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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 Feb 01. 2018

2017년 취향 기르기 보고서

뒤늦은 한 해 정리

좌충우돌이라고 할 만큼 난리였던 한 해였다. 이렇게 여기저기 부딪쳤던 해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난리였다. 17년을 맞아서 먹은 마음은

"일을 해서 얼마나 먹고 살 수 있을지 실험해 보자"

였다. 보다 페미니스트가 되자 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말이다. 실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는데 1. 어떤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 지 실험했고 2. 어떻게 먹고 3. 어떻게 살 것인지 실험했다. 또한 내 안의 젠더이분법과 여성혐오을 부수기 위한 실험들을 해보았다. 작년 대선까지는 내내 무엇을 했는지 그리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기분이 안좋은 상태였고 그 뒤로는 무언가 엄청나게 하느라 시간이 게눈 감추듯이 사라졌다. 세상에, 이러고 있는 사이 또 1월이 갔다. 내년에도 이러고 있을 거야. 어떡해ㅠㅠ


취향을 기르자!

내가 누굴까? 궁금해서 작년 동안 나를 관찰했고 발견한 지점은 이렇다.


- 설탕과 소금이 덜 들어가고, 보다 건강한 음식을 선호한다.

- 채식을 3주? 정도 실천해 보았다. 점심은 회사에서 먹어서 어쩔 수 없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끼니는 모두 채식을 시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주친 치킨에 채식 의지는 와르르 무너졌지 뭐야.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가야 할 방향.

- 게임의 고리를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 해였다. 롤은 만년 실버라고 생각했는데, 잠깐 열심히 했더니 골드를 찍었다. 역설적으로, 골드를 찍으니까 게임이나 랭크에 대한 욕심이 사라졌지 뭐야. 좋다.

- 퀴어 영화는 너무 아름답고 재미있다.

- 나는 지금의 성별이분법 상에는 논바이너리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2017년의 최고의 순간들

- 최고의 프로젝트 "인민재판"

작년 탄핵 때 인기였던 박근핵닷컴의 해커톤에 참가했다.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 회사에서 한창 일해서 개발 의욕이 상승하던 때이고 여전히 정치 이슈가 시끌시끌한 때. 이재용 재판하는 서비스 만들어서 상 탔지 뭐야.

지금 프로젝트가 잠시 중지되어 있는데, 힘을 내서 리부트 해봐야지


- 최고의 요리 "시금치 파스타"

6월 파티

내가 한 요리 중에서 찾다보니 시금치 파스타를 만들었다. 파스타 사진이 없어서 너무 슬프다. 작년 파티를 맞이해서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는데 세상에. 진짜 시금치가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맛있었고 비쥬얼도 장난아니었다. 파티 너무 재밌었어. 추억돋는당. 내년에 준비해서 또 파티 해야지 !!


- 최고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성수나이트에서 본 영화다. 아직 진행하시려나 모르겠어. 작년에 영화를 보고 나서 몇 시간동안 기분이 엄청나게 좋지 않아서 아예 말을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영화였다. 사실 그대로 그려내는 것에 한 장면 장면이 무서웠고 장애인, 여성, 경제적 약자의 3중의 약자성이 겹친 조제를 또 그리고 조제를 대하는 '보통 사람'을 너무나도 잘 그려내서 펑펑 울었다. 안 보신 분이 있으면 제발 보세요ㅠㅠㅠ


- 최고의 책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여러 책이 있었는데 가장 지금의 생각에 영향을 많이 준 책을 고르다 보니 이 책이 나왔다. 뜬금없는 제목의 이 책은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경제학을 비판하고 그간 집계되지 않은 여성의 노동을 조명한다. 100번 맞는 말. 이때부터 집계되지 않는 모든 노동에 대해서 민감해졌고 특히 여성의 노동은 수없이 별거 아닌 일로 취급된다는 것도 몸소 체험했다. 내가 밥, 빨래, 청소까지 다 해봐.


