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s Toy Workshop
소박하게 커피를 즐기면서 알게 된 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라인더에 투자하라 였어요.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맷돌에 갈아먹을 거 아니면 그라인더는 중요합니다. (누군가 정말로 맷돌에 갈았는데 맛없다고 합니다.)
나중에 커서 부자가 되면 좋은 그라인더를 사기로 하고 지금 당장 지갑님이 허락하신 가장 저렴한 그라인더가 엔코사의 바라짜 그라인더였어요. 가격이 나름 저렴한 만큼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다양한 평가를 받는 제품입니다. 저에게는 사용할 때마다 분쇄도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빼면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부자가 될 때까지는 말이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그라인더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커피를 분쇄하고 남은 가루가 내부에 얼마간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모든 그라인더가 마찬가지일 테지요. 한 번은 넣은 커피 무게와 나온 커피 무게를 재 보았는데 동일하더라고요. 그 후 남은 커피 따위 무시하며 살기로 했었거든요.
하지만 무시하기 찜찜한 사실은 두 잔을 추출하면 첫 잔보다 둘째 잔이 더 맛있다는 거였어요. 거기에는 두 잔째의 포타 필터 온도도 영향이 있었을 테고 첫 잔을 뽑으면서 압력을 보고 분쇄도를 다시 조정하기 때문일 테죠. 그래도 계속해서 내부에 남은 커피가루가 마음속 깊은 곳에 버섯처럼 몽실몽실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불안함은 어쩌면 인터넷에서 이런 물건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coffee_blowup/products/5567116198?
엔코 커피 그라인더에 끼우는 액세서리입니다. 저 위로 커피콩을 넣고 누르면 압축공기가 남은 커피 가루를 아래로 내려준다고 해요. 다른 고급 커피 그라인더도 저런 블로워가 달린 제품도 있으니 '어머! 이건 꼭 사야 해!'라며 지름신이 찬란한 후광과 함께 강림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아무리 신이 강림한들 숭배할 지갑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지난번 드론에 가산을 탕진했거든요.
https://brunch.co.kr/@matthewmin/258
드론으로 탕진한 궁핍함과 왜 오늘 마신 커피에서 어제 커피 맛이 나는가 하는 갈등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무슨 일이든 해야 했습니다. 사실 판매하는 제품도 금형으로 만든 게 아닌 3D 프린터로 출력한 제품입니다. 최근에는 3D 프린터도 품질이 좋아져 소량 생산 제품 중에는 3D 프린터로 출력한 제품도 많습니다.
사이트의 사진을 보고 역설계도 가능하겠다 싶었지만 말랑한 재질이 없어 당장 만들어 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름신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그라인더 크기를 참고해서 그린 새로운 뚜껑입니다. 위에서 아래까지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큰 덩어리라도 이렇게 속을 비워 만들 테니 무겁지 않아요. 진짜 제품에서는 쉽게 만들 수 없는 3D 프린터만 쉬운 구조지요.
만드는 건 3D 프린터에게 맞기고 저는 밀린 넷플릭스를 보고 게임을 한 다음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워낙 간단한 구조라 떼어내서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희어멀건한 색깔이 커피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커피 물을 들여볼까 생각했습니다. 지난번 3D 프린터로 만든 물건 중에 커피가루에 얼룩이 든 걸 본 적 있었거든요. 짜고 남은 커피 가루 속에 만든 뚜껑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꺼내서는 잘 닦아냅니다. 원하는 색으로 물들지는 않았지만 3D 프린터의 거친 층 사이로 커피 가루가 들어가 나름 자연스러운 무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더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잠시 더 더러운걸 본 다음 다시 보면 됩니다. 무늬 맞습니다.
공기를 불어주어야 하니까 그라인더 통과 맞붙는 부분은 바람이 새지 않도록 스펀지 테이프를 붙여줍니다.
뚜껑 위에 꼭지로 바람이 들어갑니다.
바람은 카메라 렌즈 청소할 때 사용하는 블로워를 사용합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10번도 사용하지 않은 오래된 새 제품이죠. 카메라에 먼지가 있으면 이걸 찾는 대신 입으로 그냥 불어 버렸거든요. 렌즈에 튄 침은 손가락으로 쓱 문질러 주면 됩니다.... 갑자기 왜 내가 찍은 사진은 항상 그 모양일까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그라인더에 블로워 뚜껑을 덮고 몇 번 힘차게 눌러줍니다.
아앗!!! 분명히 아무것도 없어야 할 그라인더에서 이만큼의 커피가루가 더 생산되었습니다. 방금 마신 커피에서 느낀 어제 먹은 커피 맛의 정체인가 봅니다.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한점의 의문이 푸슉 푸슉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갔습니다. 더는 어제의 커피를 오늘의 커피에서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어쩐지 어제 커피가 더 맛있었다는 느낌도 들지만 이제 오늘의 커피는 오늘의 맛입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세요 : 3D 프린터 (미래의 과학자와 공학자가 꼭 알아야 할)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55944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