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자유"라는 단어를 자주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이 단어가 나에게 왜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궁금해졌고,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몇 주가 지나 괴테(주)의 글을 읽게 되었고, 그 속에서 나의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주 내가 발행한 글에도 이 생각을 담았지만 ( '어려움 속으로 기꺼이 나아가는 의지' 참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로부터 얻는 "자유와 행복"이라는 단어들이었다. 내가 찾고 있던 모든 답이 그 안에 명확히 담겨 있었다. 이는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아니라, 내 존재를 다시 기초부터 세우는 과정처럼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늘 새벽 나를 다시 깊이 느껴보니,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을 마주하고, 들여다보고,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에 있던 답답함이 서서히 사라져 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나도 모르게 항상 긴장하며 숨을 참아야 했지만, 이제는 나의 호흡이 막힘없이 흐르고, 맑은 공기가 자연스럽게 내 안을 가득 채운 듯했다. 이는 내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같았다.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공황장애의 긴장이 사라지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깨달음만으로도 나는 이미 자유와 행복이 내게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나에게 쌓여 있던, 나의 삶을 힘들게 했던 다양한 모습들이 점점 사라지고, 비워지고, 녹아내리면서, 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가벼움과 맑음, 그리고 깨끗함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새롭게 무엇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과거에서 이어져 오는 흐름을 끊어내고, 더 자유롭게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된 듯 하다.
여기서 이어지는 나만의 또 다른 탐험, 탐구는 '이제 이런 나를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가'였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찾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해왔기에, 기존의 것으로 다시 채우는 것은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과 같을 테고, 다른 사람의 것으로 채운다면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새로운 나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 나만의 독창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맞는 새로운 것들로 나를 채워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깨달은 것은 더 단단히 다지고 부족한 것은 새로 학습하며 배워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가며 나만의 견고한 기초를 다져나갈 때, 흔들림 없는 나의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세계가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나의 삶에 맞춰진 나를 위한 기초와 기준이야말로, 그 자체로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세계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내가 목표로 삼은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창조하고 표현하는 자유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임을 이제 가서 확인하려 한다.
(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믿음사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식한 사람, 여유 있게 사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을 손질하여 낙원으로 꾸밀 줄 알고, 불행한 사람마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면서도 끈기 있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이 햇빛을 다만 1분이라도 더 오래 쳐다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렇지, 그런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아무리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속에서 자유라는 즐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 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