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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Nov 17. 2019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

앞선 화 까지는 개인의 생각을 어떻게 형성하고 표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개인이 생각을 나누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의 생각은 규모에 상관없이 집단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영역으로 퍼져나간다. 또 반대로 사회에 모인 수많은 표현들은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개인의 생각이 어떤 통로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는, 그리고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회의 표현이 전달되는 가장 흔한 통로는 언론(mass media)이다. 언론은 SNS(social media)라는 또 다른 미디어 매체와 청중의 역할을 중심으로 구분된다. 언론의 경우 공급자와 수요자가 정확히 구분된다. 언론은 정보를 공급하고 청중은 수동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는다. 이 구조에서 청중은 언론에게 정보와 의견을 제공받는 역할만을 수행하고 언론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데에 큰 제한이 있다. 반면 SNS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정해져 있지 않다. 내가 정보를 제공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그 정보를 소모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브런치에 정보를 나누는 내가 다른 이들의 글을 읽을 수 있고 우리의 글이 공통의 플랫폼에서 같은 "글"로써의 가치를 부여받는 이 곳이 SNS의 가장 좋은 예다.) 이러한 과정에서 SNS는 개인의 역할이 중심을 이루고 언론은 집단의 역할이 중심을 이룬다.


이와 같은 언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번 화에서는 1) 언론이 제공하는 "사회의 표현"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그리고 2) 개인이 어떻게 언론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지키고 나아가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언론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어떤 시각으로 미디어를 바라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의 틀을 먼저 알아보고 그들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아도록 하자.


1. 언론과 민주주의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의 틀은 결국 우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법학자이자 언론학자였던 C. 에드윈 베이커(C. Edwin Baker)는 자신의 저서 <Media, Markets, and Democracy>에서 민주주의를 네 종류로 구분하였다. [1] 


(1) 엘리트적 민주주의 (Elitist Democracy)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민주주의를 "자유선거를 통해 누가 우리를 지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제도"라고 정의했다. 베이커는 이와 유사한 민주주의 이론을 "엘리트적 민주주의"라 정의했다. 엘리트적 민주주의는 전문가에 대한 강한 신뢰와 더 나은 전문가를 선출하는 과정으로서의 선거를 중요시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서 일반인의 역할은 두 가지다. 1) 특정 역할에 알맞은 공적 엘리트(혹은 전문가)를 선출하고 2) 그가 대중을 실망시킬 때 그를 쫓아내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

베이커는 이러한 제도 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유로운 언론(free press)이라고 말한다. 각 분야의 중요한 역할을 모두 엘리트에게 역임한 시민 계층은 엘리트들을 감시하고 부정부패 혹은 무능을 고발해 줄 감시견(watchdog) 언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적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을 딱 여기까지다. 이 제도에서 시민의 역할은 선거 참여에 그치기 때문에 시민들이 복잡한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거나 고차원의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따라서 언론이 시민들의 정치 지능을 향상해 줄 지식을 제공하거나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줄 필요가 없어진다. 또 시민의 제한적 역할을 비판하거나 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더 좋은 엘리트가 나타났을 때 자연스레 사라질 불만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베이커는 엘리트적 민주주의에서 언론이 사적 엘리트(기업가, 학자 등)를 감시하는 역할은 중요하지 않다며 그 한계를 말해준다.


(2)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Liberal Pluralism Democracy)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인간 개인의 번영에 적합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발전되는 제도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여야만 그 제도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들에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모든 시민은 자신의 이익에 대해 고민하고, 그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을 찾아 나서고, 그 집단은 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러한 제도 하에서 엘리트는 단순히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 (하지만 엘리트들 또한 스스로의 이익을 바탕으로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는 특정한 도덕적 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이익집단의 이익 추구와 대결, 협상, 합의 등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법칙을 통해 이루어진다.


베이커는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와 엘리트적 민주주의가 가장 다른 부분이 바로 "부패"를 대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엘리트적 민주주의에서 부패는 엘리트를 쫓아내는 기준 중 핵심이다. 하지만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엘리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부패가 아닌 "이익 추구"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엘리트를 쫓아낼 수 없는 것이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큰 기조라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

이러한 제도에서 언론의 역할은 1) 팩트 전달을 중심으로 특정 이익이 언제 어떻게 위협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것, 2) 같은 이익을 공유하는 이들을 동원하는 것, 그리고 이익집단과 정책 입안자들 간의 정보 교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정파적이고 세분화된 다양한 언론사가 필요하다.


(3) 공화주의적 민주주의 (Republican Democracy)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는 인간이 단순히 자신과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또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는 인간의 이익이 단순히 내면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교류를 통해 발생하고 수정되고 표현된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해당 제도가 바라보는 시민은 자신의 이익 외에도 "공공의 이익(public good)"을 생각하는 존재다. 이러한 가정은 결국 공공의 이익을 함께 도모하고 추구할 수 있는 "공적 영역(public sphere)"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이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rule of the many)"를 받게 되고 더 많은 이들의 참여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의 핵심 기조다.


