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정희매 Sep 25. 2019

간식과 수다시간이 주는 행복

작은 일상의 변화로 행복을 찾는 분들께

부모가 행복하게 육아를 한다고 소문난 스웨덴과 프랑스를 살펴보면, 물론 제도적으로 선진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문화적인 공통점도 있습니다. 바로 두 나라 모두 전국민이 애용하는 간식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스웨덴에서는 휘까(Fika)라고 하여 나른한 오후시간에 직장에서는 동료들과 주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간식을 먹습니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 1번 이상 주변사람들과 휘까를 보냅니다. 프랑스에서는 오후 4시가 되면 유치원에서부터 회사원 등에 이르기까지 간식과 차(소위 에프터눈 티, afternoon tea)를 마시는 구떼(Gouter)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는 부모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위 이웃들과 함께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육아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다양한 주제로 담소도 나눕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줌마들이 카페에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그냥 ‘수다 떤다’는 단어로 퉁 쳐버리게 됩니다. 심지어 이 단어 속에는 ‘시간을 흘러 보낸다’거나 ‘논다’라는 부정적인 느낌까지 내포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육아를 하는 부모, 특히 육아휴직을 사용한 부모에게 이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아이를 사랑해도 아이와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육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과 피로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마사지를 받거나, 책을 보거나, 여행을 가는 등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도 흘러가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버리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부모가 이런 시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육아휴직을 하면 대체로 회사 다닐 적보다 인간관계의 범위가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제가 회사 다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함께 아침식사하는 인원 3~5명, 팀미팅 하고 점심식사 하는 인원 13명, 화장실이나 차 마시면서 짧게나마 이야기 나누는 인원 5~10명으로 하루 평균 적어도 21~28명과 대화를 나눕니다. 여기에 회의라도 2~3개 추가되는 날이면 40~50명으로 늘어나기도 하지요. 이랬던 제가 육아휴직해서 만나는 사람은 슈퍼마켓 직원, 택배 아저씨, 유치원 선생님, 경비아저씨 등을 제외하면 가족이 전부가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낮시간은 나와 아이 둘 뿐입니다.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해방되었다는 자유로움과 편안함도 있지만 365일 이런 좁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보면 자연적으로 답답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 일주일에 몇 번, 몇 시간이 적당할까요? 그건 정답이 없습니다. 본인의 성향과 여건에 따라 횟수와 시간은 적당하게 조절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첫번째 육아휴직때 작정하고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행히도 이런 만남이 정기적으로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 모임에서 주 2회, 친해진 이웃 주민(예원맘, 민성맘, 나은맘)들과 주 1회 정도 간식&수다시간을 가졌습니다. 시간은 1~3시간 정도였고 대부분 아이(당시 만2세)도 함께 있었습니다. 부모와 아이와 함께 만나면 정신은 없지만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친구를 맺을 수 있어서 모임이 더 단단하게 유지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두번째 육아휴직에서는 주 1~2회 간식&수다시간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첫 육아휴직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첫 육아휴직 때는 같은 멤버를 매주 만났다면, 두번째 육아휴직때는 1명 동네 친구를 제외하고는 매번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제가 만나고 싶었던 지인들 리스트를 만들어서 야금야금 틈틈이 만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대부분 점심시간을 이용해 1~2시간 정도 만났습니다. 아이가 없이 만나면 만나는 시간은 짧아져도 서로의 이야기에 좀더 집중할 수 있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간식시간을 갖을지, 빈도나 만나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에 대해서는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보면서 자연스레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있어서 편하고 자연스러운 곳,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도 지켜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흉을 보거나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것이 지나치게 반복되고 있다면 그 모임은 잠깐 거리를 두고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험담을 하고 맞장구 쳐주는 것도 물론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좋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매번 소위 ‘깔데기’처럼 같은 주제들로 이야기가 모아지고 반복된다면 그 모임은 결국 여러분의 에너지를 빼앗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반드시 간식&수다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적당한' 수준이여야 합니다. 무엇이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 시간이 너무 많아지면 육아휴직을 하기로 했던 본질을 잊고 친목위주로 육아휴직 시간을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몇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내게 맞는 수다시간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내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라면 시간이 길어져도 상관없겠지만 반대로 빼앗기는 성향이라면 짧은 시간으로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가사일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집안일을 할 시간과 체력은 남겨놓아야 합니다.


