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보다 농구가 더 좋았던 우리들만의 시간들...
고3 때였다. 일요일 아침, 라일락향으로 가득한 5월의 교정으로 등교를 했다. 일요일 오전, 그것도 오전 8시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명분상 우리는 체육 실기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이번 체육 시험은 제한된 시간안에 농구골대에 골 넣기. 30초에 15개를 넣어야 만점이다. 그러려면 2초에 한 개꼴로 성공해야 한다.
우리에겐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공부를 하지만, 능률은 제로였다. 머릿속은 잡념으로 가득했고, 몸과 머리는 따로 놀았다. 그때 우리는 농구에 열중했다. 아침 7시 반에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탄다. 텅 빈 버스는 유난히도 요란했다. 빈 깡통이 더 요란하듯 정류장을 설 때마다 빈 버스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누구와 얘기하는 건지 버스는 내내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나는 살짝 열린 버스 창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매만졌다. 이내 그 형태를 확인한 후, 다시 바람을 마주했다. 그날 바람의 색은 푸른빛이었다. 푸른 바람은 내가 탄 버스를 따라 하늘하늘 춤을 췄다. 순간 나는 교실 안에서 미동도 없이 공부하거나 졸았던 무료한 날들이 증발되고, 바싹 마른빨래가 되어 어서 나를 걷어갈 손길을 기다렸다. 이런 설렘은 버스 정류장을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운동장에 퉁퉁 공 소리가 울려 퍼진다. 혜영이와 성현이는 벌써 와있었다. 사실 일요일 오전, 농구시합을 제한한 건 혜영이다. 말수가 적은 혜영이는 행동파이다. 우리가 떠들어대는 사이, 어떤 모종의 계획을 혼자 세우고, 갑자기 우리에게 제한한다. 대부분 우리는 그 제한을 받아들였고, 그리하여 고3이지만 여러 추억들을 쌓았다. 5월의 농구 연습은 그중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추억에도 빛깔이 있다면, 농구와 함께 했던 짧은 그 시간은 초록에 가깝다. 짙은 초록도 아니고, 연한 연둣빛도 아니다. 우리는 이제 막 초록빛으로 도달한, 여린 이파리들이다. 내내 연둣빛을 간직하다가 5월의 태양 아래서 드디어 초록의 세계에 입문한 초보들이다. 제 색깔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몰라 헤매다가 드디어 제대로 색깔을 갖추게 된 우리들은 조금씩 생각의 방향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마도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걷게 될 운명에 대해 미리 감지했을지도 모른다.
초시계를 가지고 와서 초를 잰다. 드리블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골대 앞 어떤 자세든 상관없다. 30초 안에 15개의 골만 넣으면 만점이다. 나와 혜영이는 말없이 연습만 했다. 성현이는 배고프다, 졸리다를 연발하다가 우리가 연습하는 걸 지켜봤다. 그날 교정에 서있던 푸른 은행나무는 말없이 우리를 지켜봤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학교는 건물뿐 아니라 대부분의 것들이 오래됐다. 마룻바닥은 삐걱댔고, 창은 덜컹댔으며, 벤치의 나무들은 세월 따라 나이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커튼이 촐랑거리며 혀를 내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농구 연습을 했다.
5월 한 달간은 수학도, 영어도 아닌, 농구에 집중했다. 골대에 공이 들어갈 때마다 짜릿한 손맛이란 무엇인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느꼈다. 내가 투자한 시간만큼 내가 거둘 수 있는, 정직한 보상을 우리는 바랬을지도 모른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다고 달라질 리 없는 우리의 성적. 오히려 집중하기보단 딴 곁가지로 빠져 샛길을 만드는데 더 능숙했던 우리에게 농구 시험은 정직한 대가를 받는 기분이었다.
한 달 뒤 드디어 실기 시험이 있던 날. 혜영이는 30초에 15개 성공, 나는 14개 성공, 성현이는 10개 미만. 우리의 성적은 노력 대비 플러스 운이 작동했고, 나는 약간의 불운을 겪었지만, 초반 위기를 극복하고 나머지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이토록 단순한 시험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으로 움직이는 일들이라면 자신이 생겼다. 몸과 머리가 같이 움직였다면, 나의 수능 성적도 좀 더 나았을 텐데라며 그때를 회상해본다.
수능 시험을 끝내고, 원서를 내기 전에 가장 지루하고도 의미 없는 시간이 이어졌을 때였다. 혜영이와 나는 또다시 고행을 자처했다. 그날 수능이 끝난 고3들은 수업 대신 국립 서울현충원으로 단체 견학을 갔다. 우리는 마칠 시간 때쯤 그 대열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현충원은 한강 이남에 있고, 우리는 모두 강북에 살았다. 무작정 서울을 종단하며 걷고 또 걸었다. 한강 다리를 건너 걷고 또 걸었다. 서로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음표처럼 따라오던 우리의 발소리만 있음뿐이다.
3시간이 넘었을까? 종로에 살던 혜영이와 헤어지고, 나는 돈암동까지 좀 더 걸었다. 생각해보면 걷기엔 무리일 수도 있는 거리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이제 막 초록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청춘이었고, 곧 짙은 초록색을 바꿔갈 시점이었다. 여물어가고 있고, 아물어가고 있던 청춘이었다. 걷다보니 졸업 후, 우리가 겪게 될 어떤 고행들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의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늦가을이 지나, 초겨울 무렵 코앞에 펼쳐진 우리의 미래는 막연하고, 암울하기도 했다. 나는 먹먹히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 어떤 웃음도 지니지 않은 채 바싹 타버린 낙엽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초록에서 급격하게 갈색으로 색을 바꿨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다시 봄이 오면, 연한 연둣빛 싹으로 피어날 거란 것을. 그땐 몰랐지만, 봄볕에 나른해진 나는 마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자라듯, 연둣빛 싹이 자연스럽게 싹 틔우는 과정을 목격했다. 생의 주기가 가끔 나를 소용돌이처럼 흔들어놓지만, 자연의 주기는 그대로라는 것을. 나의 청춘은 드디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초록을 즐기다가 하나씩 낙엽을 떨어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