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ol@골계전 29. 호갱의 동병상련
늦은 나이에 담배에 입문했던 나는 한동안 거의 골초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건강생각에 약 7년 정도를 완전히 금연했던 기간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신기하게도 금단현상이 전혀 없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독한 놈'이라며 놀렸지만 생각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완전히 담배를 끊었다고 생각할 무렵 남대문 수입상가엘 갔다가 어떤 물건에 눈을 빼앗겨서 충동구매를 한 것이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의 기다란 파이프가 아니라 셜록홈즈가 입에 물었던 그런 디자인의 파이프였다.
주전자의 주둥이만 떼어다가 뒤집어 입에 물게 만든듯한 수려한 외관에 옻칠까지 해놔서 얼마나 반짝반짝 하던지. 소 외불알만한 묵직한 밑둥을 주물럭 거리며 감탄하고 있던 내게 주인장이 다가왔다.
"파이프 담배는 일반 담배와는 달리 입담배라서 ‘흡연吸煙’하는 게 아니라 와인을 입속에서 디캔팅하듯이 연기를 입안에 돌렸다가 다시 내뿜는 정도예요. 와인 드셔보셨죠? 그거예요. 삼키는 게 아니니까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아요."
"네에? 정말요?"
"그렇다 마다요."
"그럼... 이거랑 저거랑 요거랑 그거랑 주세요."
"가죽 케이스랑 파이프 청소도구 그리고 고급 담뱃잎도 있어야겠쥬?"
"아, 그럼 그것들도 챙겨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호갱 당하기 딱 좋은 인성의 소유자인 나는 가게 주인의 너스레에 넋이 나가 각기 다른 모양으로 몇 개를 샀다. 유명한 영국 팔콘 Falcon사의 파이프들이었다.
건강에도 좋다니 이보다 더 좋은 물건이 어디 있겠나.
집에 오자마자 가족들에게 파이프를 꺼내놓고 자랑을 했다.
"뭐야. 너 또 담배 시작했냐?"
"아니, 그게 아니고, 엄마. 이게 말이에요. 담배 연기를 입에 물었다가 뿜는 거라서 건강에 전혀 해롭지 않다고요. 그냥 뭔가를 생각할 때 한 대 뻐끔뻐끔 피워 물고 끄면 그만이라니까요."
기왕 자랑하는 김에 함께 사들고 간 분유통만 한 고급 마도로스 담뱃가루통도 열어보였다.
"향은 좋다, 얘."
"그치요. ㅋ. 향이 끝내줘요."
주인장이 권한 가죽파우치와 청소도구 등까지 펼쳐 보이니 한 짐이었다.
그날은 향이 좋다는 엄마의 말에 용기를 얻어 거실 한편에 앉아 담뱃잎 가루를 템퍼로 꾹꾹 눌러 담고 불을 붙였다. 은은한 향기가 거실과 방안까지 퍼지니 어느 고급 시가바에 앉아 있는 듯 했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 집안에서 담배 냄새가 빠지지 않아 홍역을 치룬 기억이다.
담뱃가루가 마르면 코냑을 몇 방울 떨어뜨려 통 안에 가두고 하룻밤 정도 재우면 담뱃잎이 습기를 먹고 파르르 살아나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파이프와 담뱃가루를 꺼낸 후 카카오 함유량이 높은 초콜릿이나 위스키 한 방울을 넣은 에스프레소를 내어놨다. 손으로 파이프 주둥이를 닦으며 돌려 피우다가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물면 얼마나 고급지고 멋지던지.
아, 파이프를 피우려면 한 가지 중요한 장치가 더 있어야 했다.
길에 서서 마구잡이로 피우는 일반 담배와는 다른 장치인데, 그걸 '여유'라고 불러야겠다.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초콜릿 몇 조각과 코냑이나 에스프레소 한 잔을 재떨이 옆에 놓고 소파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풍성한 한가위 같은 여유가 없다면 절대 입문할 수 없는 문화라고 해야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좁은 공간에서 뻐억뻑 피워댔으니 내 건강만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한 꿩 대가리 같은 착각 아니었나 싶다.
어쨌거나, 그때 산 파이프 중에 몇 개는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지금은 단 두 개의 팔콘만이 남아있다.
