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친하진 않았지만 잘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친구도 나도 자주 만나진 못했다.1년에 몇 번, 함께 보는 친구들과 종종 만나는 정도였다.
친구를 만나고 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는 은근히 자기 자랑을 했고 대화를 독점하려 했다. 자신의 말이 다 옳았고... 이상했던 건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에 대한 존중감도 없었다. 어릴 때는 서로 심한 농담도 하고 짓궂은 이야기도 했지만 그게 이상하진 않았다.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 한 거니까. 하지만 이제 중년이다. 그리고 자주 만나지 않았던 사이 아닌가. 그럼.... 지나온 세월에 대해 누가 누굴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세월이 많이 지났고 각자가 처한 상황도 다르다. 무엇보다 우린 예전의 대학생이 아니다.
예전 기억속의 친구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친구라면 지금의 모습도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난 그게 맞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널 아는데...."이런 말은 무례하게 들린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강산이 두번은 변한 것 같다. 서로의 인생을 이해할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밀도있는 사이도 아니고.. 20년 넘게 같이 산 와이프도 날 완전히는 모르겠다는데 드문드문 본 그 친구가 날 얼마나 알고 있을까.
씁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 돈도 많이 벌고 있다는 것(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부자들을 만난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을 참아왔다가 터뜨리듯 보여주고 가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씁쓸했다. 친구들에게 인정 받고 싶었던 걸까?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 친구들 앞에서까지 우월감을 보일 일이 뭐가 있을까? 대학 때부터 자기중심적이었던 친구였지만 그래도 그때가 나았던 것 같다. 순수했던 때니까.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친구로 대했을 것이다. 뭐라 할까.... 그는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를 받아 줄 사람은 없다. 그를 순수하게 받아주고 정신적 땔감이 되어줄 사람은 없다.
그를 손절했다.
해가 되거나 누군가 희생양이 되어야하는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려 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만나왔던 친구라도 말이다.
그는 친구가 아니라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클래스메이트였던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난 손절을 하고 난 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가끔이었지만 그 친구를 만나는 게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내린 오래된 친구의 정의는 이렇다.
- 과거와 현재, 세월의 차이를 인정한다.
- 서로를 배려한다.
- 오래된 친구라고 꼭 막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중년의 나이까지 성숙해지지 않았다면 그냥 그 사람 자체가 그랬던 것이다.
-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나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나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것이라면 그건 친구가 아니다(정신적 땔감이 필요한 것)
이제는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몇 명 남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와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니. 그런 모습을 지금이라도 보여준 그가 고맙기까지 하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손절해도 타격감이 없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