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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y Minnesota Feb 16. 2025

회복중이다.

정확히는 금요일밤부터 회복중인 것으로 보인다.

솟구치는 화는 다소 잠잠해졌으며 여전히 나는 잘 먹고 잘 잔다.

너무 잘 먹어서, 너무 잘 자서 사실상 나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2월 중순까지 나는 참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하고싶어서 난리를 치던 박사 학위에 들어가기 위해 등록금을 내는데 돈이 너무 비싸서 울고,

일할때 상사와 맞지 않아서 울고, 내가 사는 집이 너무 허접스러워서 울고.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나보다는 덜 울면서 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 어제는 처음보는 미용사 분이 앉으라고 한 의자에 앉아서 별 얘기도 아닌 말을 하자마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자더라도 문제는 심각한 것 같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오랜만에 내 얼굴을 마주했다. 전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얼굴이다.


지금도 강연을 하는 김창옥 선생님의 강연을 틀어놓고 이 글을 쓴다.

이 분도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임에도 자신의 고민은 해결을 못해 우울증 약을 드시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긴밀한 공통점을 느끼진 않는다. 그냥 사람 사는게 다 힘들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일 뿐이다.


눈물이 시도때도 없이 난다는게 사실 30대 중반 사회생활 하는 여성에게는 꽤 큰 문제다.

감정을 숨키려고 왠만하면 사람과 대면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회사에서는 딱히 대면해서 이야기할 일이 회의 시간을 제외하곤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선 주어진 과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눈물이 터질 일이 극히 드물다.


아침에 강아지가 문을 열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래서 깼다.

남편은 일찌감치 농구를 하러 떠난 상태다. 9시경에 완전히 잠에서 깼고 나는 무엇을할까 생각하다가 카레를 끓였다. 오랜만에 카레를 만들었는데 대략 6인분 정도 만들어뒀다.


우리집은 양을 많이 만들어둬도 금방 동이 난다. 어제도 남편이 끓인 김치찌개를 하루에 2번 같이 먹고나니 이젠 한사람이 먹으면 끝날 정도만 남아 있다. 카레도 아마 우리 둘이 먹다보면 금방 끝날 것이다.


요리를 한 동안 하기 힘들었다.

우울감이 짙어지면서 나는 요리에 손을 뗐다. 정말 먹을게 없고 배달로 무언가 시켜먹고 싶지 않을때만 반찬을 해뒀다. 그것조차도 일주일에 1회 할까말까다. 그게 바로 일요일이다. 일요일은 완전한 휴식 시간이 아니고, 이미 1/2 정도 충전된 상태에서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한 주를 맞이하기 위핸 재정비 시간이다.

그래서 다음주부터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나 자신의 정신을 매만지게 된다.


벌써 2월의 보름이 지나버렸다.

2025년의 1/6이 끝나간다. 내가 한 것은 정신을 부여잡고 살아나가는 것만 한 것 같다.

많이 힘들면 힘들어하고 괜찮아지면 한숨 돌리는 것을 반복했다.


봄 냄새가 물씬 나기 시작했다.

좀 아쉽다. 나는 겨울이 좋다. 벌써 겨울이 끝나는건가하고 두려워진다.

겨울이 끝나면 금방 여름이다. 여름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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