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를 미워하지 않도록' 브런치 북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재작년 이맘때의 나는 직장을 다니며 미국 대학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사실 입학 허가를 받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나의 개인적인 커리어 상으로도 큰 변화라 고민의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아빠의 치매 발병까지 겹치면서 입학을 최대한 연기한 상태였지만, 결국 미국 대학에서 최후통첩 이메일이 도착하였고 당시가 입학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무능했던 팀장님과 인원감축에 따른 업무 폭증으로 당시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정점을 찍고 있었고, 아빠 탓을 하며 내가 새로운 도전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 들면서 최종적으로 미국행을 결정하였다. 이전 직장에 퇴사를 통보하던 순간까지 이 길이 맞다는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통보하고 나서도 나를 아껴주시던 인사팀 과장님의 부탁에 따라 다시 한번 고민을 할 정도였고, 마지막 결정을 내린 이유도 확신이 아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여 숙소에 입실한 당일 나는 코로나에 걸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격리 지침이 있었던 때였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타기 위해서는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필요했던 때였다. 주변에 마트도 없어 부랴부랴 생수를 시키고 한국에서 챙겨간 감기약과 타이레놀을 먹으며 고독하게 하루하루를 견뎠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계약한 숙소의 에어컨은 너무 오래되어 귀가 터지도록 웅웅거렸고, 숙소 앞의 주차장에서는 매일밤 흑인들이 모여 광란의 파티를 즐겼다. 아빠의 상태는 내가 떠난 뒤에 더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뒤돌아 서기 무섭게 엄마에게 아들의 행방을 계속해서 물었고, 아들이 나와 떨어져 사는 것에 대해 우울해하고 짜증을 냈다. 아픈 나에게 엄마는 티를 안 내시려 노력하셨지만, 엄마 아빠도 코로나에 걸린 상황에서 전화를 통해 전해지는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매일 밤 나는 잠 못 이루며 고민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님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내 인생에서 옳은 길인지. 아니, 사실 옳고 그른 길이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것이 최선의 길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 자체도 물론 컸지만, 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삶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해외에서의 새로운 삶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과연 이 길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고민 끝에 나는 모든 것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미 투자한 돈도 어마어마했고, 집 계약에 대한 위약금도 상상을 초월했지만, 이미 그 비용은 매몰비용일 뿐이었다.
난 먼 타지에서 비로소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가족과 함께하는 삶임을 깨달았고, 짧고도 강력했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부터 나는 한국에서의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한 지원서를 썼고, 다행스럽게도 빠르게 재취업을 했고 한 번의 이직도 했다. 나의 굴곡진 지난 2년 정도의 세월을 알게 된 직장의 선배와 동료들은 나에게 묻는다.
"오래 준비했을 텐데.. 미국 유학 포기하고 돌아온 거 후회하거나 미련이 남지 않아요?"
사실 내가 지금까지 미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가끔 생각한다. 미국에서 발급받은 학생증이 지갑에서 툭 나오거나, 전산상의 문제인지 가끔 뜬금없이 미국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지 메일이 오거나, 해당 학위를 따고 활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 후회나 미련의 감정은 아니다. 미국 땅을 밟고 잠 못 이루고 몸과 마음이 아파 눈물 흘리며 지새웠던 날들을 거쳐 내린 결정이기에 조금의 미련도 없다. 오히려 미국을 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그냥 전전 직장에서 계속 일했다면 미련이 남았을 텐데, 그만큼 나는 치열하게 고민했고 선택했기에 후회는 없다.
그렇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포기라기보다는 선택을 했다. 많이 준비했고 좋은 대학에서 장학금까지 받고 떠난 길이었지만, 미련이 남지 않는 것은 그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의 병을 탓할 일도 없다. 아빠의 병을 탓하며 유학을 포기했다고 하는 것만큼 비겁한 변명도 없다. 인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 중 하나일 뿐이고, 결국 그 선택을 한 것은 나 자신이다. 이제 남은 건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선택이 그 당시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도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아빠의 곁을 지키는 일이 때로는 버겁고 힘들긴 하지만, 그런 아빠와 엄마 곁에 내가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이 유효한 걸 보면 아직까지도 나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난주 목요일. 유난히도 맑았던 그날 아침. 차를 타고 회사를 들어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눈앞에 햇살이 부서졌다. 아빠의 상태도 유독 불안정했고, 엄마의 한숨도 깊어졌고, 동료직원의 퇴사로 회사에서의 일은 불어났지만, 그 햇살 하나로 모든 우울감이 녹아내렸다.
"그래. 이게 행복이지."
모든 면에서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에 충분한 힘은 과거에 가지 않은 길이 아닌 지금의 일상에서 뿜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