언론의 역할

이러한 제도에서 미디어의 역할은 1) 팩트를 넘어 정보를 가치와 도덕성에 기반하여 해석하고 토론에 필요한 생각의 틀을 제공하는 것과 2) 사회적 합의를 위해 폭넓은 청중을 감안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베이커는 공화주의적 민주주의에서의 언론이 자유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서와 달리 예의 바르고(civil) 중도적(balanced)이고 객관적(objective)이고 포괄적(comprehensive)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먼저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할 것인지 고민하자. 한 가지 민주주의 이론을 결정했다면 언론의 행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성을 지녀야 하는지"를 고민할 기본 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그 기준에 걸맞은 행위를 하고 있는지 고민해보자. 혹시 우리 언론은 나와 다른 민주주의 이론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이 주장하는 "올바른 언론"의 행태는 어떤 것이며, 그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들은 팩트를 제공하고 있는가? 팩트만 제공하면 되는가? 그들은 팩트 너머에 존재하는 도덕에 대해 생각하는가? 


 

2. 규범적 기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라볼지 결정했다면 그다음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를 구분하는 규범적 기준에 대해 알아보자. 언론학자 다니엘 할린(Daniel Hallin)에 의하면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는 정보는 크게 합의의 영역, 합법적 논쟁 영역, 그리고 일탈의 영역에 포함된다. [2] 이 모델은 생각하는 개인인 우리에게 미디어의 표현을 구분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Daniel Hallin - The Uncensored War (1986)


(1) 합의의 영역 (Sphere of Consensus) 

합의의 영역에 포함되는 표현은 사회의 규범을 인용, 동의, 재확인, 강화시키는 표현이다. 미디어가 이 영역에 포함되는 내용을 다룰 때는 주로 사회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당연한 내용을 대하듯 다룬다. 예를 들어 건강한 20대 초반 남성이 입대하는 소식은 충격적 사건으로 다루기보다는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마치 선거가 논란이 되는 제도인 것처럼 다루는 언론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 사회가 전반적으로 합의를 이루어 놓은 부분에 대해서 언론은 아주 당연하다는 것을 가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합법적 논쟁 영역 (Sphere of Legitimate Controversy)

합법적 논쟁 영역에 포함되는 표현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어떤 결론이 더 좋은 결론인지, 더 합리적인 결과인지 등에 대해 논쟁하는 표현이다. 이 영역에서 미디어의 중요성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공하고 그 의견들을 분석할 수 있는 정보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이 영역에서 언론의 주된 역할이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가 교육 제도, 선거 제도, 처벌 제도 등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경우 이에 대한 정보와 대립 구도를 전달할 뿐 아니라 각 진영의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창구의 역할까지 언론이 맡게 된다. 물론 언론이 특정 진영에 동참할 수 있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3) 일탈의 영역 (Sphere of Deviation)

일탈의 영역에 포함되는 표현은 논쟁을 넘어 사회적 규범이 허락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표현이다. 이 영역에서 미디어는 주로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사회 전반적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등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의 부패, 수능 부정행위, 그리고 기타 범죄행위에 대해서 미디어가 미리 내려놓은 도덕적 판단을 기반으로 이를 평가하는 방식의 표현이 주를 이룬다. 살인범에 대해 표현하면서 살인이 나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처럼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주제가 일탈의 영역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자녀가 부정취업을 했는데 그것을 합법적 논쟁거리인 것처럼 보도한다면? 일반인의 합법적인 정부 비판을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역죄인 것처럼 보도한다면? 기업인이 수천억 대의 비리를 저지르고 뇌물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논쟁의 영역으로 끌고 오지 않는다면? 합의의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한 국민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마치 논쟁거리로 부풀려 정파적 갈등을 야기한다면? 


할린의 모델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언론이 한 영역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을 다른 영역으로 끌고 와 보도한다면 그때 우리는 언론의 도덕성에 의문을 던지면 되는 것이다.



3. 비판적 시각의 필요성 


나는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논쟁거리고 생각하고 무엇을 일탈로 생각하는가? 나는 어떤 가치를 사회적 규범으로 보고 어떤 방식으로 이 가치를 더 공고하게 만들고 싶은가? 언론은 이 모든 질문과 아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베이커의 민주주의 구분과 할린의 모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결국 언론의 표현에 대한 "포괄적 도덕 평가의 기준"이다. 이 기준을 통해 먼저 우리의 비판적 시각을 훈련하자. 우리 스스로가 논리적으로 공고한 평가 기준을 갖지 않는 이상 우리는 비판적 시각으로 언론을 바라볼 수 없다. 






[1] Baker, C. Edwin. Media, Markets, and Democra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2] Hallin, Daniel C. The uncensored war: The media and Vietnam. Univ of California Press, 1989.




1. 생각의 시작

2. 생각의 최소: 근본 개념

3. 생각의 흐름: '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4. 생각의 기준: 전교 1등의 꽁무니

5. 생각의 양식: 주입과 해석

6. 생각의 일관: 생각의 최소를 지키는 방법

7. 생각의 나눔 1: 개인의 표현 - 글쓰기

8.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

9. 생각의 확장: 그럴 수도 있지

10. 생각의 결과: 애도와 정치, 그리고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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