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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 Apr 18. 2021

5-6 특수반

내가 알던 사람, N선생님

 새 학년, 새 교실, 새 학급을 맞이하는 설렘이 가득한 날, N선생님은 선언하듯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초등학교 5학년은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날 거야. 보통 다들 마지막이었던 6학년을 기억하지. 그러니까 뭔갈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재밌게 5학년 생활해보자."

 선생님의 단언이 괜히 불만스러웠던 나는, 기필코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을 기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니 우리 반은 소위 문제아라고 낙인찍혔던 학생들이 두세명 정도 모여있는 반이었다. 아마 초등학교에 유난히 드문 남자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이어서 그랬으리라. 또한 N선생님이 겉보기엔 장난스럽고 편안한 분이어도 훈육의 순간에는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는 평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문제학생이라고 불리던 친구들은 종잡을 수 없는 이유로 난동과 행패를 부리곤 했다.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원인 모를 심통에 자신이 앉아있던 책걸상을 발로 뻥 차 버리기도 했다. 옷 차림새가 단정하지 않을 때도 많았고, 때론 제대로 씻지 않은 티가 날 때도 있었다. 평소엔 얌전히 지내다가, 어느 순간 돌변하여 반응을 예측할 수 없는 야수 같은 행동이 나타나곤 했고, 그 불예측성 때문에 학급의 다른 아이들은 공포를 느끼곤 했다.

 N선생님은 그런 학생 하나를 붙잡고 교실 앞 선생님 책상 자리에 마주 앉아 훈육을 하곤 했다. 가끔 매를 드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주로 N선생님은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려고 애쓰셨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안절부절못하며 온 몸을 뒤흔드는 아이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이름을 몇 번이나 불러가며 자리에 앉히고, 두 눈을 마주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N선생님의 교육 철학이 정확하게 무엇이라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반 아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N선생님을 좋아했다. 다른 반들과 비교해보아도, 우리 반 안에만 흐르는 끈끈한 동질감 같은 게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통틀어 '특수반'이라고 이름 지었다. 처음엔 그게 그냥 우리 반에 특수학급에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애들이 많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모두 각각의 특수함을 지니고 있었다.


 학급 환경 미화를 하는 날은 아이들이 모두 신이 나서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이것저것 만들고 붙이고 꾸미기에 열성이었다. 사실 교실을 예쁘게 꾸미는 것보다 남아 있는 사람들끼리 과자와 컵라면을 나눠먹고 수다 떠는 시간이 좋았던 것이다. 노을이 교실에 가득 찰 때까지 우리들은 조잘대며 교실에서 무언갈 했고, N선생님은 가끔씩 교실을 들여다보며 얼른 마무리하고 집에 가라고 하실 뿐이었다. 방과 후에 학원도, 과외도 없던 나는,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 빌려서 집에 가면 그만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각자 배정받은 반으로 흩어졌다. 문제학생으로 이름났던 친구들은 학년이 올라가더니 그래도 전보다 많이 성숙해졌다는 소문이 들리곤 했다. 가끔은 나도 그 친구들이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는 같은 '특수반' 친구들이니까.


 누구에게나 고되었을 고3 수험시절을 보내고 수능이 끝나자 특수반의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도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다 같이 한 번 모여 술이나 마시자고. 그래서 우리는 학교에선 좀 거리가 있는 어느 치킨집에 모였다. N선생님도 그 자리에 나오셨다. 공식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가 되었단 사실에 들뜬 남자애들 몇몇이 추진했던 자리라, 딱히 모임의 분위기가 정갈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외모만으론 더 이상 옛날의 그 친구인지 알아보기 힘든 사람도 많았고, 외모뿐 아니라 말투와 성격도 달라져서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싶은 애들도 있었다.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네, 란 소리를 듣던 부류였다.

 사실 가장 그런 사람은 N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약간의 주름살과 흰머리 말고는 우리의 초등학교 5학년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기어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6학년 때보다 5학년 때가 더 좋았어요."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N선생님은 내 얘기를 듣고서 그저 빙긋이 웃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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