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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욜 MaYol Jun 23. 2024

당신이 사랑하는 것과의 전쟁

mayol@골계전 16.  I hate you, too!!

주변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나보다 더 사랑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나를 멈칫멈칫하게 한다.

생태계 서열 1위의 자리를 빼앗긴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자괴감과 더불어 그나마 한 올 지푸라기같이 가늘게 남은 사랑마저 빼앗긴 수컷의 설움이 자꾸만 턱밑을 잡아당겨서 열이 오르는 날이다.

그러면, 내가 동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인가.

그건 아니다.

오랜만에 비싼 굴비 한 마리를 뜯던 날이었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굴비가 분명히 입을 꼭 다물고 상위에 올려졌었는데, 다 먹고 보니 입이 쩍 벌어져 있어 정말이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 앉았다.

얘가 언제부터 저렇게 입을 벌리고 있었던 걸까...

젓가락을 내려놓고 해체된 굴비를 보고 있으려니 그의 절규가 느껴졌다.

그래서 밥상을 물리고 떠 오르는 시상을 몇 자 적었다.

굴비를 먹다가 ⎡굴비유언⎦이라는 시를 썼을 정도로 나는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다.


     ▷ 굴비 유언 - 마욜


     제발, 빨리 먹어줘

     깔짝거리지 말고

     그냥 한입에 털어 넣어

     내 고통을 덜어줘

     음미하지 마

     살점이 뜯길 때마다

     내 입이 점점 벌어져

     소리를 지를지도 몰라

     아야~~~


 

제발이지, 굴비를 먹을 땐 한 번에 훑어서 끝내야 한다.

우리도 이젠 동물복지를 생각할 때 아닌가.

다시 고양이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이 정도면 내 마음이 충분히 전달되었을 테니까.

아무튼, 고양이 때문에 열이 어떻게 오르냐면,




나른하게 경사진 길에는 휴지를 줍는 할머니가 카트에 박스를 싣고 미터당 2초의 속도로 질주하는 이른 아침이다. 자주 마주치는 할머니인데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가끔은 정지화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푸르뎅뎅하게 색이 파랜 포장마차용 동그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마주친다. 머리숱은 정수리를 간신히 가릴 정도만 남아있고 반면에 눈썹은 삼국지의 장비처럼 날카롭게 관자놀이를 향해 뻗어 있다. 한 가지 표정으로 평생을 사신 것처럼 일정한 주름 몇 개가 깊게 파여있고 추정 연세에 비해서는 비교적 팽팽한 얼굴이다.

할아버지의 시선은 항상 골목 입구 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나와 마주치기 쉬운 눈높이다.

할아버지의 외모를 탐구하면서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추면 할아버지도 잠시 입에 물었던 담배를 빼고 나를 빤히 보신다. '나도 너를 보고 있어!' 그런 눈빛이다.

며칠 후에는 너무나 젊어진 모습의 할아버지를 목격하고는 놀라서 인사도 못하고 지나친 적이 있었다.


'뭐지?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떻게 저렇게 젊어질 수가 있는 거지?'


알고 보니 할아버지의 아들이어서 더 놀랐다.

닮아도 저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오랜만에 좁은 작업실 유리창을 열면 지난밤 내린 비 끝에 지저분하게 걸린 하수구 냄새가 날듯 말 듯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른한 풍경 속에서도 내게 위로를 주는 게 하나 있었다.

담벼락 위로 하루 수십 차례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의 움직임이었다.

'그래, 모든 게 정지한 세상에 하나라도 움직이는 게 있어서 참 다행이야.' 싶기도 했다.

담벼락과 인공잔디 위를 걷는 놈을 포착해 그림을 그려 마음의 위로를 삼던 며칠도 있었다. 애정이 느껴지는 그림 아닌가.

하지만 그 무렵부터 고양이 똥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사랑스러운 놈이 하수구 주변이나 주차장 등에 똥을 싸기 시작한 거였다.

냄새의 진원지로 가보면 똥파리떼가 달라붙어서 접근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장난 아니게 냄새가 고약했다.

똥파리가 내 팔다리에 들러붙는 것도 참을 수 없는 일이어서 작전상 후퇴.

하루 정도 똥을 방치해 놓았다가 똥이 딱딱하게 굳고 파리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으면 쓸어 버리고 꼼꼼히 물청소를 했다.

하지만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다시 그 자리에 똥을 싸 놓았다.

한마디로 내가 고양이님의 화장실 청소 담당이 된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는데 집 구해주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조경용 인조잔디를 깐 건물 옥상이 드론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앗?! 유레카!!

