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쓰는 유진 Nov 06. 2020

기자에서 공무원으로 경력을 전환하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

☕️ Meet 소네 
소네님은 언론사, 잡지사 등에 몸담았고 공공기관을 거쳐 현재 정부 부처에서 정책홍보업무를 맡고 있어요. 2015년 12월에 결혼하고 2016년 8월에 세종으로 이사 왔고, 두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일하는 엄마이기도 해요. 기자에서 공무원으로 경력을 전환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세종으로 이사 오기 위해 서울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셨나요?

남편 직장은 대전에 있었기 때문에, 세종 또는 대전 위주로 구직을 했어요. 마침 결혼 시기가 근로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기도 했고요. 언론홍보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경력 면에서 더 레벨업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정부 부처, 공공기관의 언론/홍보 담당자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들도 있을 테니, 세종이 보다 기회가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죠.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소네님. 앞모습은 단정한 셔츠처럼 보이지만 뒷모습은 개성 있는 디자인이 소네님과 닮았다.

커리어를 한 단계 성장할 기회를 보고 세종에 이주하셨군요. 구직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그 당시 아이는 없었지만 결혼한 경력단절 여성이었죠. 이직 경험은 많았지만 ‘결혼한 여자를 누가 받아줄까?’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문화예술 일을 하다가 세종에 오니까 격차가 엄청났어요. 제가 세종에 이주했을 땐 영화관 1곳이 생기고, 서점도 없었으니까요. 교통도 불편해서 유배 생활 같았어요. 얼마나 힘들었냐면 살던 집이 21층이라 안방 침대에 누워서 바깥을 보면 꼭 땅에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남편은 구직이 힘들면 굳이 일 안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저는 더 자극을 받았어요. 열심히 직업을 알아봤죠.


그러던 중 모 연구소에서 언론 홍보 담당자를 채용한다기에 지원했어요. 인적성 검사도 처음 해봤죠. 4차 면접 장소에 갔더니 6명가량의 남자 면접관들이 책상에 일렬로 쭉 앉아 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질문이 “아이를 가질 계획인가?”였어요. 어쩔 수 없이 계획이 없다고 했죠. 최종 합격은 했습니다만, 동시 합격한 정부 부처 온라인 홍보 일이 제 경력에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고 육아 제도도 잘 갖춰진 시스템이라고 생각해 지금 일하는 곳에 왔어요.



‘어쩌다 공무원’이 되셨어요(웃음). 내가 잘 해낼 거란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요?

기자로 가장 오래 일했기 때문에 주요 경력이나 전공과는 달랐지만, 기존에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저와 같은 홍보 인력이 많지는 않았는데, 정부 부처에서 디지털 소통을 강조하면서 온라인 홍보 업무 관련 인력을 더 많이 뽑는 추세예요.


20대까지만 해도 ‘이걸 해본 사람이 잘할 거야'라고 생각하는데, 30대 넘으면 조직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잖아요. 그리고 저는 여러 경험을 직접 많이 해봤기 때문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묘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뭐든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출발점에서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며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거죠



경험이 체화되었다는 건 일을 할 때 경험치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뜻일까요?

그렇죠. 저는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도 많이 읽고 새로운 콘텐츠,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많아요. 다방면으로 관심 있는 것들을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툭 튀어나와요. 점과 점이 이어져서 연결되기도 하고요. 영화제, 인터뷰 시리즈 모두 그렇게 연결돼서 나온 작품이에요.


<축적의 시간>을 쓴 서울대 교수의 칼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통찰력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¹"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어요. 20대에 산전수전을 경험하며 쓸데없는 일을 했던 것 아닐까 싶었던 순간들도 제 안에 쌓여서 다양한 조직과 일을 할 근육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교수님의 메시지처럼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많이 경험해보고 넓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점점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내 경험치를 발휘해서 하는 일 중 재밌는 일은 뭐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매거진B>의 잡스(JOBS)시리즈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잡스 시리즈의 PM(프로젝트 매니저)인 손현 에디터를 미디어 스타트업 <퍼블리>에 계실 때부터 이분의 글과 책에 관심이 있었어요. 환경 분야 일자리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높이기 위해 환경 분야 관련 인터뷰어 프로젝트 콘텐츠를 기획한 후, 손현 에디터를 만나면서 '그린잡스(Green JOBS)'로 이름을 정했어요.



<퍼블리> 출신 에디터가 어떤 종류의 감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고 <B 매거진>의 톤앤매너를 아는 공무원이라니 정말 흥미로워요.

