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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ilda Oct 31. 2023

솔직한 이야기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오후 2시 30분. 노트북을 켰다. 아마도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흐른 듯 하다.

계속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맥주 한 캔을 깠다. 흑맥주를 골랐다. 잘 안먹는 흑맥주인데 오늘은 그게 땡긴다.

천천히 마실 생각이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 이 시간을 누릴 참이다. 크리스마스 재즈 플리를 틀었다. 곧 크리스마스다. 이 맘때 백수였던 적이 2-3번 정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2번은 곁에 아무도 없었다. 혼자였다. 기독교도가 아닌 나에게 이상하게도 크리스마스는 의미가 컸다. 


우리집 어느 누구도 크리스마스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그 누구도 교회에 안 갔기 때문에 어찌보면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난 언제부턴가 한국 드라마, 한국 영화는 절대 안 보고 줄곧 미국 드라마만 봤기 때문에 그곳에 나오는 크리스마스 풍경을 좋아했던 것 같다. 아빠가 말하는 '이상한' 외국 드라마, 영화 속에 크리스마스는 예뻤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이지만 눈이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스해 보였다.


근래 특히 자주 듣는 음악이 재즈인데 크리스마스 테마와 만나면 나에겐 최고의 음악이 된다. 

사실 올해 음악을 즐겨 듣진 않았다. 주로 아침 출근길에 들었던 게 다인데 그마저도 마지막엔 철학 또는 자기계발 영상에 밀려 잘 듣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물론 같이 보낼 사람은 정해져있지만.


코로나19로 밀리고 밀려 12월 20일에 우리 부부는 결혼했다. 그래서 12월의 의미가 나에겐 더욱 각별하다. 본래부터 미드 '프렌즈'의 피비처럼 눈 오는 겨울에 결혼하고 싶던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난 눈이 좋다. 미네소타에서 살았던 그 짧은 기억이 나에겐 언제나 이데아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어쩌면 눈 때문일 것이다. 눈 오는 겨울 날 누군가와 함께 커피를 하나 들고 자전거를 끌고 가던 기억. 이젠 하도 예전일이 되어서 내 기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을 빌려온 듯한 기억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땐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불안했을 것이다. 승진을 바랐고 좋은 평가를 바랐다. 12월이 빨리 끝나서 모든게 정리된 1월을 맞이하길 바랐던 기억이다. 물론 이 모든게 사실일지는 모르겠다. 그 무렵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기 때문이다. 다 지워버린 걸까.


흑맥주는 역시 진하다. 나는 필스너, IPA를 좋아하는 편인데 흑맥주는 흑맥주만의 매력이 분명 있다.


퇴직정산을 해서 연락을 준다던 회사에서는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다. 

내가 지원해둔, 그리고 지원하고 있는 회사들은 아무리 빨라도 이번주 끝자락이나 다음주에나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 10월의 끝에 나는 하릴없이 숨을 쉰다. 숨을 쉬고 내뱉는다. 


할로윈과 단풍의 계절에 나는 크리스마스 재즈를 듣고 있다. 빨리 겨울이 오길 바라나보다.

올해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남은 두어달 동안 무언가 행복한 소식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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