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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성준 Nov 13. 2019

생각의 나눔 1

개인의 표현 - 글쓰기

근본 개념을 만들고 수정하고 가상 사고 실험을 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형성된 생각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직관적인 대답은 "나누기"일 것이다. 


생각의 나눔은 주로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말 외에도 글로 남겨 둘 수도 있고 녹음을 할 수도 있고 수화로, 그림으로, 코딩으로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꼭 남에게 나누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일기를 통해 미래의 나에게 나누는 것도 가능하지 않는가? (물론 미래의 내가 남인지 아니면 나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수많은 나눔의 방법 중 이번 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방법은 글쓰기, 특히 남에게 나누는 글쓰기다. 


우리는 글쓰기를 문장 만들기의 동의어로 생각하곤 한다. 물론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다. 하지만 글쓰기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버리면 오히려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갑자기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문장으로 만드는 게 글쓰기라니, 이건 차라리 연금술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글쓰기는 하나의 과정이 아니다. 글쓰기에는 크게 [생각], [구성], [정리], [수정], 네 과정이 있다. 


1. 생각 

당연히 글쓰기의 시작은 쓸 내용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는 앞서 1화에서 5화까지 생각의 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생각의 과정은 치열하고 어렵지만 우리는 최소한으로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기로 했으니, 조금씩 조금씩 쉬워질 거라고 본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근본 개념을 떠올리는 것부터 가상 사고 실험을 하면서 근본 개념을 수정하는 것 까지 머릿속에서 다 하려고 하면 머리가 터지기 십상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이미 펜으로 무엇인가를 끄적이며 생각 과정을 거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펜으로 끄적거림이 우리 생각의 효율을 아주 높혀준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의 과정 그 자체가 이미 글쓰기의 시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2. 구성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글의 구성을 만드는 과정이다.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제치고" 바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데 정말 안 좋은 습관이다. 구성 과정은 쉽게 말하면 개요 작성(outlining) 과정인데, 내가 쓸 글의 논리적 흐름을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해 보는 과정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본 글의 개요>


두뇌의 공간이 어마어마한 천재가 아닌 이상 개요 작성을 하지 않는다면 글쓰기 과정에서 글이 샛길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너무 큰 그림을 계속 머리로만 그리다 보면 여기서 갑자기 두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 생각을 정리하는 행위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필연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나의 글이 완성본이라는 결과물을 향해 가는 과정의 엄연한 한 부분인 구성 과정은 당연히 글쓰기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3. 생각 정리

그다음은 머릿속에 존재하던 생각, 혹은 그것을 끄적인 내용을 2에서 만든 구조에 따라 "글"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으로 써내려 가보는 과정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글쓰기"의 과정이 바로 이 생각 정리 과정인데, 이 과정이 끝이 아닌 이유는 이 과정에서 완성되는 글은 너무 저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 생각 정리 과정을 "초고(rough draft/first draft)"라고 부른다. 한 번 생각해보자. 아주 "쌩"으로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을 마치 "붓을 떼지 않고 글을 쓰는 것"과 같이 문장의 형식으로 바꾸었다. 이건 남 보라고 쓴 글이라기보다는 내 생각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아직까지는.


4. 수정

그래서 우리는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정을 "하면 좋고 안 하면 어쩔 수 없고~"가 아니라 무조건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만 진짜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오히려 수정 과정이 글쓰기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글쓰기가 남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왜 쓸까? 읽히려고 쓴다. 남 보라고 쓴다는 말이다. (여기서 남은 미래의 나 또한 포함한다. 지금 잘 써놓지 않으면 내가 쓴 글도 미래의 내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을 위해서 쓴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남을 위해 쓴다는 것은 남이 읽을 수 있게, 읽기 편하게 쓰는 것이 글쓴이의 의무라는 것이다. 우리의 "쌩" 생각을 바로 종이에 담아 남에게 제공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우니까, 뇌만 거친 글은 발가벗은 상황, 혹은 바지를 위에 입고 옷을 아래 입은 상황이나 마찬가지니까, 정돈을 해서 보여주자는 것이다.


수정은 다시 두 종류의 수정으로 나뉜다.


(1) 문법 순서 수정

우리가 초고를 작성할 때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문법을 꼬아서 쓰는 것이다. 한글은 웬만큼 문법을 꼬지 않는 이상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철수가 갔다 영희를 만나러"라고 해도 대부분 사람들은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쓰인 글은 독자를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위 문장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철수가 갔다...(어딜?)... 영희를 만나러...(아!)


아주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독자는 두 번의 생각을 하고 논리적으로 두 문장을 하나로 엮어야 한다. 이 문장을 "철수가 영희를 만나러 갔다"라고 수정하면 우리의 독자는 생각을 한 번만 해도 된다. 이왕 독자를 위해 쓰는 글인 만큼 독자가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바꿔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당연히 오타 수정이나 필요 없는 단어를 제거하는 과정도 거쳐야 하겠다.


(2) 정보 순서 수정

문법을 고쳤다면 다음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다. 우리가 문장을 만드는 이유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인데 기존 정보를 다시 전달하는 것을 "반복"이라고 이야기 하고 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정보 전달"이라고 한다정보의 흐름이 자연스러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하는 개념을 딱 두 개다. 기존 정보새 정보. 기존 정보는 앞선 문장들에서 한 번 이상 나왔던 정보를 말하는데, 독자가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새 정보는 정보 전달의 핵심이자 문장의 존재 이유인데, 문장을 통해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보를 말한다. 예제를 통해 보자.


(기존 정보), (새 정보)

철수는 수요일 아침에 영희를 만나러 기차역으로 나갔다.

아침부터 소나기가 오는 바람철수는 기차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홀딱 젖어버렸다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철수를 본 영희는 철수가 홀딱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철수는 영희에게 소나기를 맞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영희는 아이패드를 살 수 없었다.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1) 기존 정보가 대부분 먼저 나오면서 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2) 앞선 문장의 새 정보는 다음 문장에서 기존 정보가 되곤 한다.

3) 마지막 줄에서 볼 수 있듯이 새 정보("아이패드를 살 수 없었다")가 너무 기존의 정보와 거리가 멀면 독자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의 초고를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고치면 독자들의 입장에서 글을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왕 남에게 나누는 것, 남을 배려하는 글을 쓰도록 노력해보자.




글쓰기의 과정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단순히 글을 더 잘 쓰게 될 뿐 아니라 생각의 과정 자체가 발전할 것이다. 생각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것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일까? 글쓰기를 연습하자. 그러면 남들이 내 생각에 조금씩 귀기울이기 시작 할 것이다.




1. 생각의 시작

2. 생각의 최소: 근본 개념

3. 생각의 흐름: '가상 사고 실험'으로 FOCUS!

4. 생각의 기준: 전교 1등의 꽁무니

5. 생각의 양식: 주입과 해석

6. 생각의 일관: 생각의 최소를 지키는 방법

7. 생각의 나눔 1: 개인의 표현 - 글쓰기

8. 생각의 나눔 2: 사회의 표현 - 언론으로부터 나의 생각을 지키는 법

9. 생각의 확장: 그럴 수도 있지

10. 생각의 결과: 애도와 정치, 그리고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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