기존에 했던 것을 똑같이 하지 않고 다른 것들과 엮어서 결실로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려면 기획을 윗선에도 잘 설득하고 함께 일하는 업체에도 가이드를 잘 주어야 해요. 시작 단계에선 모험심도 필요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고민도 많았네요.



요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저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이를 깨우고 출근 준비를 해요. 유연 근무 제도로 일하고 있어서 8시 반쯤 집에서 나와서 아이를 회사 앞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바로 출근해요. 평일 점심시간을 할애해 일주일에 2번 운동을 해요. 오후 5시~5시 반 사이에 퇴근하고 아이 하원을 해서 집에 6시쯤 도착해요. 밥 먹고 재우면 밤 10-11시가 시가 되죠.


이런 일상이 하루살이 같아요. 오늘이 지나고 내일 똑같이 리셋되니까요. 기자들이 오늘 특종기사를 썼다고 해서 내일 특종기사를 연이어 쓰는 건 쉽지 않거든요. 매일 시험 보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모든 인생을 통틀어서 제가 제일 잘한 일은 아이를 낳은 거예요. 살아있는 예술작품이자 국보급 보물 1호죠.


지난 9월 2일, 아이의 두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 동시에 모닝리추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63일을 채운 아침 글쓰기.

아이를 낳고 나서 바뀐 삶의 관점이 있나요?

일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컨트롤이 돼요. 일은 일하는 사람의 전문성에 따른 복합적인 결과물이잖아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건 어느 선까지는 제가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다음부터는 아이가 스스로 자기 존재를 인지하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해요. 일하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건 서로 다른 가치관과 태도를 요구해요.



일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어요?

만일 일을 안 하면 편하긴 하겠죠. 그래도 일없이 아이만 키우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와요.


“멀리 내다봐야죠. 일반적으로 여성은 삶의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시간을 애들과 함께합니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따져보고 나머지 3분의 2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 키운다고 일을 그만둔다면, 그 아이가 자란 후에는 뭘 할 건가요? 그때 가서 복직하고 싶다고 해서 가능할까요? 먼 훗날 후회할 결정은 애초에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자라서 부모를 떠나니까요.²”


엄마가 계속 경력을 쌓으면 중년에 더 많은 월급을 벌어요. 지금 이 정도 월급으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게 소모적인 것 같아도 아이가 성장하면 엄마의 커리어와 월급, 몸값은 더 올라갈 거예요. 여성이 자신의 몸값을 계속 올릴 수 있도록 가정과 사회가 도와주는 게 맞다고 봐요.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도를 쓰면서 사회에서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은 드는데 가정은 아직 요원해 보이네요 (웃음) 가정은 여전히 오래된 문화와 관습이 지배하니까요.



소네님의 가정환경이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20살 때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포항 지곡동 사택 단지에 살았어요. 유해 시설도 없고 주택 위주의 세종시랑 느낌이 비슷해요. 제가 세종시에 살고 싶었던 것도 어렸을 때 살았던 환경이랑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서울에 살면서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만큼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곳도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세종시 명소이자 시민들의 쉼터, 호수 공원에서

단 한 가지 이유로 세종에 이주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소네님은 왜 세종 이주를 결정했나요?

보통 남편 직장 때문에 세종으로 이주했다고 하죠. 그런데 남편은 세종 이주를 결심한 10가지 이유 중 한 가지일 뿐이에요.  

저에게 가장 큰 이유는 내 경력을 레벨업 할 수 있는 직종이 많은가? 비전이 있는 도시인가? 그게 제일 컸어요.


남편이 장난으로 ‘내 덕에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면 발끈해요. 경력직 공무원 되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제 직장 덕분에 집도 생겼죠. 직장 어린이집도 너무 잘 되어있죠. 이건 제가 획득한 거잖아요. 남편도 부모님도 아닌 제가 스스로 일궈낸 독립의 결과물이잖아요. 그게 기특해요. 남편은 반어법으로 ‘내 덕'이라고 하는 거죠.



결혼과 육아는 소네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가족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실제 가족을 꾸려보니까,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삶과 삶이 만나서 멋진 섬을 만들어야 하는데 서로 떨어져 있으니 다리부터 놔야 하더라고요.


결혼하고 나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커졌어요. 성차별을 느낄 수 없었던 가정환경이었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게 되었죠. 그런 의미에서 괜찮은 남자 한 명을 키우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죠. 꼭 아들이라서는 아니고 사회적으로 좋은 개인이 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하니, 이 아이가 좋은 개인으로 크도록 잘 키워야겠다고 생각해요.


