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5개월 차의 기록
이번주에는 새로운 회사에 첫 출근을 했다. 그와 헤어질 쯤에는 전회사의 일들로 힘들어 이직을 결심할 쯤이었는데, 이제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 두 계절이 지나 가을이 겨울이 되고, 이제 봄을 향해 가고 있다.
여러 차례의 지원과 인터뷰 끝에 나는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나는 가장 나 다운 선택을 했다. 어떤 것이 가장 나다운 길일까 여러 날을 밤을 새우고 고민하여 얻은 결론으로 지금의 회사에 왔다. 이 회사를 고르며, 그와 함께였다면 이 회사를 고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나는 더 크고, 번듯하고, 단단한 회사를 골랐을 것이다. 마치 그때의 나를 몰아붙이던 그에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나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내 자존감이 그 어느 때보다 낮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우리는 헤어졌다. 가장 누군가가 절실했던 순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가 필요했던 순간에 가장 차갑게 나를 몰아붙이는 사람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다. 그런 그 사람 앞에서 나는 더 내 자존심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괜찮을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왜 나를 이렇게 못 믿느냐고.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말들은, 그 사람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괜찮다고, 너는 괜찮을 거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는 더 좋은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때까지 조금만 힘을 내 보자고. 내가 곁에 있겠다고. 아마 그런 말들을 들었다면,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이별의 말들을 삼켰을 수도 있겠다.
물론 그는 나에게 위로가 되기는커녕 나를 몰아붙였다. 그즈음 나는 그와 만나고 오는 시간에 매일 울었다. 그 어떤 말들도 그에게는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오랜 기간 고민했던 이별을 결심하고, 또 이별을 하게 됐을 때 생각했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관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계속 가져갔겠다'라고. 다행이라고 말이다.
이상하지,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어려운 이별을 했는데, 다행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내가 소중하게 아끼며 끌고 왔던 그 관계가, 끝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내 관계를 마주하게 해 줘서 다행이라고. 내가 왜 이 관계에 힘들었는지를 알려줘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결국은 이 관계를 끝낼 수 있을 만큼 나를 힘들게 해 줘서 다행이라고. 내가 바라는 말 한마디 조차 해주지 못하는 그와 이별할 수 있게 해 줘서 다행이라고.
장기하와 얼굴들, 나란히 나란히
나는 너를 등에다가
업고 걸어 보기도 하고
자동차에다가
태워서 달려 보기도 하고
헬리콥터를 빌려
같이 날아다니기도 하고
돛단배를 타고
끝없는 바다를 건너 보기도 했었네
달나라로 가는
우주선을 예약하고 있을 때
나는 깜짝 놀랐어
이미 너는 떠나가고 없었어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서
말도 안 된다 혼잣말하다
너의 얼굴을 그려 보려는데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질 않네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주보며 웃을 걸 그랬어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자주 손을 잡을 걸 그랬어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 볼 걸 그랬어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어쩌면 나는 결국 네가 정말로 원하는 건
단 한 번도 제대로 해줘본 적이 없는 건지도 몰라
진짜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이제는 물어볼 수조차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누워 외로워 하는 것뿐이네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주보며 웃을 걸 그랬어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자주 손을 잡을 걸 그랬어
가만히 가만히 생각해 볼 걸 그랬어
정말로 네가 뭘 원하는지
나란히 나란히 걸어다닐 걸 그랬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