하수구를 인조잔디로 덮으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수구 냄새를 잡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화장실로 인식하던 장소를 수려하게 꾸며 놓으면 더 이상 똥을 치울 일도 없을 테니까.

부리나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다음 달 결재를 염려할 때가 아니었다.


[우수한 내구성의 조경용 인조잔디 2m X 5m 2개 주문 완료!]


다음날 도착한 무겁게 둘둘 말린 인조잔디를 칼과 가위로 재단해 좁은 담벼락 아래에 길게 깔았다.

아, 얼마나 좋던지.

마치 너른 정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졌었다.

잔디를 깔자 담벼락 위를 교교히 걷던 고양이가 뛰어 내려와 푹신한 잔디 위를 걷기 시작했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야옹'하면서 인사도 하고.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물아일체物我一體 아니, 자연아일체自然我一體를 체감하며 잠시 행복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고양이의 '야옹' 소리가 내게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인사가 아니라 비웃음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고약한 냄새가 다시 들어왔기 때문이다.

참기 힘든 묘猫한 냄새였다.

밖으로 나가보니 고양이가 인조잔디 위에다가 똥을 한 무더기 쌓아놓은거 있지.

잔디 사이사이에 달라붙은 젖은 똥은 아무리 빗자루로 쓸어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결국은 플라스틱 조각을 찾아 손가락 끝이 거의 고양이 똥에 닿을 듯이 가까이 접근해 놈의 잔똥을 떼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잔디에 박힌 고양이 똥냄새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며칠 동안 눈에 띄는 대로 물청소를 하고 나니 간신히 냄새가 잡히는 듯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깨끗이 물청소를 하고 뽀송뽀송하게 마르자 다시 그 자리에 전보다 더 많은 똥을 싸 놓은 거.

그때부터는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개놈의 고양이스끼!!"


그날부터 고양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너그러운 자연아일체自然我一體는 더 이상 없었다.

담벼락 위로 걸어오던지 잔디 위로 다가오던지 상관없이 그놈만 보이면 맨발로 뛰쳐나가 쫓기 시작했다.

물소처럼 뛰어드는 나의 모습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 고양이가 새로 색을 칠한 담벼락에 시커먼 발자국을 여기저기 남기며 뛰어올라 달아났다.

 

 "야, 이 개 스끼다시!!"


고양이는 도망가다 말고 담벼락 끝에 앉아서는 마치 조롱이라도 하는 듯이 발바닥을 핥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니가 뛰어봐야 거기서 거기지'하는 눈빛으로.

고양이는 발을 구르며 주먹을 휘둘러도 꼼짝을 안 했고 빗자루를 들고 휘저어도 꼼짝을 안 했다.

혀를 날름거리며 내 춤사위가 지루해질 때까지 구경하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런 살풀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없는 틈에 또 똥을 한 무더기 싸 놓고 가버렸으니까.

아이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도왔다.


"아빠, 정말 왜 그러세요. 길냥이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걔들이 싸면 얼마나 싼다고요!"

"많이 싸..."


아이들은 고양이 편.


"어머머, 왜 거기에만 싸지? 우리 집은 안 오는데... 아무튼, 담뱃재나 커피가루를 뿌리면 좋을 거예요."


동네 아줌마만 내 편.

그런데, 아줌마 말대로 잔디 위에 커피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담배꽁초를 주워다가 담배가루를 비벼 모아 뿌려보기도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내 편이 전혀 없던 날 저녁, 물끄러미 담벼락을 보다가 도화지를 펴서 그놈을 그렸다.

그리고는 놈이 다니는 통로에 오려 붙였다.

나름의 최후통첩이었다.

벽에 그림을 붙이고 물러서서 보니 나를 피해 달아나며 낸 놈의 발자국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너 다시 또 여기에 똥 싸면, 아으!! 정말 진짜 너란 놈은 진짜 개새 아니 고새...'


그런 갈망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에는 세 군데에 똥을 싸질러 놨다.

깔았던 인조잔디도 다 걷어 버리고 물청소까지 완벽히 해 놓았지만 불안한 마음에 열이 오른다.

열이 어떻게 오르냐면,

투명한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아래부터 닳아 오르기 시작하는데, 딱 그런 현상이다.

정수리까지 뜨거운 기운이 몰려 올라가 얼굴과 정수리의 수분까지 싹 말려버리고 나면 몇 올 안 남은 머리카락이 마른 낙엽처럼 떨어져 어깨에 쌓였다.

이런, 젠장!!

이 고양이를 분양합니다. - 주인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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