첫 돌 기념으로 찍은 사진, 두 돌 기념으로 찍은 사진. 한 해 여름 동안 잘 어울리고 즐겨 입었던 옷을 꺼내 입었다. 가장 편한 옷을 입어야 몸이 자유로워서 미소도 잘 나오니깐!



아이를 낳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될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제가 요즘 육아서를 읽다 보니 꼭 심리학 책, 인류학 책 같아요. 내 과거를 반추하며 부모님과 나를 이해하게 되거든요. 브런치에 '육아일기가 아닌 나의 성장일기'라는 연재 글을 쓰고 있어요. 일반 육아 일기(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고 아이를 갖지 않아도 내 이야기에 공감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원래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던 저를 되돌아본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라는 글은 4만 뷰에 도달했어요. (인터뷰 이후 '뒤늦게 본 엄마의 손편지' ,'나를 위한 집밥, 한 끼를 원했다',’깜박, 챙겨야만 물건을 놓고 왔다’ 다음 메인에 노출되었고 연재 글은 11만 뷰에 도달했다. 올 11월에는 첫 브런치북 ‘내가 만든 철저한 타인’을 발간했다.) 그 외에도 ‘엄마도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글들을 썼습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쉽지 않을 텐데, 힘든 점은 없나요?

복직하고 얼마 안 되었을 즈음에 완전 번아웃 상태였어요. 다 포기하고 싶었죠. 그러다 올해 초 서울 중림동에 있는 콘텐츠 공간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에서 기획한 '당신을 인터뷰해드립니다' 프로그램에 응모하게 됐고, 당첨되어 조선비즈 김지수 기자님께서 저를 인터뷰해 주셨어요. 정말 꿈 같았죠! 당시 김지수 기자님의 인터뷰 모음집 <자존가들>을 읽고 ‘내가 나를 작게 생각했구나'라며 자존감을 회복했었거든요. 게다가 대기자님이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니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세종에 내려온 것 자체가 사회자본, 문화 자본과의 단절인데, 아이를 키우면서 부족한 시간과 체력으로 더 많은 것들과 단절되었죠. 힘들기도 했지만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인지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엄마가 말씀해 주셨던 '너는 지금 지호랑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이었어요. 매일 매일의 일상도 뭐든 새로운 경험이 된다고. 지호가 없었다면 하지 못 했을 생경한 경험을 지호랑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생이 풍요로워져요.



일을 지속하는 힘은 어디서 올까요?

20대에는 일에서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했어요. 30대 일하는 엄마 되어 보니 일은... 생존인 것 같아요. 꼭 해야 하는 것. 여러 조직을 거치며 알게 된 진실은 명함의 타이틀과 조직명이 나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예전에 일은 제 마음의 갈증을 채우기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돼야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생존해야죠!


아이가 자라는 속도처럼 커리어도 늘 같은 속도는 아닌 것 같아요. 어떨 땐 성장하는 시기고 어떨 땐 버티는 시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일단 해내며 버텨야 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니까요. 그래야 신뢰를 받아서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해요.

 

✍️ Editor's Note by 유진
소네님을 처음 알게 된 건 그의 브런치 글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종으로 내려와 보니 기혼 여성의 재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체감한다며 힘든 마음을 이겨낼 책을 추천하는 글이었다. 같은 고민을 했던 나로서 댓글을 안 달 수 없었다. 그의 닉네임 소네는 불어로 ‘sonner 종이 울리다’라고 한다. 그는 지금도 부지런히 글을 쓰며 울림을 주는 자의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기획한 환경영화제, 그린잡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잘 읽고 업무에 연결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넥터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그는 관료 조직에서도 새로운 연결을 촘촘히 쌓아가고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경력직으로 입사한 공무원이어서 이런 상상과 기획도 가능한 것은 아닐까. 
세종에 내려오게 된 계기는 남편이었지만, 그 이후의 삶은 그가 개척했으며 주도하고 있다. 어쩌면 인생 전체에서 ‘남편 때문에 세종에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드라마의 에피소드 하나 분량일 정도로 짧았다. 공무원으로 취업하면서 시작된 시즌 2. 그가 더 오래 사랑하는 일을 잘 해내길 응원한다. 

인터뷰 일자: 2020년 8월 7일



1. 문병로. 전문가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다. 중앙일보. 2020/07/31

2. 레슬리 베네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웅진윙스. p166




이전 02화 세종시는 균형발전 행복도시가 될 수 있을까?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나의 사적인 세종 이주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