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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Oct 26. 2023

네, 또 퇴사했습니다

드디어 마무리 됐고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서대문역으로 저벅저벅 걸어가서 버스를 탔고 옆에 할아버지가 내 허벅지를 콕 지르며 뭘 묻는데 아무것도 안 들린다. 나는 전신의 모든 힘을 다 써버렸다.


이번이 몇번째일까? 하여간 이번엔 모든 임원들에게 인사를 했고 각 실 실장들한테도 인사를 하고 나왔다. 몇몇 못한 분들을 기다리라길래 그건 좀 정말 아니다 싶었고 그냥 메신저 따로 남기겠다고 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왔다. 끔찍했던 7개월이다.


점심엔 친했던 다른 부서 대리님이랑 밥을 먹었고 맥주도 한 잔했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생리를 시작했다. 솔직히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임신을 바라지 않고 있다. 이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기 위해서 임신을 할 생각을 했다. 출산 휴가 들어가면 되니까. 그러나 퇴사할때까지 끝끝내 임신은 안됐고 퇴사 통보하고 나니 걱정이 됐다. 생리 안 하면 어쩌지? 그런데 시작했다. 출근 마지막 일에. 참 신기한 타이밍이다.


어쨌든 집에 와서 땀 범벅이 된 쟈켓을 벗어던졌고 샤워를 했고 이 글을 쓴다. 생리통때문에 배가 너무 아프다. 약을 먹었지만 아직 약발이 안 든다. 드디어 탈출이다. 정말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사다니겠다고 임신을 해버렸으면 더 불행했을 것 같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무슨 죄인가.


집에 오는 길에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타들어갔다. 오늘도 여의도공원에서 집까지 걸어왔다. 고작 7개월이었는데 악몽과도 같은 매월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매일 집에 올때 맥주 4캔을 사들고 들어왔고 주말에는 와인까지 함께 마셨고 아주 자주 남편과 싸우거나 애꿎은 엄마에게 성질을 냈다. 아주 자주 내 몸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가 남았다. 


오늘 아침에 남편은 이제 아침도 니가 차려먹으라고 하고 용돈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그런데 오늘 회사 건물 밖으로 탈출하자마자 모든게 끝났다고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1달간은 아무것도 하기싫은 건 하지말라고 했다. 영화를 보든 혼자 쏘다니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싫어하는것은 억지로 하지말라고 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앞으로에 대해 생각할 참이다. 지독했던 10월이다. 이 한 달간이 너무 지독해서 나는 수많은 밤을 잠도 못잤다. 이제 잘 잘 수 있을까. 잘 자고싶다.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도 더 이상 안 봐도 된다. 임신하기 싫으면서 억지로 회사를 걸쳐두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정말 애석하게도 단 한번도 회사에서 나를 밀어주고 옹호해주는 상사를 만나본 적이 없다. 특히 여자 상사의 경우 어떻게든 내 실수를 두드러지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어떻게든 갖은 수를 써서 괴롭게 했다. 남자 상사들은 주로 방관자의 역할을 했다.


이 회사에서 어떤 이는 든든한 임원 후원자가 있어 그 사람이 회사 관련 조언도 해주더라.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 입장에선 씁쓸했다. 나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해 내가 혼자 해내야만했고 기댈 곳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언젠간 회사에서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드디어 내일부턴 그 회사에 안 가도 된다. 

나는 그 동안은 합격율이 참 좋았던 사람이다. 친한 오빠가 너는 어떻게 그렇게 나오면 또 들어가고를 잘하냐고 묻더라. 그런데 나는 그만큼 탈출도 잦다. 그래서 좋은건지도 모르겠다. 벌써 4시가 다 되어간다. 오늘도 얼마나 애를 쓰며 버텼는지 모르겠다. 가고 싶었다. 집으로. 


너무 쉬고싶다. 배도 아프고 그냥 쉬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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