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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May 16. 2024

독일 노벨상 115명 vs 한국 노벨상 1명

똑똑하던 한국애들이 결국 평범해지는 과정

고등학교 때 나는 교실 뒤편에 앉아서 소설을 쓰곤 했다. 어깨가 축 쳐진 쟤는 지금 우리 반에서 40등 정도나 하나?  근데 사실 쟤는 바이올린 천재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배울 기회만 있었어도 그의 인생을 달라졌을 것이다. '공부도 못 하는 놈'이라는 타이틀 대신 '바이올린을 엄청 잘하는 애'가 되었을 것이다. 가끔 티비 출연도 하고, 참참이 어디 가서 상도 타오고, 학교 행사만 있으면 학교의 자랑이라고 연주도 시키고 했겠지.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는 한 명 한 명에게 지금의 모습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만한 능력을 주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 이유는 그렇지 못한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했다. 


한국은 왜 잠재력을 죽이는 사회가 되었나 


요즘 인터넷 댓글에, 'XX에서 태어났으면 최소 XX 레젼드' 같은 식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예능 프로에 자주 나와서 어린아이들은 개그맨인 줄 아는 어떤 음악가는 사실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최소 에미넴' 글을 엄청 잘 쓰는지만 먹고살기 위해 잘 팔리는 가벼운 글만 쓰는 그는 사실 '영국에서 태어났으면 최소 해리포터급 작가' 뭐 대충 이런 식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운명 같은 것이다.


   




어릴 때 발표를 시키면 서로 손을 들고 발표하겠다는 아이들이 "저요! 저요!" 하며 아우성을 쳤다. 그렇게 발표를 잘하면 발표왕도 주고 말이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발표의 기회라는 것이 현저하게 줄고 선생님의 판서만 주구장창 베껴 쓰는 시간이 늘어났다. 고등학교 때는 손을 들일도 발표할 일도 없었다. 맨날 문제 풀고 시험 보는 것뿐. 그야말로 교실에서 내 의견을 말하고 질문할 기회가 1초도 없는 학창생활. 


그러다 수능이 끝나면 갑자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고 창의적으로 말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논술'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어릴 때 말 잘하던 애들을 12년 내내 차츰차츰 벙어리로 만들고 이제 와서 의견을 말하라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대입 논술'이라는 것조차 '창의력'과 '자기주장'과는 별개로 테크닉과 거짓 진술만 배우 대학 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어른이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독일애들은 어른 말에 토를 잘 단다. 독일인들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한다. 일단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듣고 필요하면 설득하고 합의한다. 그리고 일정 나이가 되면 아이가 원하는 것이 설사 부모의 시각에서 완전히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허락할 때도 있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가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은 초등학교부터 발표(presentation)를 많이 한다. 글로 준비하기도 하고, 큰 종이에 스스로 교보재를 만들어 준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활동이 한국처럼 점점 줄어가는 것이 아니라 늘어간다는 것이다. 한국 나이로 중학교 고등학교의 나이가 되면 오히려 관심이 있는 분야를 더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이다. 한국처럼 "넌 시험공부나 해! 너가 한가하게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의견을 창의적이고 논리적으로 피력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는 건 이런 게 아닐까. 그 따위 '대입 논술'이 아니라. 




한국도 어릴 때는 세계 대회에서 상을 많이 탄다 수학/과학 경시 대회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내고, 공부뿐 아니라 운동도 그렇다. 연령대가 어릴수록 우리나라는 세계 무대에서 빛이 난다. 그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수는 점차 줄어 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 많던 인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이런 것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지금은 어릴 때 성인이 되기 전에 겪은 사회적 환경에 주목해 보자.


한국의 아이들은 유독 규제가 많다. 자기 집에서 조금만 신나게 놀아도 이웃집에서 난리가 나니 집에서도 마음껏 놀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렇다고 놀이터에 가서 놀 여유도 없다. 키즈 카페나 실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 탁 트인 자유 같은 것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절을 답답한 집과 답답한 놀이터, 그리고 학원에서 보내고 중. 고등학생이 되면 그때는 더 좁은 세계를 산다. 학교와 학원 공부만 존재하는 세상. 그 반짝이는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볼 여유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그리고 일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연습하고 연구하고 발표할 기회가 없는 사회라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 그렇게 창의력은 죽어간다. 




그것이 노벨상이던 예술이던, 운동이던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창의력이고, 창의력은 남도 다를 수 있는 힘이다. 기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노련함 보다 자빠져 잘 때 더 나올 수도 있는 그런 능력말이다. 


독일은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에서 3번째로 많고, 모든 분야를 놓치지 않고 모두 수상했다.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수상한 노벨 평화상 이외는 단 한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115명과 1명의 차이는 도데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 차이를 만드는 결정 요소로 나는 이것을 꼽고 싶다.  


'스스로 기획부터 결과까지 만들어 본 경험이 얼마나 있는가'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 끄집어내서 실행하는 '기획'부터 남들에서 보이는 '완성'까지 주관한다는 것은 주체적인 시작과 끝을 뜻한다. 쉬운 말로 '창작자, 프로듀서, 제작자, 홍보까지 모두 책임지고 끌고 가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이다. 


독일에서는 초등학생들도 주말에 벼룩시장에 나와 자기 물건을 팔다. 학교 내의 행사라는 것도 한국의 기준에서 보면 수준 미달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최대한 많은 부분을 아이들 스스로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있어 보이는 결과물 보다, 허술하기 이를 데 없어도 아이들 스스로가 책임지고 만드는 습관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서 그리고 심지어 그 바쁜(?) 고등학교에서도 각종 행사, 공연, 파티 등등을 스스로 만든다. 스스로 기획하고 투자자도 찾으면서 결국 그 일을 완성시킨다. 물론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그것보다 부족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배우는 창의력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능력은 훗날 그 애송이들을 노벨상 수상자로 만들어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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