- 최고의 게임 "배틀그라운드"

작년 3월부터 정말 나의 룸메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고 나도 6월에 기여코 샀다. 혼자 할 때의 그 두려움, 다같이 할 때의 그 아슬아슬함. 엄청난 게임이다. 롤처럼 생각날 때마다 가끔 하지 않을까 해. 오늘 밤은 치킨 !!


- 최고의 여행지 "맨체스터"

맨체스터 게이 빌리지

사실, 객관적으로는 공장 뿐이고 매번 안개가 끼고 비오는 이 동네는 여행하기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력은 정말 엄청났다. 그리고 리버풀까지 1시간인가만 하면 가니까 축구 보기에 이렇게 좋은 도시가 없다. 하지만 비행기를 놓치고 성화는 돈캐스터에서 밤을 새게 되는데.. 그렇지만 친구의 도움으로 친구집에서의 5일은 못잊을 만큼 너무 행복하고 재밌었다. 고마워 맨체스터.


- 최고의 축구선수

지난 시즌 정말 리버풀 겨우 챔스 가기는 했지만 속이 폭발하는 경기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올 여름 갑자기 살라가 왔고 우리는 마네-피르미누-살라 스리톱이 되었찌 뭐야. https://youtu.be/A2Sy7A_CdxY We got slah Oh mane mane !!!!! and boby Firmino ~~~


- 최고의 정치적 행복 "문재인 당선" 그리고 좌절

이게 안심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선거는 결과가 나와 봐야 알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마치 안철수가 될 것처럼 띄워댔고 다 같이 입모아서 문재인이 될 것이라 했지만 선거가 끝날 때까지 나의 고통은 지속되었다. 막상 문재인이 당선되자 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고 그간 촛불 들었던 것이 보상된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정말 잠도 잘 잤다. 그치만 몇달 되지도 않아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뭐야. 문재인식 민주주의도 내가 생각하던 것이 아니었다. 하긴 대선 토론때부터 저는 동성애 반대합니다. 이러지 않나, 수많은 이들의 인권, 특히 여성인권보다 다른 게 중요한다는 듯한 행보, 보여주기식 정치. 병사 월급 올리는 건 다행스런 일이지 뭐야.


- 최고의 광장 "퀴어 퍼레이드"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 처음 참가한 퀴어 퍼레이드였는데 너무너무 즐거웠다. 남동생과 함께라서 더 좋았다. 이 때 마음을 먹었지 뭐야. "지금 당장"이라는 것을 말이야. 


- 최고의 쇼핑 "치마"

이어서 치마!!! 치마를 한창 즐기면서 온몸으로 느낀 차별을 글로 썼더니 꽤 인기가 좋았다. 한국 남성들이 입을 수 있는 치마를 고민하고 있다. 치마 예쁘고 시원한데, 한 번도 안입어 본 분들 계시면 사서 입어봐요. 이상하다구요? 부끄럽다구요?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한번 고민해 보자구요!


- 최고의 모임 "디모스"

소중한 사람들. "안전하다"는 것이 어떤 단어인지 알게 해준 사람들. 벌써 모인지 1년이 지났다. 작년에 여럿 실험을 했고 올해의 새로운 실험을 이야기하던 중 우리가 그 와중에 새로운 걸 배웠구나 발견했을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올해도 신나게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사냥하러 가야지. 여러분 디모스 홈페이지도 놀러와요. 디모스2, 디모스3... 이런 안전한 커뮤니티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행복한 상상!!




작년 동안 3개의 직장에서 일을 했고 새해 포함해서 2달 동안 유럽 여행을 떠났고 비행기를 놓쳐서 돈을 엄청 날려먹었고 화장을 배웠구 머리를 태어나서 가장 길게 기르고 무려 내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도 했다. 24년간 말로만 해왔던 일들을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고 앞으로 할 일은 더 많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고 너무너무 행복하다. 올해는 상상을 더욱 현실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지. 한 해 동안 제가 존재하게 할 수 있었던 당신에게 무한한 사랑을 표해요.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 다 같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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