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침묵

나의 삶을 도슨트하다 - Ep. 07

by 근아

한국생활 3주 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2층 스터디공간 안에 '나만의 서재‘를 예약하고 자리를 잡는다.


도서관이 너무 조용하여,

오히려 너무 시끄럽다.


저 멀리 책장 넘기는 소리.

의자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

심지어 내가 노트에 글을 쓰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온다.


그때부터 나의 몸짓은 조심스러워진다.

내 움직임 하나가 어떠한 소리를 만들어낼지 알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 소리들이 이미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더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리가 적을수록

나는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움직임 하나,

숨을 들이마시는 리듬,

펜 끝에 실리는 힘의 무계까지도

모두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 공간에서는

크게 말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크게 느껴진다.


조용한 곳에 앉아 있을수록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존재를 키우는 방식이

항상 더 많은 말과

더 큰 소리일 필요는 없다.


조용히 앉아 있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몸으로 나를 드러낸다.


소리가 없어서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소리를 낼 필요가 없는 상태에 가깝다.


이 도서관의 침묵은,

나의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나로 가득 차 있다.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수면 아래로 내려가

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나

눈에 보이는 움직임이 아닌,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각들을 느껴 보는 것이다.


그동안 너무 작아서,

혹은 너무 깊어서

스스로도 지나쳐왔던

나의 진짜 목소리와 마주하게 된다.


조용함은 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가장 정확한 모습으로

온전하게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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