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앞서 나는 근본 개념을 만드는 과정이 "논리의 경쟁"이고 이 경쟁이 곧 "생각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결론이 생각의 최소, 즉 "우리의 생각 과정에 효율성을 더해주는 근본 개념의 탄생"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안 그래도 평소에 생각이 없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논리의 경쟁"을 통해 "근본 개념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A = B = C ? 이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명제가 아니다. 미치광이 철학자들 중에는 순수 논리와 순수 논리를 연결시켜 논리적인 주장을 만드는 괴물들이 있지만, 우린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의 경쟁"에서 우리를 도와줄 도구가 필요하다, 이게 바로 "가상 사고 실험"이다. 먼저 예제를 통해 가상 사고 실험에 대해 알아보고 그 원리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영국 축구팀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 (27) 선수는 현재 주급 2억 100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저자는 현재 주급이 거의 0에 수렴하는 대학원 TA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세 시간씩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채점도 하며 열심히 다음 세대의 지식인들을 키워내는 작업에 동참하고 있지만 생활비는 언제나 빠듯하다. 그런데 다행히 손흥민 선수를 비롯한 스포츠 스타들이 아주 높은 임금을 받는 동안 저자와 같은 불쌍한 대학원 생들이 아사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 정부가 내년부터 2,000만 원 이상의 주급을 받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70%의 세금을 과하여 모든 한국 국적 석박사 생들에게 분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매 달 30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난리가 났을 것이다 (여러 의미에서). 하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전혀 현실성 없어 보이는 이 사건을 꾸며낸 이유가 있다. 바로 "근본 개념 구성"을 위해서다.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손흥민 선수의 주급이 2억 1000만 원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친다. 사실 손 선수는 광고도 찍기 때문에 주급이 3억으로 뛴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저자의 주급이 사실상 0에 수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학교가 학비를 내주는 것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 두 가지 새로운 주장은 우리의 논의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제공할까?
아무 긍정적 효과도 제공하지 못한다.
손 선수의 주급이 2억 1000만 원이든 3억이든, 그리고 내 주급이 0원이든 10만 원이든, 내 질문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엄청난 임금격차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임금 격차가 정당화될 수 있냐"는 것이다. 위 두 가지 질문은 핵심적 포인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논의할 가치가 없는 질문들이다. 이런 경우 우리의 생각의 흐름은 "샛길로 빠졌다"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각은 집중력(FOCUS!)을 잃은 것이다. 샛길로 빠진 상태에서 도출된 결론, 주장, 이유는 모두 본론에 대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쓸모없는 내용이 돼버린다.
이런 쓸모없는 내용을 모두 빼고 정말 우리가 물어보고자 하는 핵심의 내용만을 남겨서 질문하는 것이 가상 사고 실험의 핵심이다. 이렇게 해야만 우리가 정말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상 상황을 만들어서 우리가 시험해보고자 하는 게 뭘까? <실험 1>의 핵심 실험 내용은 바로 부의 분배와 정당성이다. 부의 불평등이라는 상황을 아주 명쾌하게 보여주는 상황을 만들어 낸 뒤, 이것이 정당 한 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바로 이 실험의 목표이자 방향성이다.
따라서 이 실험에서 형성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손흥민 선수 (주급 2억 1000만 원)의 돈을 세금의 형태로 수거해서 저자 (주급 사실상 0에 수렴)에게 제공하는 정책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도 "븅신" 혹은 그 동의어로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만약 우리가 단순히 "월급을 엄청 많이 받는 사람과 엄청 적게 받는 사람 간의 임금 격차는 정당한가?"라고 물어봤다면 제대로 된 대답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엄청 많이 받는 게 얼마 정돈데?" "다른 상황도 고려해야 하지 않아?"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아?" 이런 질문들이 연이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실험을 만들어서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겠다고 정해놓으면 정말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 손 선수 2억 천만 원, 저자 0원. 이 차이가 정당한가? 이렇게 간단히 질문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옳으냐 그르냐 라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서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 가상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상황을 바꿀 수 있다)
2. 사고 - 특정 상황을 만들어 냄으로서 세밀한 도덕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3. 실험 - 통제 변인(control variable)*을 설정한다. (*아래 자세한 설명 참조)
우리가 "가상 사고 실험"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부터 근본 개념을 도출해내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은 너무 복잡하고 상세하다. 감정과 상황, 관계와 물질의 다양한 다이내믹이 아주 촘촘히 엮여있다. 반면 가상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은 마치 건물의 도면을 만드는 것처럼 복잡하고 상세한 현실을 아주 간단하고 눈에 보이도록 축소하는 것이다. 도면을 보면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볼 수 있다. 창문의 길이만 모아서 볼 수도 있고 천장의 높이도 한눈에 볼 수 있다.
가상 사고 실험도 마찬가지다. 통제 변인을 설정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부분의 특성만 모아서 볼 수 있게 된다. 통제 변인을 설정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X, Y, Z의 요소는 우리의 가상 상황에서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손흥민 선수의 예제로 돌아가 보자. 이 예제에서 우리는 손 선수가 토트넘 홋스퍼에서 받는 주급 외에 광고 모델료나 보너스 등의 돈은 고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간헐적으로 받는 일회성 알바비도 고려하지 않는다. 두 요소를 모두 배재하는 것이 가상 사고 실험 1의 의도를 전혀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고려 또한 마찬가지다. 손 선수는 지금이 전성기인 반면 저자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래의 수입이나 은퇴 시기의 차이는 가상 사고 실험 1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손 선수의 1년 연봉이 웬만한 학자의 20년어치 연봉보다 높으니까.
많은 요소들을 "통제 변인"으로 두고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봄으로써 우리가 궁금해하는 근본 개념의 정의에 훨씬 더 집중해서 다가갈 수 있다.
손흥민 선수와 저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몇 가지 설명을 가져올 수 있다.
손 선수는 운이 좋아 축구가 인정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몇 세기 전에 태어났다면 학자의 길을 걷는 내가 더 많은 부를 누릴 수도 있었다. 운의 차이로 이 정도의 부의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부들부들)
한 개인의 노동의 가치가 다른 개인의 노동의 가치보다 (대략) 2억 1000만 배 높을 수 없다. 따라서 그 정도의 임금 격차 또한 정의롭지 않다.
축구를 하는 것보다 다음 세대를 양성하는 일이 더 값지다. 따라서 대학원 조교가 오히려 더 많은 주급을 받아야 한다. (아멘!)
어떤 대답이 가장 좋은 대답일까? 그리고 만약 상황이 바뀐다면, 내 대답도 바뀔까? 이건 또 다른, 아주 어려운 문제다. 이 두 질문에 대한 좋은 해답을 내놓기 위해서 우리는 아주 강력한 근본 개념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3. 생각의 흐름: '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8.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