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의 시작이니 주지도 받지도 말자가 안 통하는 나라
일본은 선물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비정기적, 정기적인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빼먹으면 좋은 평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됩니다.
일본에는 크게 네 가지로 구별되는 선물, ‘오미야게(お土産, おみやげ)’, '오쿠리모노(お贈物, おくりもの)', '오추겐(お中元, おちゅうげん) 그리고 '오세보(お歲暮, おせいぼ)'가 있습니다.
당일 출장을 다녀온 직원도 사탕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회사 동료, 친구,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차 선물로 나누어주는 일본 문화. 이렇게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서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두고 ‘오미야게(お土産, おみやげ)’라고 부릅니다.
오미야게(お土産)는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그 지역의 특산물인 차(茶)나 과자, 술 따위를 사서 나누어 주는 선물을 뜻합니다. 이 선물은 부정기적으로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결혼식, 장례식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오쿠리모노(贈おくり物もの, 선물)'도 부정기적으로 나누는 선물입니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矢野経済研究所)가 조사한 2015년 총칭 '오쿠리모노' 시장 규모는 약 17조 엔이었습니다. 한화로 따지면 약 177조 원, 대한민국 2019년 예산 470조 원의 약 36%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먼저 '오추겐(お中元, おちゅうげん)'이 있습니다. 1년을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누는 의미로 신세를 진 사람에게 6월 초순에서 8월 초순 사이에 선물을 보냅니다. 추겐(中元, 중원)은 본래 중국 고대의 축제를 뜻하고 있어, '신에게 제물을 바쳐 더러워진 자신을 청결하게 한다'는 뜻이 있답니다.
이러한 중원이 일본에 들어와 선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불교의 우란분재(盂蘭盆齋, 7월 15일) 즉,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과 겹쳐져, 선조의 영을 기리기 위한 공물을 친지와 이웃들에게 베푸는 관습이 정착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 일본의 각료 대신이 곡물을 바치는 장면도 바로 '오추겐'의 일종으로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풍습이 신세를 진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는 형태로 변화해, 현재의 오추겐으로 정착된 것이 메이지 30년대(1900년대)라고 합니다.
'오추겐을 보낼 때에는 상대방 가정의 연령과 가족 수, 취향 등을 알아본 후에 보낸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일본의 각종 지방 명주를 선물한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됩니다. 실제로 슈퍼마켓이나 마트에 가보면 선물코너가 아주 넓게 자리를 잡고 있고, 특별 한정 맥주 등 우리네 선물의 선택 기준을 넘어선 수많은 선물을 보내고 받습니다.
혹시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이전에 보낸 선물로 받는 사람이 기뻐했다면 계속해서 같은 것을 선물로 보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합니다. 또한 왜 이 선물을 골랐는지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적은 작은 카드를 함께 넣어서 보내도 좋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른 뒤에, 직접 배송 신청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몰의 발전으로 손쉽게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야마다덴끼(가전제품 양판점)에서도 '오추겐'이나 '오세보'를 접수하는 별도의 창구와 카탈로그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오세보(お歲暮, おせいぼ, 세모, 연말)' 등 선물을 당연히 보내야 하는 날의 일반적인 선물과, 작은 기념일이나 가족 친인척 사이의 경사, 친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벼운 선물 등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선물을 보냈던 일본 고대 문화가 기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세보'는 '오추겐'과 마찬가지로 백화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25시간 편의점에서도 가능합니다.
보통 12월 초순부터 중순까지 보내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근에는 10월 하순이나 11월 1일부터 오세보 코너가 설치되어 미리 예약하면 할인 등의 특전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연말의 바쁜 시기를 피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듯 11월에 선물을 보내기도 합니다.
오세보는 직접 전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요즘은 백화점 등에서 구입한 후에 바로 우송하는 것이 보통이 되었습니다. 바로 우송하는 경우에는 인사장을 동봉하거나 화물이 배송될 시기에 별도로 편지나 엽서를 보내는 것이 예의라고 합니다.
오추겐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보낼 것인가는 상대방의 취향을 잘 파악해서 보내는 것이 좋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3년 '받고 싶은 오세보 랭킹'에 의하면 1위는 '맥주'로, 2위의 '햄' 3위 '커피', 4위는 '과자', 5위는 '게' 등의 식료품이 차지했습니다.
맥주가 받고 싶은 선물 1위라니 의야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품권이나 기프트권을 보내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되었지만, 최근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손윗사람에게 금전류를 보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의 현재입니다. 우리네 선물 선호 1위가 '현금'이란 것과 비교하면, 많이 다른 것이 확실합니다.
선물이 워낙 일반적인 일본에서 오쿠리모노 없이 다닌다는 것은 준비성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일본에 출장 가실 때, 부피나 금전적인 부담이 없는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문화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소통하고 협력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오미야게는 '한국산 김'이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최근 20여 년간 변함없었습니다. 그래서 면세점에 김 포장 상품이 많은 것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이러한 선물 문화가 뇌물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작은 선물도 비즈니스 상황에서 배제하자는 세계적인 윤리경영 바람에 사라질 운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감사 업무를 오랫동안 이끌어 왔던 제 생각입니다.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