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걸으면 행복한 에너지가 충전된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두려움에 떨며 집 밖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면서 생긴 단어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영어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학원 집합 금지로 인해 출근을 못하는 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풀리겠지 하면 또 일주일 더 연장되었다. 다음 주면 출근하겠지 기대를 하면 이번에는 2주 연장. 그렇게 하염없이 출근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행여나 사람들을 만났다가 코로나에 감염될까 하는 걱정에 집에만 콕 박혀 있던 내게도 코로나 블루 증상이 느껴졌다. 창살 없는 감옥이 이런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던 그때 나를 구원해 준 것은 걷기였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한강변을 걸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접근금지' 테이프로 휘감긴 농구장, 배드민턴장, 운동기구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이름 모를 풀꽃은 예쁘게 피어있었다. 그렇게 한강을 벗 삼아 걷다 보면 무거웠던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다. 동호대교를 지나 한남대교를 돌아오면 어느덧 땀이 나고 다시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이 쓴 《걷기 예찬》의 첫 문장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중략)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몸을 느끼며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삶의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오늘만 걷자.'
무거운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 것에 강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하루종일 누워있고 싶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움직이긴 싫지만 무너지고 싶지는 않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딱 오늘만 걷자.'라고 나를 꼬드겼다. 스스로의 꼬임에 넘어가 일단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서면 두 발은 어쩔 수 없이 걷게 된다. 한강이 가까워지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걷다 보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고, 기운이 생긴다. 그리고 '이 무거운 시간도 언젠가 지나갈 거야.'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실제로 하루 30분 정도의 걷기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우울증과 불면증은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몸을 해친다. 몸이 안 좋으면 마음의 병이 생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다.
조선시대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약으로 고치는 것(藥補)보다는 음식으로 고치는 것(食補)이 낫고, 음식으로 고치는 것보다는 걸어서 고치는 것(行補)이 낫다.'
걷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몸과 마음에 이로운 일들이 생기는 것은 확실하다. 브르통 교수가 말했듯이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우리 안에 있던 행복한 감정을 되찾을 수 있다. 걷기로 되찾은 행복한 감정은 남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