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춘자 씨가 사는 그 집
사우스캐롤라이나에는 산이 없다. 그래서 단풍을 보기 최적의 장소는 아니다. 하지만 두세 시간만 운전해서 노스캐롤라이나에 가게 된다면 그 유명한 애팔래치아 산맥을 만날 수 있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블루릿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서쪽 대부분을 덮고 있을 만큼 거대하다. 조지아에서 펜실베이니아까지 이어지는 이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애슈빌(Asheville)이란 도시 근처에 있는데, 바로 미첼 산(Mount Mitchell)이다. 이곳의 높이는 약 2km(6,684피트)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는 지난해 11월, 지인의 추천으로 이 산을 처음 방문했다. 이 산의 장점을 꼽자면, 차를 타고 봉우리가 있는 꼭대기까지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 단풍을 보기 위해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차를 타고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이 우리를 맞이한다.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더 멀리까지, 산 전체가 단풍에 물든 모습을 볼 수 있다. 탁 트인 산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는 도로 옆에 작은 공터를 만들어 놓아 차를 잠시 주차하고 그 멋진 광경을 눈에 더 오래 담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날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마주했다. 산 꼭대기에 숨겨진 몽환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높이,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작은 터널을 몇 개 지나게 된다. 터널을 지나면 단풍이 가득한 가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갑자기 겨울왕국이 펼쳐졌다. 고도가 높아지며 온도가 낮아진 탓에 나뭇가지 위에는 눈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지나는 듯, 뿌연 안개가 자욱해 더욱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꽃에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단풍과 눈꽃을 모두 지닌 산이라니. 우리가 지금 가을여행을 온 건지 겨울여행을 온 건지 헷갈렸다. 날씨 또한 예상보다 추웠다. 단풍과 사진을 찍으면 어울릴 만한 얇은 재킷을 꺼내 입고 간 탓에 산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차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바람까지 더해져 참을 수 있을 만한 추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더 일찍 단풍 구경을 가기로 했다. 10월 어느 주말,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이르게 방문한 탓인지 단풍이 완전히 숲을 덮고 있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보았던 특별한 광경은 없었다. 대신 오랜만에 산에 올라서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산에 올라 그런지, 어디에나 산이 있는 한국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풍경이 꼭 한국의 산에 올라 내려다보는 전망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 온 지 14개월쯤 되어가는 요즘, 나는 매일 꿈에서 광화문과 삼청동 거리를 걷고 신촌과 종각 일대를 누빈다. 일주일 내내 연속으로 엄마 아빠가 꿈에 나오고, 남편과 식당에 가서 낙지볶음을 먹으며 연신 매워하는 이상한 꿈을 꾼다. 한국의 많은 것들이 그리워질 시기인가 보다.
이번 단풍 구경으로 확실해진 게 있다. 단풍은 역시 한국 단풍이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이맘때면 엄마와 할머니와 자주 가던 곳이 있다. 바로 포천에 있는 ‘청성공원’이다. 이곳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와 자주 방문하던 집 근처의 시민공원이다. 이 공원은 반월산이라는 작은 산을 끼고 형성돼 있는데 포천에 있는 학교 교가에도 등장할 정도로 포천에서는 익숙한 산이다.
새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 1월 1일 해돋이도 이곳에서 봤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이 동산 같은 작은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새벽부터 하나 둘 모이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그곳에 있는 작은 공터를 모두 차지했다. 모두 한 마음으로 해가 뜨기 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일출시간이 되자, 붉고 커다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출을 꼽으라면 이때가 생각이 난다. 그만큼 강렬했던 2000년 새해의 태양이었다.
청성공원은 특히 철쭉이 피는 봄과 단풍이 드는 가을이 아름답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내내 봄이면 단체로 이곳에 와서 소풍을 즐기거나, ‘반월문화제’라는 행사가 열려 참가하곤 했다. 반월문화제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글짓기나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등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날 완성한 작품을 제출하면 우수 작품을 선발해 상을 주기도 했다. 날씨도 좋고 꽃도 활짝 피어 영감이 받기 좋은 날을 기가 막히게 뽑아 매년 시행됐다. 나는 초등학교 때 청성공원에 있는 ‘행운의 종’ 사진으로 시장에게 직접 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나는 우리 할머니의 자랑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찍은 사진을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보여주시곤 “우리 손녀딸이 이걸로 시장한테 상 받았잖아”하며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으시는 걸 즐기셨다.
가을엔 엄마와 할머니와 청성공원에 산책을 자주 갔다. 어쩜 단풍이 그렇게 생생하게 물들었는지 한 때는 매년 가을, 은행잎과 단풍잎을 따다가 공책에 넣고서 말리며 몇 년 간 모은 적도 있다. 가을에만 잠깐 보여주는 이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췌장암 진단을 받은 그해 가을에도 엄마와 할머니는 청성공원으로 단풍을 보러 갔다. 그때 나는 한창 학교일로 바쁘던 터라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엄마가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들로 할머니와 단풍이 함께 담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와의 그 순간을 담고 싶었나 보다. 동영상을 촬영하며 엄마는 할머니에게 손녀, 손자들한테 한 말씀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핸드폰 카메라를 향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타지에서도 건강히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병마와 싸우며 잔뜩 여윈 할머니의 모습은 나를 애타게 했다. 선명하게 물든 나뭇잎들과 대조되어 할머니의 모습은 참으로 어두워 보였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눈빛과 잿빛의 얼굴, 입은 웃고 있지만 얼굴엔 근심이 한가득 있는 표정까지. 내게 남은 가을 속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조금은 씁쓸하다. 그래도 이렇게 사진과 동영상으로라도 그해 가을 할머니의 모습을 내 눈에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이렇게 나의 기억 속에서는 할머니와 행복했던 기억과 슬픈 기억이 함께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