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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by Minnesota


11시에 시작된 미팅이 12시 15분에 종료됐다.

권기수 작가 작품을 마곡에 설치해야 하는데 전 담당자가 갤러리에 작품을 맡겨두고 언제쯤 찾으러가겠단 말도 없이 방치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노암 대표님을 처음 뵜는데 말씀도 잘 하시고 확실히 감각적이시다.

전시기획 업무를 하니까 드디어 이렇게 그림, 예술, 전시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너무 신기하다.

내가 예술경영학 석사 전공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반가워하시고 다른 팀장님 한분이 현재 박사과정 중이라고 하시길래 내가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걸 보셨는지 나보고도 빨리 박사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나는 박사를 2군데에서 했는데 아직 끝마치지 못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중 한 곳이 한양대였다. 내가 최근에 방향을 선회하여 컨택하고 2명의 교수님께 메일을 회신 받은 곳이 바로 한양대였다. 중대 출신 내 선배들이 한양대에서 박사를 많이 한다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역시 세상 참 좁다 싶었다.


하여간 작품 전시를 마치고 하반기 전시 기획 이야기까지 짤막하게 논의한 후,

나는 식당 끝났을까 부랴부랴 가서 밥을 먹고 오늘의 3번째 커피를 사서 혼자 걸었다.

너무 뜨거운 햇빛이라 잠깐 벤치에 앉아만 있었는데 머리가 핑글 돌았다.

지난주인지 지지난주인지 그 똑같은 장소에서 굉장히 큰 풀무치가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오늘 가보니 없었다. 더워서 도망간걸까.


그 길목에 대형 버스 한대가 세워져있는데, 버스 밑에 칸에 들어가 웅크리고 누워있는 버스기사 1분을 보았다. 아마도 버스기사일 것이다. 아주 왜소한 체격에 깡마른 듯해 보였다. 웅크린 등이 가뜩이나 왜소해보이는 몸을 더 앙상하게 보이게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고자 했을 것이다. 핸드폰을 하나 두고 옆으로 누워서 그 좁은 공간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하는 그 분을 보면서 다들 참 사는게 팍팍하다 싶었다.


나 또한 여유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1~2주에 한번씩 음성을 가는데 오고가고 하는데 대략 4시간 반 정도 소요될 것이다. 그렇게 다녀오고나면 기진맥진한다. 배달을 먹거나 술을 먹거나 둘 중 하나를 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음성을 다녀오지 않아도 본사 출근을 하더라도 힘든건 매한가지.

만원 버스 피하려고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헬스장에 가면 여자들과 자리 싸움을 벌여야 한다. 매일 전쟁같이 아침을 시작해서 마무리도 만원 버스로 한다. DDP에서 내려서 내일 마실 커피를 하나 사들고 창신동 높은 언덕을 올라가면 겨우겨우 집에 도착한다.


남편의 얼굴은 거의 쳐다볼 시간도 없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샤워하고 집 정리하고 무언가 해야할것들을 찾아 하느라 바쁘다. 남편은 나보다 더 하다. 남편은 항상 설거지를 하고 항상 개 응가를 치우고 개 산책을 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사는데 게다가 날씨는 너무 뜨겁거나 너무 습하거나 둘 중 하나인 나날이다.

새우등처럼 구부정하게 옆으로 뉘인 버스 기사 아저씨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게 다 비슷한게 아닐까 싶었다.


하여간 잠깐 혼자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오후의 일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가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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