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tilda Oct 12. 2023

무제

집에 겨우 도착했다. 다리가 계속 아프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른쪽 발이 굉장히 아프다.

두 종아리도 항상 아프다. 너무 걸어서 그런것 같다.

아침에 치마 하나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결국 5분 늦었다. 나는 시간강박이 있는 편이라, 지각을 왠만하면 하는 일이 없는데 어쨌든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기분이 영 별로였다.

꿋꿋이 8시부터 9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일을 했다. 그런데 9시 반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이 하락세를 탔다.

머리가 아팠고 토가 쏠렸다. 어제 먹은 술 때문이라고 하기엔 오늘 아침 출근길부터 출근 후 1시간 동안은 멀쩡했다는게 의문이다. 게다가 이 정도의 증상이 나올 정도면 보통 아침 출근 때 커피를 못 마신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매머드커피 아아를 싹 비운 상태였다. 하여간 나는 10여분간 고민 끝에 오후반차를 썼고 12시 10분인가에 나왔다. 솔직히 더 일찍 나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날씨가 무지 좋고 점심시간을 즐기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다들 나름 괜찮은 삶을 영위하는 표정이다. 나만 빼고.


사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다. 물론 지금 컨디션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 빼곤 아무것도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는게 불행할 수 있을까? 어제도 불행해서 술을 마셨다.

지하철을 타기 싫었는데 고민 끝에 시켜둔 참치회덮밥 도착 전에 집에 가려면 어쩔수가 없이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내리는 데 문 앞에서 꾸역꾸역 길을 막고 있는 할아버지가 시비를 털길래 아무 말도 하지않고 내 갈 길을 갔다. 이런 날 괜히 잘못하다간 큰 일 낸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집에 와서 밥을 우걱우걱 먹었다. 사실 오늘 회사돈으로 3만원짜리 밥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9명 정도가 모여서, 친하지도 않은데 이 얘기 저 얘기하면서 밥을 먹을 예정이었다. 나는 요새 극도로 여러사람이랑 밥먹는게 더 싫어진 상태다. 그래서 주로 혼자 먹거나 1:1로만 먹는다. 결론적으로 난 이 무의미한 3만원짜리 단체 점심 약속을 회피했고 집에 와서 혼자 참치회덮밥 15000원짜리를 먹었다. 솔직히 큰 만족감은 없다. 그냥 먹었다. 배가 고팠으니까.


평일 아침에 항상 먹고 가던 해인감비환을 오늘 안먹었더니 굉장히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픈게 아니라 아픈 정도였다. 아침에 분명히 고구마 1개에 그릭요거트를 먹었지만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솔직히 집에도 겨우왔다. 내 앞 길을 막아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피해서 겨우 집에 온 것이다.

집은 개판이다. 지저분하다. 이 시간에 나 혼자 집에 있는게 너무 오랜만이다.


유튜브에서 결혼을 했는데 1년 새 3번이나 회사를 때려친 남자를 봤다. 내성적이고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것처럼 본인을 표현하더라. 그 사람은 와이프가 격려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선 남자가 정신이 빠진 것으로 밖엔 안 보였다. 이런 내가 그런 영상을 보는 이유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반,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서 반이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태도가 되버릴 것 같은 날이라 사무실에서 도망쳤다.

어제 로봇처럼 일만 해서 남편말대로 내 몸이 놀란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덥다. 가을인데, 반팔 블라우스에 쟈켓을 걸쳤는데 왜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오후반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