혹시 이런 모임을 함께 할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아하랴, 회사다니랴 회사-집-회사-집 하다보면 주변에 정작 차 한잔 함께 마실 친구가 없을 수 있습니다. 친구가 없는 경우는 당연히 새로 사귀어야 합니다. 놀이터에서 내 아이와 잘 노는 아이 부모에게 대화를 시작해 볼 수도 있고, 문화센터나 유치원, 학교 등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 적극적으로 ‘차 한잔 하자’는 이야기를 내 볼 수도 있겠지요. 선뜩 용기가 안 난다면 내 아이를 위해서라고 생각해보면 불끈 용기가 솟을 것입니다. 이런게 바로 모성애이고 부성애인가 봅니다.


타지에서 첫 육아휴직을 시작한 저는 동네에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아이랑 저는 친구가 너무 사귀고 싶었습니다. 12층에 살던 저는 엘리베이터를 들락거리며 7층에 제 아들 또래의 여자 친구가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도 나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어려보였는데 갓난아기가 있어서 저보다 육아가 훨씬 힘들어 보였습니다. 어느 날, 이른 저녁 나는 저녁반찬을 좀 넉넉하게 만들고 절반을 용기에 담아 내려가 7층 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안녕하세요! 1201호인데요.” 702호 문이 열리며 그 집 엄마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저녁반찬을 했는데, 저희는 3식구인데 너무 많이 해서 같이 나눠먹으려구요. 아기가 있으신 것 같던데 저녁 해먹기 바쁘잖아요.” 라며 전달했습니다. 7층 엄마는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며 반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반찬통을 돌려주러 우리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저는 이 기회를 놓칠 새라 “시간 되시면 차 마시고 가요”라고 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엄마는 재일교포로 한국인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사온지 얼마 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외로웠는데 친구가 생겨서 반갑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희는 1년 동안 서로의 집을 오가며 동네에서 종종 만나 이야기 나누는 '동네친구'가 되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저는 서울로 그 엄마(나은맘)는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SNS로 안부를 물으며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반찬까지 만들어 이웃집 문을 두드린다는 것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정말 상상도 못하던 일이였습니다. 오로지 친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보니 희안하게도 용기가 났던 거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가장 취약한 사람은 육아휴직을 낸 아빠들입니다. 엄마들은 직장인이여도 자연스레 한두개 동네 모임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빠들은 그런 동네 모임이란 게 적습니다. 이 경우는 눈 질끈 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치원, 학교, 문화센터 등에서 만나게 되는 부모들과 눈 딱감고 간단한 대화도 시작해보고 은근슬쩍 반모임에도 참여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간혹 가다가 육아휴직 남자동지나 프리렌서 등으로 낮시간이 여유로운 다른 아빠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이야기를 걸어보고 어느정도 마음이 맞으면 당장 친구를 삼아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지겠지만 아직까지는 낮시간에 만날 수 있는 아빠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친구 맺는 기회를 놓지지 않기를 권장합니다. 솔직히 아빠 입장에서는 그룹 모임을 제외하고는 개별적으로 다른 집 아이 엄마를 사귀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아니 위험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같은 남성 동지를 만나면 술이나 담배가 없더라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친구 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잘만 되면 스웨덴의 라떼파파[1]들의 모습도 부럽지 않게 햇살이 비추는 동네 카페에서 함께 커피를 함께 마실 수 있는 육아 친구가 될 것입니다.


지치고 반복되는 육아의 피로를 달달한 간식과 편안한 지인들과 나누는 담소로 툭툭 털어버리세요. 그 음식과 시간들은 나중에 한번에 몰려오는 육아 스트레스를 가래로 막지 않도록 미리 살살 긁어주는 작은 현명한 호미가 되어 줄 것입니다.


              

[1]

 라떼파파: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이르는 말.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민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Daum 한국어 사전 참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