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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준열 Jun 23. 2024

그래, 클래스메이트였을 뿐 친구는 아니었던 거지

대학시절 아주 친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친구도 나도 자주 만나진 못했다.1년에 몇 번, 함께 보는 친구들과 종종 만나는 정도였다.


이상하게 그 친구를 만나고 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는 만나면 은근히 자기 자랑을 했고 대화를 독점하려 했다. 자신의 말이 다 옳았고... 참 이상했던 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 대한 존중감도 없었다. 어릴 때는 서로 심한 농담도 하고 짓궂은 이야기도 했지만 그게 이상하진 않았다. 서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려 한 거니까. 하지만 이제 중년이다. 그리고 자주 만나지도 않았던 사이 아닌가. 그럼.... 지나온 세월에 대해 누가 누굴 어떻게 규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모두 예전 대학생활 때 보던 친구들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고 또 서로 다른 경험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를 것이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이해하고 예전의 친구가 아니라 지금의 친구로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도 그게 맞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널 아는데...."이런 말은 참 무례하게 들린다.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벌써 강산이 몇번 변한건가. 대학을 졸업한지 28년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서로의 인생을 이해할 만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밀도있는 사이도 아니고...그가 나에 대해 알고있는 건 대학생 때의 모습. 20년 넘게 같이 산 와이프도 날 완전히는 모르겠다는데...ㅎㅎ


씁쓸하기도 했고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찌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뭔가 우월감을 가질 대상이 필요했던 걸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는  자랑하거나 자신감을 보일 수 없었던 걸까? 아무튼 추측이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누구나 사는 게 거기서 거기지만 아무튼...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것, 돈도 많이 벌고 있다는 것(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라는 것.... 뭐 이런 것들을 마치 참아왔다가 한 번에 터뜨리듯이 폭풍처럼 보여주고 가는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참 씁쓸하다.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친구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아닐까?


뭐가 그리도 힘들었을까. 친구들 앞에서까지 우월감을 보일 일이 뭐가 있을까?

대학 때부터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함이 있었던 친구였지만 그래도 차라리 그때가 나았던 것 같다. 서로 순수했던 때니까.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했다면 그냥 친구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뭐라 할까.... 그는 찌든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를 받아 줄 사람은 없다. 아무리 친구라도 이제 중년의 나이에 그런 그를 순수하게 받아주고 참아주고 정신적 땔감이 되어줄 사람은 없다.


나는 여지없이 그를 손절했다.

앞으로 만나는 사람이 더 적어질지 모르겠지만, 서로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해가 되거나 누군가 희생양이 되는 그런 관계는 단호히 잘라내려 한다. 그 아무리 오랜 시간 만나왔던 친구라도 말이다.


그는 친구가 아니라 예전에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그냥 클래스메이트였던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손절을 하고 난 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나도 정말 가끔이었지만 그 친구를 만나는 게 달갑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그만큼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내린 오래된 친구의 정의는 이렇다.

친구는

- 어릴 때와 지금, 세월의 차이를 인정한다. 그래서 세월의 흔적 까지도 인정하고 응원한다.

- 서로를 배려한다.

-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얼마든지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된 친구라고 꼭 막 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설령 자신이 정말 성공했어도 겸손하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그게 그 사람의 성숙도 아닐까 한다.

- 중년의 나이를 먹어서까지 성숙해지지 않았다면 그냥 그 사람 자체가 그랬던 것이다.

- 친구를 보고 싶은 이유가 단순히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나 우월성을 보여줌으로써 나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것이라면 그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우월감은 그냥 그 사람의 생각이고...아무튼 정신적 땔감이 필요한 것)

  

이제는 진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 몇 명 남지 않았지만... 뭐 괜찮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와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극명하게 드러나게 되니, 그런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 그가 고맙기까지 하다.

손절하는 결정적 순간을 주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냥 클래스메이트였던 거지 친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보내주는 마당에 가급적이면 축복을 해 줘야겠다. 건강하고~행복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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