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꽁무니
가상의 상황을 꾸며내는 것과 좋은 근본 개념을 만들어 내는 것 모두 어려운 일이다. 뭘 먹을지, 뭘 입을지. 뭔 짓을 해서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지 고민하던 일상에서 갑자기 자유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쉬울 턱이 없다. 생각이 어려워서 근본 개념을 만들었고 근본 개념 만들기가 어려워서 가상 사고 실험을 만들었다. 그런데 뭔가 더 복잡해지고 더 어려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혹시 내가 생각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한다면 두 가지 변명을 하고 싶다.
1. 생각은 원래 어려운 건데 이제까지 생각에 대해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그걸 몰랐던 게 아닐까?
2. 앞으로 생각의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 줄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니 기다려 줄 수 없을까?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마침 짝꿍이 전교 1등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가 공부하는 방식을 따라 해 보았다. 머리도 그 아이처럼 굴러가지 않았고 같은 문제를 푸는데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하지만 그 아이가 하는 방식을 따라 하다 보니 내 공부 방법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그 아이의 방식을 도입해서 공부한 결과 점수도 올랐다.
근본 개념에 대해서도 이 방법을 도입해보려 한다.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 방법론을 내 생각 과정에 도입하는 거다.
예를 들어 "자유"라는 근본 개념을 생각해보자. 누군가가 그냥 갑작스레 머리에서 떠올릴 수 있는 자유라는 개념은 이 정도일 것이다.
자유는 아무런 방해나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완전 별로다. 더 잘하는 친구 답을 좀 베끼고 싶다. 누가 “자유”라는 주제에서 전교 1 등격일까? 그쪽 생각에 인생을 바친 사람들, 정치철학자들이 아닐까? 수많은 철학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세 존(John)들의 자유 개념이 우리가 베끼기 딱 좋은 모범생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존 로크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다. 그는 동시대 사상가 로버트 필머 (Robert Filmer)가 “왕의 절대적 권위는 신이 첫 인간 아담에게 부여한 권위로부터 승계된다”라고 한 주장을 반박하며 “사회계약론”을 주장했다. 로크는 1) 모든 인간이 신이 부여한 “자연권 (natural right)”을 소유하고 있으며 2) 이 권리의 특정 부분을 정부에게 이양하는 “계약”을 맺어 3) 더 큰 자유를 지키고자 한 것이 4) 정부의 성립의 성립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로크는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In political society, liberty consists of being under no other lawmaking power except that established by consent in the commonwealth. People are free from the dominion of any will or legal restraint apart from that enacted by their own constituted lawmaking power according to the trust put in it. […] Freedom of people under government is to be under no restraint apart from standing rules to live by that are common to everyone in the society and made by the lawmaking power established in it. Persons have a right or liberty to (1) follow their own will in all things that the law has not prohibited and (2) not be subject to the inconstant, uncertain, unknown, and arbitrary wills of others.
중요한 개념들만 뽑아내 보자. (전교 1등 공부법을 따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모든 행위를 다 따라 하지 말고 중요한 부분만 쏙쏙 뽑아내라.)
그에게 자유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인간은 지들이 합의한 방식으로 만든 법 외에는 따를 필요가 없다
공동체 모든 인간들에게 다 적용되는 법의 규제만 따르면 된다
불법만 아니면 뭔 짓을 해도 된다
타인의 의지에 억압당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로크가 말하는 자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하지만 저 정도만 가지고도 우리의 논리를 강화시키는 연습을 하기에는 충분하다. 우리는 앞서 자유를 “아무런 방해나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정의했는데 로크의 정의에 비하면 너무 모호하다. 로크의 개념에서 몇 가지를 베껴보면 어떨까?
[수정 개념 1]
자유는 나를 포함하는 공동체가 함께 동의 한 규정 하에 아무런 방해나 억압 없이 타인의 부당한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가? 물론 여전히 문제는 많다. 공동체가 함께 규정만 한다면 어떤 괴팍한 행위도 “자유”라 불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문제다. 그리고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수많은 장애인들과 소수자들에게 자유를 제한한다.
[수정 개념 1]을 더 좋은 개념으로 바꾸기 위해 둘째 존의 도움을 받아보자. 존 스튜어트 밀은 1859년에 <자유론 (On Liberty)>라는 책을 썼다. 얘는 아예 책 전체가 자유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교 1등 중에서도 유별난 애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밀의 자유 개념은 그의 거대 담론인 공리주의 (Utilitarianism) 개념과 연관되어 있는데, 공리주의는 쉽게 말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이념이다. 공리주의는 결과론적 이념으로서 과정이 아닌 결과적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 물론 “행복”에 대한 정의를 아주 세밀하게 제공하고 있으니 그냥 무조건 자기만족만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하진 마시길.
아무튼, 밀의 자유 개념의 핵심 중 핵심만 꼽자면 딱 한 줄로 설명이 된다.
위해 원칙(Harm Principle):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 내 자유가 침해될 수 없다.
자, 밀의 개념도 우리 개념에 적용해보자.
[수정 개념 2]
자유는 나를 포함하는 공동체가 함께 동의 한 규정 하에 타인의 부당한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적용된다.
이제 우리의 자유는 남을 마구잡이로 죽일 수도 없고 수많은 “괴팍한” 종류의 자유를 걷어내준다. 하지만 여전히 소수자들, 그리고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래서 우리는 셋째 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셋째 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다. 공리주의 철학이 서양 철학계를 지배하던 시절, 의무론(deontology)을 외치며 혜성같이 등장한 롤즈는 “정의란 공정함이다! (Justice is fairness!)”라는 모토로 가히 세계를 정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자유론을 대락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본권과 자유를 지닌다
개인의 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모든 재산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부의 축적은 타인의 기본권을 해치기 때문)
셋째 존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1) 자유의 평등성과 2) 자유의 부자유성일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의를 수정해보면,
[수정 개념 3]
자유는 나를 포함하는 공동체가 모든 일원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전제 하에서 함께 동의 한 규정에 따라 타인의 부당한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은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적용되고 특히 누군가가 위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제한하는 선에서 적용된다.
이렇게 우리의 근본 개념을 강화시키다 보면 어느새 정말 세밀하게 구성된 정의를 내리고 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6화 <생각의 일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근본 개념으로 내 일관성을 시험하는 연습을 해보자.
3. 생각의 흐름: '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8.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