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명장면이 있다. 복도 한가운데 얇은 요가 매트 하나 깔고 스트레칭하는 김연아에게 누군가 묻는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세요?" 그리고 그녀가 답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또 하나 개인적으로 '그냥'한다고 하면 생각나는 광고가 있다. 당시에는 나름 유행어 비스므리하게 많이들 따라 했던 것도 같은데, 우리 동네만 그랬는지 전국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90년대 노심초사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대한민국을 뒤흔든 엠씨스퀘어라는 상품이 있었다. 집중력을 높여줘서 공부도 더 잘하고 잠도 15분만 자면 개운해지는 사기스런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계였는데, 그때 나온 광고에도 같은 대사가 나온다. 교실에서 한 친구가 전교 1등으로 보이는 친구에게 묻는다. "야. 너는 어떻게 공부하냐?"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
역시 무언가 잘하려면 '그냥'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전편에 말했듯이 어릴 때부터 환경적 유리함을 바탕으로 재능을 인정받고 더 많은 기회를 경험하면서 눈 떠보니 '그냥'하고 있는 경우가 아닌 우리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자.
'그냥'한다는 것은 그 행위가 나의 루틴이 되었다는 뜻이다.
루틴은 일정한 주기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침대 위에서 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고 냉장고로 간다. 찬물을 한잔 마시면 자연스럽게 똥이 마렵다. 큰 일을 길게 보는 편이 아니지만 변기 옆에는 읽을거리가 있다. 그는 반드시 앉아있는 동안 무언가 읽는다. 손을 씻고 젖은 손을 늘 거울에 털어 거울에 얼룩이 진다. 그때 바로 샤워를 하지 않고 커피를 한잔 타서 책상 앞에 앉아 30분 정도 책을 필사하거나 글을 쓰고 씻으러 간다.
월요일 저녁에는 복싱체육관에 간다. 도착하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정수기에 가서 물 한잔을 마신다. 옷을 갈아입을 때는 양말부터 벗고 입을 때는 팬티부터 입는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를 10분 한다. 그다음 거울을 보며 지난주에 배웠던 동작을 15분 반복 수행하고 샌드백을 15분 정도 친다. 마지막은 꼭 스파링을 하는데, 경우에 따라 그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과 해야 할 때도 있고 월등한 사람과 해야 할 때도 있어 늘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이렇게 루틴은 일과에 해당하는 것과 그 일과 중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할 때의 수행과정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 이제 생각해보자.
나의 일과는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설계되어 있는가.
회사를 다니거나 이미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얘기가 좀 쉬워진다. 이미 여러 사람과 팀을 이루고 있고 시스템이 굴러가는 상황에는 나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혹은 돈은 벌어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이 루틴이 되어 돌아갈 확률이 높다. 전날에 밤새 술을 마셨어도 토는 회사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운명이랄까. 하지만 그가 정작 자신의 하루 루틴에 꼭 넣고 싶은 것이 글쓰기라면 완전 다른 얘기다. 그는 글을 써서 돈을 벌지도 못하고, 회사를 다녀오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기 일쑤인 데다가, 누가 글을 안 쓴다고 타박은커녕 눈치도 안 준다. 무엇보다 그는 썩 글 쓰는 재주가 있지도 않고 심지어 쓰는 속도도 어마어마하게 느리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디 가서 작가가 꿈이라고 당당히 얘기할 만큼 나이가 어리지도 않다.
그는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 또는 잘하고 싶은 일을 위한 루틴을 짜 보기로 결심한다.
4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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