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러너 Oct 02. 2024

처음으로 출근하며 맞이한 생일

2024.09.2x


생일이 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생일을 맞이하기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실 이유랄 것은 없다. 딱히 선물 받을 구석도 없었고, 누가 나를 축하해 줄 일도 없다. 생일인 것을 특별히 알리지는 않았으니까. 굳이 알린 거라면 카톡 알림 창만 스리슬쩍 켜뒀다 정도.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 중에 내 연락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인스타가 전부지.


생일을 맞이했다. 하나 둘 셋


날짜가 하나 더 넘어갔다. 아니, 공식적으로 나이도 한 살 더 먹은 거다. 젠장. 1초 전과 달라진 건 없는데, 괜히 더 늙어버린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변한 게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억지로라도 잠에 들었다. 5시에 일어나서 알바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내심 아쉬웠다. 


여전히 5시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다기보다는, 5시에 꼭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다. 혹시라도 늦잠을 자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서다.


무사히 출근을 마치고 이런저런 준비를 끝낸 후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업무를 확인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 찰나, 불현듯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냉장고 쪽을 바라보니, 지난주부터 신경 쓰이던 그 냄새였다.


편의점 구석에서 나는 악취는 지난주보다 더 심해졌다. 그 냄새는 마치 내 삶 어딘가에서 풀리지 않고 썩어가는 문제들 같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그 냄새의 원인을 찾아 헤집을 수는 없었다. 남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내 성격에 맞지 않으니까. 차라리 그냥 지나칠 뿐이다. 그 냄새가 아무리 내 신경을 자극해도, 나는 그저 고개를 돌린 채 숨을 잠시 멈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문제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다음 주엔 사장님이 참지 못하고 뒤집어 놓지 않을까, 또 한 번 그냥 지나쳤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항상 붙어있는 벌레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이 보였다. 벌레들이 들끓는 모습은 마치 내 머릿속에서 엉킨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한 마리, 형광등을 향해 끊임없이 부딪히는 벌레가 눈에 띄었다. 그 작은 몸은 불빛에 닿을 듯 닿지 못한 채, 계속해서 같은 궤적을 그렸다. 마치 내가 끝내 다다를 수 없는 무언가를 좇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부딪히며 불꽃을 튕겼다. ‘치지직’ 하는 소리가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처럼 거슬렸다. 벌레는 끝내 불빛을 넘지 못하고 지쳐 떨어졌다.


피곤했다. 

'잠 좀 자면 안 될까?'

그렇지만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잠을 자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일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도 든다. 편의점 알바라는 게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지금은 이 일이 내게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적어도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오늘따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생일 때문일 거다. 또 한 살 먹었다는 압박감과 함께, 뭔가 이뤄낸 것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


창밖의 벌레 소리와 냉장고에서 나는 악취를 무시하려 애쓰며, 나는 오늘의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오늘, 내 생일에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런 기대를 품으며 카운터 뒤에 섰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복잡했다. '생일 축하해, 나.'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특별할 것 없는 오늘 하루가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나는 시계를 흘깃 보았다. 아직 긴 시간이 남아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아침과 밤 사이 어정쩡한 상태였다. 해가 뜰 듯 말 듯, 어둠이 내릴 듯 말 듯한 그 모호한 순간처럼 내 마음도 불분명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다. 냉장고에서 나는 악취를 무시하며, 나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오늘도 그저 평범한 하루. 그렇게 나의 서른두 번째 생일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전 05화 지금 여기에만 있는 어둠과 빛, 모든 것은 변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