깊이 생각하는 척하고 싶은 때나 멍 때리고 싶을 때 입에 물면 가게 주인의 현란한 말솜씨가 떠오르기도 하고 일찌감치 호갱 생활에 익숙해진 젊은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나보다 한 수 위의 호갱 시인이 있었다는 건 적지 않은 위안이다.
1919년에 태어나 1981년까지 살다 간 육군 소장 출신의 김종문金宗文이 바로 그 사람이다.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이이에게 한 가지 병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파이프 수집병이었다.
나처럼, 시인 김종문도 길에서 우연히 본 파이프에 꽂혀 수집을 시작했다.
그는 20대였던 194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던 아테네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었다.
[내가 도꾜의 긴자에 있는 마루젠丸善 앞을 거닐며 문득 그 진열창 안에 새로이 수입된 책들과 더불어 전시되어있는 파이프 한개를 보았다. 그 수신首身에 GOGH라고 뚜렷히 새겨져 있었다. 그 파이프는 반 고호가 사용하던 것으로서 어떤 경로를 통해 도꾜에 흘러들어왔다고 느꼈다.]
고흐의 파이프는 그를 수집광으로 만들어버렸다.
늙은 가게 주인을 붙잡고 자신에게 고흐의 파이프를 팔라며 졸라댔고 주인은 김종문에게 150원을 내라고 했다. 하지만 선뜻 지불하기에는 너무 가난한 유학생 처지 아닌가.
[…… 아닌게아니라 하숙비는 한달에 12원, 대학을 갓나온 사람의 한달봉급은 50원이었던 시대인만큼 150원이라면 큰 돈이 아닐 수 없었다.]
김종문은 고흐의 파이프를 손에 넣고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5원, 10원, 15원… 그렇게 돈이 모이고 고향집에는 거짓말을 해서 70원을 송금받기도 했다.
‘그냥 해본 소리 일뿐 절대 팔 마음이 없다’는 가게 주인을 다그치고 괴롭혀서 겨우 고흐의 파이프를 손에 넣은 김종문의 마음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다.
그 뒤로 그는 닥치는 대로 파이프를 수집했고 그 수가 수백여 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25 동란을 겪으며 다 사라지고 말았다.
전쟁 당시 군에 복무했던 김종문은 제대 후에 예전 생각을 하며 다시 파이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 나는 그때의 쇼크 탓인지 ⌜파이프⌟라는 제목의 연시連詩를 쓰기 시작하는 한편 노점에 나타나는 파이프를 싼값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 그중에는 세계 일주가 아니라 세계 오주를 해도 구할 수 없는 일품逸品들이 끼어 있었다.]
그가 50이 다 된 나이가 되어서도 멈출지 몰랐던 파이프 수집은 유럽 여행 중에도 계속되었다.
[파리의 북쪽 크리낭쿠르라는 곳이 있다. 그곳은 고물상가古物商街로 유명하다. …… 어느날 나는 어떤 고물상이 파이프 한개를 커다란 유리상자 속에 넣고 전시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 내가 유리상자 속을 들여다 본즉 과연 수신首身에 ZOLA라고 새겨져있었다. 나는 그에게 얼마냐고 물었더니 비장품이기 때문에 팔 수는 없지만 정말 원한다면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했다.]
김종문은 에밀 졸라의 파이프를 살 마음을 가지고 가게를 나와 일단 근처 카페를 찾았다.
30년 전 자신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고흐의 파이프를 떠 올리며, '이번에는 에밀 졸라라니 난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아!'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확실히 하자는 마음으로 카페 주인에게 건너편 가게의 에밀 졸라 파이프가 진짜인지 확인을 했다.
[나와 늙은 갸르송garçon은 내가 몇번 드나든 관계로 아는 사이였다. 나는 그에게 졸라의 파이프는 진짜냐고 물었더니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낡은 파이프에다 GOGH, ZOLA라고 새기면 그럴듯하고 외국에서 온 화가나 작가는 진짜인줄 알고 사는 예가 많다고 대답했다.]
"왓? 30년 전 일본 놈에게 비싸게 산 고흐의 파이프도 가짜??"
처음 파이프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고흐의 파이프가 가짜였다는 사실을 30여 년이 지나서야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품으로 수집병을 얻은 바보. 하지만 여러분야의 수집가들이 거쳐가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나 시인 김종문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을 하며 파이프에 새겨진 팔콘사의 로고를 손톱으로 긁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