이름이나 행동 같은 걸 떠올리라고 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이름마저 잊어버리고 싶다. 그 사람은 어떻게 삶을 보내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결혼을 했을 수도 있지. 좀 예쁘기도 하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까지 잘 들어갔다는 소식은 들었어. 엄마 교회 친구 딸이었거든. 그 사람이 흔치 않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사실 SNS 상에 뜰 법도 한데 안 나오더라고.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그러지 않을까. 전 연인들 사진 SNS로 보는 짓들. 예전 90년대는 한 번 이별하면 다시 보기 힘들어서 절절한 사랑 노래들이 나왔던 이유도 그런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다르잖아. 쉽게 예전 연인들의 행적을 추적하고 되짚는 일. 오히려 그런 추한 사람이 되진 않아서 다행이야.


이후의 삶에서는 여자와 사적으로 엮이진 않았지. 내가 금사빠 짓을 하기는 했어도 내 깜냥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을 걸지도 않았어. 그러니까 고백까지 간 적은 결단코 없었지. 원래도 표정을 잘 숨겨서 조금은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상대방 입장에서는 오히려 음침하게 보였을지도...


30살 넘어서. 이제 며칠 있으면 32살이 되는데 말이지. 아직까지 첫 키스는커녕 어떤 접촉조차 없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긴 해. 남자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바닥이라는 소리니까.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 31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남이 준 돈을 만지는 나는, 거울 속 추한 얼굴과 관리되지 않은 체형을 보면서 가끔 한숨을 짓지. 내 삶은 마치 쓰레기장에 버려진 낡은 책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지.


외로움에 밤마다 가슴이 저리고 해. ‘오늘도 나는 혼자구나.’ 솔직하게 나의 있는 감정을 말할 사람은 없지. 브런치에 올리는 개인사가 감정이 거짓된 건 아니지만, 아직 바닥을 치지는 못했어. 만약 그런 순간이 오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근데 막 환상적인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게 연애 못한 기간이 너무 기니까 그런 기대를 좀 하게 되긴 하는 것 같아. 마치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


엄마가 가끔 '나는 솔로'나 ‘신들린 연애’라든지 절박하게 나온 사연자들의 연애 프로그램들을 챙겨 보시니까 나도 지나가면서 보게 되더라고.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직업도 갖추고, 나름 괜찮은 생활을 하면서도 연애를 하려고 얼굴 팔릴 각오까지 했지. 그런 사람들 보면서 ‘아, 저건 내 이야기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가끔 TV 화면 속 그들을 보면서, 내 현실을 더 실감할 뿐이야. 어머니가 재밌어하시는 그 프로그램 속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잘나 보이고,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


이런 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싶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또 이렇게 글로 털어놓고 말았어. 하지만 나는 일이 아니라면 여자를 만날 일도, 딱히 엮일 일도 없어. 누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주진 않거든. 마찬가지로 나도 남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한동안은 변하지 않을 사실, ‘나는 솔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