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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Nov 18. 2020

덕수궁의 가을

난 아직 여름

가을의 덕수궁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모습으로 

계절을 다하고 있는데,

널 향한 내 마음은 여전히 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넌 이미 아주 오래전에 겨울로 가 

우리에게 다시 봄이 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사계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었다. 어떤 것도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진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계절. 하지만 봄도 가을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걷기 좋은 계절이라는 것. 예쁜 것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다는 것. 그것들을 만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 봄에는 꽃들이,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들이 걷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데 아주 충분한 역할을 해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옆에 누군가 없다고 하더라도 걸을만하다. 그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생각을 정리하며 걷는 것도 꽤 근사하다고 생각하니까. 


사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가을은 쓸쓸하거나 아쉽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온전히 그 사람에게 집중을 하는 탓인지, 사실 계절을 몰랐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사람이 옆에 남아있지 않아서 지금 이 계절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온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 

사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거 같다. 그 사람이 내게 남긴 잔향을 가지고 가을을 보고 있는 거니까. 걷는 내내 머릿속엔 그 사람이 가득 차있으니까. 솔직한 말로 아직 안 괜찮은 것 같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려고 했었고, 파혼을 하기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사람과 헤어진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보다 긴 시간을 지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람이 남아있는 걸 보니 나도 참 기가 막힌다. 이랬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새 단장한 마음에 들어올 누군가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그럴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말이다.


예쁜 계절이 지나가려 하고 있다. 1년 중 가장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는 순식간에 져버리는. 돌아보면 가장 짧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질 것을 알기에 더 화려 해지는 거겠지. 이렇게 또 가을이 지나고, 다시 추운 겨울이 오겠지. 알록달록한 세상이 지고, 하얀 세상이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과 함께일 땐, 그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찼었으니까. 아마도 추위를 그 사람의 온기가 이겼으니 그랬겠지. 이제는 춥기만 한 겨울일 테니. 살짝 걱정이 되곤 한다. 많이 약해진 몸과 마음을 가지고, 나는 어떻게 이 겨울을 나야 할까. 따뜻하게 잡아주던 손 역시 이미 놓아졌고, 곁에서 온기를 주던 그 사람은 사라져 버렸는데. 

어디서 온기를 채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참 이야기하는 내내 생각이 드는 건데, 모순덩어리다.

그냥 그 사람이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나 길게 하고 있다는 게 우습다.

핑계가 참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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