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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별 Dec 18. 2023

엄마가 된다는 것

겪기 전에 절대 알 수 없는 것

나는 임신이 어렵지도 않았고 또 간절하지도 않았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임신해서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되는 거겠지. 정말 단순한 생각, 이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진짜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방황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리 간단치도 그냥 되는 것도 아닌 아주 고차원적인 문제였다. 여기서 고차원적인 문제라 함은 아주아주 깊게 파고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라는 뜻이다. 우선, 엄마라는 존재는 늘 내 옆에 있었는데 정작 엄마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당연히 있는 존재. 나한테 엄마는 그랬다.


 엄마가 되고 나니 하나에서 열까지 내 일이 아닌 것들이 없었다. 아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심지어 똥 싼 거 치우고 트림시키고… 아이라는 존재는 정말이지 뭐 한 가지를 스스로 하는 게 없어서 나는 일일이 오만가지를 내 손을 거쳐 해결해야 했다. 이건 정말 고단한 일이다. 내가 태어나서 해 본 알바, 직장, 연애, 여행… 모든 경험치를 통틀어 이만큼 힘들고 고단한 일은 없었다. 일단 출퇴근이라는 게 없다. 아이가 울면 나는 자다가도 일어나서 화장실에 있다가도 밥을 먹는 순간에도 달려가야 한다. 아이가 잠들면 비로소 내가 쉴 수 있는데 정말 그 순간이 짧다. 온갖 집안일은 눈 감고 모른 척한다 그래도 씻고 끼니 때우고 조금만 한숨 돌려도 그 순간은 끝난다. 이게 하루 종일, 365일 계속 반복된다. 끝이 없다. 알바나 일은 퇴근하면 집에 돌아가 쉴 수 있지 않은가. 하물며 여행도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쉰다. 연애도 데이트가 끝나면 집에 가고. 엄마는 갈 데가 없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푹 쉴 수 있는 공간인 집이 일 터이니 그 안에서 잠깐의 휴식만이 숨 돌릴 순간일 뿐.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 없다. 그러기에 아이는 너무 연약하고 여리다. 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그런데 엄마가 된 순간 이건 다시는 절대 무를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문득 엄청나게 실감되면서 ‘아…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엄마인 거구나.’ 부담감이 산처럼 다가왔다.


그 중압감은 몸의 피곤함 보다 나를 더 괴롭혔다. ‘이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해’라는 생각. 엄마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우유는 언제 얼만큼씩 줘야 하는지 아이가 왜 우는지 아이는 얼마큼 자는 건지…. 정말 지식이라고는 1도 없는데 몸으로 부딪힌다. 그러면서 매 순간 고민하고 매 순간이 어렵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이는 잘 크고 있는 건지 내가 뭘 잘못한 건 없는지… 몸도 힘든데 마음도 괴롭다. 나는 불행하게도 시댁도 친정도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이를 키워야 했어서 심지어 마음이 외롭기까지 했다. (시댁이나 친정의 도움을 받는 엄마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더라. 여기서 이래라 저기서 저래라 하는 것들로 스트레스까지 받으니) 그 암흑 같은 시간들을 묵묵하게 걸어가야 하는 게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조금만 크면 그래, 좀 나아지겠지 그런 마음도 들었다. 왜 세상살이 그 무엇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 경험치가 쌓이고 시간을 견뎌내면 마음에 내공이라는 게 생기고 굳은살이 박여 웬만한 일은 그냥저냥 넘길 수 있는 그런 대범함과 인내력과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아이를 키우는 일도 어쩌면…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그런데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렇게 쉽게 내공이 쌓이고 능력이 휙휙 쑥쑥 올라가는 일은 아니었다.


 첫째 아이가 킥보드를 타다가 코너를 돌아 내리막길에서 멈추지 못하고 급 하강하다 앞으로 고꾸라져 얼굴 전면을 다친 날. 아이를 119에 실어 병원을 가는 내내, 치료를 다 마치고 집에 와 잠든 아이를 보면서도 내내 나는 몇천 번을 후회하고 몇만 번 나를 꾸짖었다. 평소에 잘 나가지도 않는 그 늦은 오후 아이와 왜 산책을 나갔을까. 코너 돌 때 멈추라고 왜 미리 얘기하지 못했을까. 그 미끄러져 내려가는 아이를 왜 나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넘어지게 했을까… 모두 내 잘못, 모두 내 책임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잘하게 넘어지고 아픈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작고 미미한 상처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아이가 크게 다치지는 않을까, 많이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은 그리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엄마의 걱정은 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다. 가슴속에 쇳덩이 하나를 묵직하게 넣어두고 다니는 느낌. 이 아이의 안전과 행복이 늘 걱정으로 차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마음이 무겁고 아픈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내 걱정을 먹고사는 아이, 나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이. 이제는 인생의 전반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희미해져 가는 이런 순간을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행복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 시간을 보상해 주지 않고 이 모든 공은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희생 아닌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네버 엄마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잔인한 사실을 아무도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 알려주지 않은 것인가? 아님… 들어도 체감하기 이전에는 잘 모르게끔 이미 그렇게 설계되어 태어난 것인가?)   

 

나는 아직도 내가 엄마로서 어떤 사람인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른 채 이 길을 걷고 있다. 이왕 엄마가 되었으니 주어진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서투르고 부족한 엄마를 만나서 나의 아이들이 고생을 덜 하길,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만, 잘못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런 마음이 무색하게 하루에도 백 번은 넘게 부르는 “엄마”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엄마라는 것을 매분 매초 일깨워 준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는 거, 그거 절대 쉽지 않지만 나도 내 엄마가 있어서 늘 마음이 든든하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평생에 걸쳐 든든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엄마가 된 걸 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힘들고, 하기 싫은 일로 가득 차 있고,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일인데도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나도 아는데… 엄마가 되는 일은 인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그 어떤 일보다 나를 단련시키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게 만든다.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멋지고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엄마가 되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오늘의 수다거리

엄마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엄마가 되기 전 엄마의 무게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엄마가 된다라는 것을 상상했을 때와 실제는 어떻게 달랐나요?

엄마가 된 후 주변의 미혼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권하나요? 아님 만류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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