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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Nov 13. 2019

생각의 일관

생각의 최소를 지키는 방법

이전 3화에서 생각의 최소를 근본 개념 형성이라 했다. 그리고 4화에서 전교 1등의 꽁무니를 쫓아서 만든 근본 개념을 이번 화에서 시험해보자고 했다. 한번 해보자.




4화 [생각의 기준: 전교 1등의 꽁무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유 개념을 형성했다. 


자유는 나를 포함하는 공동체가 (1) 모든 일원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전제 하에서 (2) 함께 동의 한 규정에 따라 (3) 타인의 부당한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은 (4)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적용되고 특히 누군가가 위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제한하는 선에서 적용된다.


이와 같이 근본 개념을 설정했다면, 다음 과정은 이 개념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신념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시험 1> - 누진세


만약 내가 소득세에 대한 누진세(돈이 더 많은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제도) 적용을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내 근본 개념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줄까? 나의 자유 개념과 누진세에 찬성하는 나의 주장이 일관성 있을까? 근본 개념에 입각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질문 1] 누진세 제도가 모든 일원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 보는가? 

그렇다.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회의 일원이기에 모두가 해당 규율의 규제를 받는다. 그 누구라도 제도가 결정한 일정 량 이상의 부를 지니게 된다면 과세 대상이 된다. 어떤 이는 이 제도를 부자에 대한 차별, 즉 부자들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자유 개념의 (4) 부분을 보면 우리의 자유 개념은 "부당한 억압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제한한다. 특히 과세 제도는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정부가 사용하는 공적 제도다. 누진세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는 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월 200만 원을 버는 사람과 월 2,0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똑같이 20%의 세금을 낸다면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삶에 큰 타격을 받는 반면 월 2,000만 원을 버는 사람은 타격을 받긴 하지만 여전히 비교적 매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두 사람이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누진세를 지정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질문 2] 누진세 제도가 모두가 동의한 규정인가?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다. 따라서 민주적 동의 과정을 통해 입법이 되고 동의의 철회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면, 해당 제도는 모두가 동의한 규정으로 불 수 있다.  


[질문 3] 누진세 제도가 이 제도에 가장 큰 피해자인 부자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가?

이 질문은 부당한 억압에 대한 자세한 정의를 필요로 한다. 나는 부당한 억압을 “인간으로서 추구해 마땅한 근본적인 자아실현 - 의식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신체와 지능의 능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 - 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억압되는 것”이라 주장하겠다. 그렇다면 부자가 누진세의 피해를 받는 것이 그의 근본적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억압하는가? 아니라고 본다. 돈을 원하는 마음은 끝이 없지만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 충분적 돈은 누진세 법 하에서도 소유할 수 있다. 누진세 법은 오직 누진세 법 하에서도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 충분적 돈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 즉 부자들에게만 특정 비율의 과세를 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 근본 개념을 누진세를 찬성하는 주장에 대입해보니 우리에겐 일관성이 있다. 이번에는 일관성이 없어지는 사례를 보자.


<시험 2> - 의료 민영화


[질문 1] 의료 민영화 제도가 모든 일원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 보는가? 

그렇다. 모두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회의 일원이기에 모두가 해당 규율의 규제를 받는다. 그 누구라도 제도가 결정한 방법에 따라 병원을 운영할 수 있고 병원이 지정한 운영 방법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제도를 빈자에 대한 차별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똑같이 위 자유 개념의 (4) 부분을 침해하는 것이 아닐지 궁금해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체계가 민영화되는 것 만으로 그 사회와 사회 제도가 모두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누진세와 같은 세금 제도와는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의료 체계가 공영제 도로 운영되어야만 하는 우리의 천부 인권의 일부인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질문 2] 의료 민영화 제도가 모두가 동의한 규정인가? 

우리 사회는 민주사회다. 따라서 민주적 동의 과정을 통해 입법이 되고 동의의 철회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면, 해당 제도는 모두가 동의한 규정으로 불 수 있다.  


[질문 3] 누진세 제도가 이 제도에 가장 큰 피해자인 빈자들을 부당하게 억압하는가?

앞서 말했듯 부당한 억압은 “인간으로서 추구해 마땅한 근본적인 자아실현 - 의식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신체와 지능의 능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 - 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억압되는 것”이라고 보자. 그렇다면 의료 민영화는 근본적 자아실현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억압할까? 그렇다.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발생하는 피해 자체는 없을 수 있지만 빈자들이 의식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매우 큰 제도이기 때문에 결국 부당한 억압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 의료 민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의료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효율성과 기술력, 의료 서비스의 발전 등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사적 서비스 산업으로서의 의료 제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서비스를 받을 가능성을 특정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앗아간다는 점에서 빈자들을 부당하게 억압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자유 근본 개념을 의료 민영화를 찬성하는 주장과 빗대어 보았을 때, 우리는 일관성을 잃게 된다. 




우리의 자유 근본 개념이 모든 상황에서 합리적인 해답을 주지 못 할 수도 있다. 우리의 근본 개념은 절대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A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그 신념을 유지하고 싶은데 우리의 근본 개념이 일관적이지 못하다면, 근본 개념을 수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천재가 아닐 가능성도 크다. 현재의 근본 개념을 너무 심하게 고집하기보다는 수정의 가능성을 항상 생각하자. "근본 개념을 고친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얼마나 유식하게 들리는 말인가?




1. 생각의 시작

2. 생각의 최소: 근본 개념

3. 생각의 흐름: '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4. 생각의 기준: 전교 1등의 꽁무니

5. 생각의 양식: 주입과 해석

6. 생각의 일관: 생각의 최소를 지키는 방법

7. 생각의 나눔 1: 개인의 표현 - 글쓰기

8.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

9. 생각의 확장: 그럴 수도 있지

10. 생각의 결과: 애도와 정치, 그리고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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